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 사태가 장기화하면서 전세계 항공사뿐 아니라 항공기 제조업체들까지 생존 위기를 겪고 있다. 미국 최대 항공기 제작사 보잉과 유럽 에어버스의 항공기 제조 수요는 1년째 바닥을 벗어나지 못하면서 사상 최악의 적자 행진이 이어지고 있다. 이런 가운데 국제항공운송협회(IATA)는 세계 항공산업이 올해도 적자 수렁에서 벗어나지 못할 것이라는 분석을 내놨다.

2일 업계에 따르면 선진국을 중심으로 백신 보급이 본격화한 지난 1월에도 에어버스는 항공기 주문을 1대도 받지 못했다. 코로나가 전세계로 확산하기 직전인 지난해 1월에는 269건의 신규 주문을 받았다. 에어버스 대변인은 "코로나가 전례 없는 방식으로 세계 경제에 영향을 주고 있어 예년과 현재 상황을 비교하는 것은 의미가 없어진 지 오래"라고 했다.

이를 두고 AP통신은 "에어버스는 1월 들어 주문 취소가 없다는 데 안도해야 하는 상황"이라며 "백신 보급에도 아직까진 국제선 수요가 반등하는 추세는 보이지 않고 있다"고 전했다.

루프트한자 소속 여객기들이 프랑크푸르트 공항 활주로에 줄을 지어 계류돼 있다.

지난해 에어버스의 항공기 신규 주문 건수는 268대로 2019년 768대에서 절반 넘게 줄었다. 인도 물량도 566대를 기록, 전년과 비교해 34% 감소했다. 일반적으로 항공사들은 항공기를 인도받을 때 항공기 구매액 대부분을 지불하는 방식을 택하고 있어 인도 건수는 제조사 재정에 큰 영향을 미친다. 그러나 코로나 여파로 항공사들이 항공기 인수를 미루면서 재고만 쌓이고 있는 상황이다.

주문 취소와 연기가 속출하면서 에어버스는 지난해 11억유로(약1조4700억원)의 적자를 봤다. 매출은 499억유로(약66조6700억원)로 2019년 대비 29% 감소했다. 기욤 포리 에어버스 CEO는 "위기는 아직 끝나지 않았다"며 올해도 전망이 밝지 않을 것으로 내다봤다. 그러면서 "글로벌 항공 수요가 코로나 이전 수준으로 회복하는 시점은 2023~2025년은 되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에어버스의 경쟁사인 보잉 역시 상황은 악화일로다. 잇따른 추락 사고로 2019년 3월부터 주력기 737맥스의 인도가 중단된 데 이어 코로나까지 겹쳐 경영난이 심화했다. 여기에 최근 777 기종이 운항 중 파편 추락 사고가 일어나는 등 악재가 이어지고 있다.

지난해 보잉이 수주한 항공기는 총 184대에 그쳤다. 고객사에 인도한 항공기도 157대에 불과해 2019년보다 59% 급감했다. 이는 1994년 이후 가장 나쁜 실적이라고 로이터통신이 전했다. 주문 취소는 역사상 가장 많은 650대에 달했다. 이 중 641대가 두 번의 추락 참사로 21개월간 운항정지 조치를 당한 737맥스 기종이다. 737맥스뿐만 아니라 787드림라이너 기종도 결함 가능성에 대해 조사 받으면서 생산 일정이 지연된 것으로 나타났다. 신형 기종인 777X 출시 일정도 엔진 문제, 수요 감소로 2023년 이후로 미뤄져 재정 부담을 더했다.

그 결과 보잉은 지난해 사상 최대 규모의 적자를 냈다. 119억4000만달러(약 13조2000억원)의 순손실을 기록했고, 연간 매출은 582억달러(약 64조3000억원)로 2019년보다 24% 감소했다. 업계 1위를 달리던 보잉은 매출 기준으로 레이시온, 록히드마틴, 에어버스에 이어 업계 4위로 추락했다.

지난달 20일에는 유나이티드 항공 소속 보잉 777 여객기 엔진 날개가 비행 중 부러지며 불이 나고 기체 부품이 주택가에 쏟아지는 사고가 났다. CNN은 "앞서 보잉은 737맥스의 운항 중단으로 200억달러(약 22조2000억원) 이상의 비용을 치렀으나 안전 문제가 해결되지 않으면서 경쟁력이 더 쪼그라들 위험에 처했다"며 "올해에도 보잉은 3년 연속 손실을 기록할 것으로 보인다"고 보도했다.

이런 가운데 올해도 세계 항공산업이 적자 굴레에서 벗어나기 어려울 것이라는 전망이 나왔다. 국제항공운송협회(IATA)가 지난달 26일(현지 시각) 발표한 2021년 항공산업 전망에 따르면 올해 세계 항공업계는 최소한 750억달러(약 84조원)의 손실을 볼 것으로 예상된다. IATA는 지난해 12월만 하더라도 올해 480억달러(약 54조원)의 손실을 전망했으나 두 달도 채 지나지 않아 손실 전망치를 높여 잡은 것이다.

알렉산드르 드 주니악 국제항공운송협회 사무총장은 "백신 접종은 시작됐으나 변종 코로나 바이러스 출현 등으로 각국 정부는 여행 제한 조치를 강화할 것"이라며 "올해 세계 항공산업의 가장 좋은 시나리오는 750억달러의 손실을 보는 것이고, 안좋은 시나리오는 950억달러(약 106조원)의 손실을 보는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