직장내 괴롭힘 금지법을 시행한 지 1년 반이 지났지만, 실제 검찰의 기소 건수는 당초 예상치를 크게 밑돌고 있다. 괴롭힘으로 신고를 해도 직접적인 처벌조항이 없기 때문에 폭행이나 명예훼손 등 다른 일반범죄가 성립되지 않는 이상 처벌이 어렵다는 이유에서다.

일러스트=정다운⋅조선일보DB

2일 본지가 국회 기획재정위원회 용혜인 의원실(기본소득당)을 통해 확보한 고용노동부의 ‘직장내 괴롭힘 금지법 접수 및 처리현황’ 자료에 따르면 직장내 괴롭힘 금지법이 시행된 2019년 7월부터 지난해 12월까지 접수된 직장내 괴롭힘 진정 신고는 총 7953건으로 집계됐다.

이 가운데 경찰 조사를 거쳐 검찰에 송치된 사건은 94건, 검찰이 최종 기소한 사건은 29건에 그쳤다. 실제 재판으로 이어진 건 전체 신고 건수의 약 0.3%에 불과했다.

이처럼 직장내 괴롭힘 신고 건수에 비해 기소 비율이 낮은 것은 이 법에 명확한 처벌 조항이 담기지 않았기 때문이다. 법무법인 오킴스의 엄태섭 변호사는 "법 자체에서 직접적인 처벌 조항이 없기 때문에 직장내 괴롭힘 만으로는 검찰 기소가 불가능한 경우가 많다"고 설명했다.

그는 "직장내 괴롭힘 과정에서 협박 또는 폭력을 행사하거나, 모욕을 주고 명예를 훼손하는 발언을 한 경우 등에는 직접 형법 조항을 적용해 기소할 수 있지만, 일반적인 직장내 괴롭힘 행위 자체를 형사재판대 위에 올릴 순 없는게 현실"이라고 말했다.

직장내 괴롭힘 신고 사건의 낮은 기소 비율 때문에 괴롭힘 방지 효과가 갈수록 떨어질 수 있다는 우려도 커지고 있다. 회사원 최모(42)씨는 "1000명이 직장내 괴롭힘을 신고해서 3명만 기소가 됐다니 너무 숫자가 적어서 놀랐다"며 "신고를 하더라도 가해자 처벌이 어렵다면 회사 내에서 보복당할 위험을 무릅쓰고 신고를 할 순 없을 것 같다"고 말했다.

직장내 괴롭힘 금지법이 시행된 이후 가해자가 기소된 사례가 예상보다 적었던 것과 반면, 증거를 수집한 피해자가 처벌받는 사례는 오히려 늘었다는 지적도 나온다. 가해 사실을 입증하기 위해 사무실 등에 녹음기나 카메라를 무단으로 설치할 경우 통신비밀보호법 위반 혐의로 처벌받을 수 있기 때문이다.

실제로 지난 2020년 11월 서울중앙지법은 직장 동료의 성희롱 등 괴롭힘 증거를 수집하기 위해 사무실 내 동료직원 책상에 소형 폐쇄회로(CC)TV를 설치한 혐의를 받는 A씨(여성)에게 징역 6개월(집행유예 1년)의 실형을 선고한 바 있다.

당시 A씨는 고용노동부와 서울지방노동고용청에 해당 문제를 진정했지만, 받아들여지지 않았던 것으로 알려졌다. 결국 직접 증거를 확보하기 위해 CCTV를 설치했다가 피해자인 A씨가 처벌을 받았던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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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행법규는 회사가 신고를 이유로 괴롭힘을 당한 피해자나 신고자에게 불이익을 주는 경우에 대한 처벌을 규정하고 있을 뿐이다. 괴롭힌 당사자를 처벌하는 내용이 빠졌다는 점에서 괴롭힘 억지력을 낮추는 ‘반쪽짜리 법’이라는 지적도 적지 않다.

또 회사 대표이사가 근로자를 괴롭히는 경우 이를 제재하기가 어렵다는 점도 허점으로 꼽힌다. 가해자인 대표이사가 스스로를 제재하는 게 사실상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이러한 이유들 때문에 이를 보완하는 법 개정이 필요하다는 이야기가 국회 안팎에서 나오고 있다. 그러나 일각에서는 직장내 괴롭힘을 범죄로 규정해 형사처벌을 의무화 할 경우 이를 악용하는 부작용이 나타날 수 있다는 우려도 크다.

송해도 노무사는 "직장내 괴롭힘 가해자에 대해선 회사 내 징계나 인사발령 조치를 통해서도 충분히 불이익을 주고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데, 별도의 처벌규정을 만들어 형사책임까지 지게 하는 건 이미 회사 징계를 받은 가해자에게 과도한 책임을 묻는 것"이라고 했다. 그는 "형사처벌 된다는 점을 악용하는 경우에는 직장내 동료나 상사를 협박하는 수단으로 전락할 수도 있다"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