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이 처음으로 개발하는 전투기라는 점에서 오는 4월 있을 한국형 전투기(KF-X) 시제기 출고식은 역사적인 날이라고 생각합니다."

지난달 24일 찾은 경남 사천시의 한국항공우주(047810)(KAI) 본사 고정익동에서는 KF-X 생산 작업이 한창이었다. 축구장 3개 크기(약 6500평)의 고정익동은 기둥이 없는 ‘무주공법’으로 지어져 마치 격납고처럼 탁 트여 있었다. 생산 기종에 따라 유동적으로 생산 라인을 배치하기 위해서다. 일부 부품을 제외하면 전투기 동체 제작부터 최종 조립까지 대부분의 공정이 이곳에서 이뤄진다.

지난달 24일 한국항공우주산업(KAI) 경남 사천공장에서 관계자들이 한국형전투기(KF-X) 시제 1호기 조립 작업을 하고 있다.

생산 라인에는 전투기 전방·중앙·후방 동체뿐 아니라 주익(주날개)과 미익(꼬리날개)이 질서정연하게 배치돼 있었다. 라인 제일 앞쪽에는 부식을 방지하는 연둣빛 프라이머(밑칠)가 칠해진 KF-X 시제 1호기(시험제작기체)가 자리하고 있었다. 손이 닿을 듯한 거리에서 바라본 KF-X 시제 1호기는 거의 완전한 형태를 갖추고 있었다.

KF-X 사업부의 이일우 KAI 상무는 "현재 KF-X 시제 1호기의 경우 92~93%의 공정이 진행됐고, F15K와 비슷한 진회색으로 도색만 남은 상태"라며 "이 과정에 앞서 불순물이 들어가면 안 되는 엔진을 기체에서 빼고 나머지 부분은 마스킹하는 작업을 진행하고 있다"고 말했다. KF-X 1호 시제기는 오는 4월 국민에게 첫선을 보이는 출고식을 앞두고 있다.

◇ 첫 국산 전투기 KF-X, 한 대 만드는데 필요한 부품 22만여개

KF-X 사업은 단군 이래 최대 무기 개발사업이라 불린다. 전투기 개발에만 8조6000억원, 120대 생산에 10조원이 투입된다. 이 사업은 공군의 노후 전투기 F-4, F-5를 대체하는 국산 전투기를 우리 손으로 직접 연구·개발한다는 점에서 의의가 있다. 현재 250여명의 베테랑 작업자들이 KF-X를 제작 중으로, KAI는 오는 2026년까지 총 6대의 시제기와 정적·내구성 시험에 쓰일 지상용 구조시험체 2대를 만들 예정이다.

한국형 전투기(KF-X).

전투기를 비롯해 항공기는 제작 과정에서 용접을 하지 않는다. 대신 일일이 동체에 구멍을 뚫고 볼트와 리벳(나사 부품 종류)으로 촘촘히 연결한다. 튼튼한 볼트로 바느질을 하는 셈이다. 22만여개의 표준품(리벳·볼트·너트 등), 7000여개의 구조물, 1200여개의 배관(튜빙), 550여개의 전자장비와 기계장치, 250여개의 전기배선다발(와이어 하니스). 이 모든 게 KF-X 한 대를 만드는데 들어간다.

그렇기에 전투기는 정확한 조립이 생명이다. KAI는 최근 대형로봇드릴링시스템(LRDS)을 도입했다. 컴퓨터와 센서를 이용해 정확한 지점을 찾아 정교하게 구멍을 뚫는 시스템으로, 기존 작업자가 구멍 하나를 뚫는 데 평균 154초가 걸렸지만, LRDS를 이용하면 25초로 줄어든다.

최종 조립 단계에서는 동체자동체결시스템(FASS)을 사용한다. FASS는 일종의 자동운반차량(AGV)으로, 11개의 레이저를 활용해 정확한 위치에 개별 조립된 전방·중앙·후방 동체를 일렬로 정렬한다. 사람이 직접 작업하는 것보다 정확하고 작업 시간도 80% 단축할 수 있다. 항공기 생산라인에 FASS를 도입한 것은 미국 보잉에 이어 KAI가 전 세계 두 번째다.

◇ "경제적 파급효과 약 80조원… 공동개발 인니와는 분담금 협상 진행 中"

계통시험동에선 아이언버드(실제 전투기의 세부계통 점검용 조립체)로 각종 평가가 진행 중이었다. 과거 T-50 개발 당시에는 미국 인프라에 의존했던 분야지만, 이번 KF-X 개발 과정에서 국내 기술로 해외 선진국 못지않은 인프라를 완벽히 구현했다는 게 KAI 측의 설명이다.

계통시험동 한가운데에는 가상의 전투기가 비행하는 상황을 제어할 수 있는 메인컨트롤룸(MCR)이 자리 잡고 있었다. MCR 옆방에는 KF-X와 똑같은 조종석(콕핏)이 설치된 조종성 평가 시뮬레이터(HQS)가 있었는데, 조종석 앞에 넓게 펼쳐진 화면에는 실제 한반도 지형을 똑같이 스캔한 장면이 나왔다. 시연자가 가상의 KF-X를 이륙시키자 화면에는 주변 지형이 지나가고, 실제 전투기 조종 환경과 똑같은 방식으로 시시각각 변하는 비행 정보가 표시됐다.

제작이 완료된 KF-X는 길이 16.9m·높이 4.7m·폭 11.2m로, 미국산 F35A 전투기와 모양은 비슷하지만 크기는 좀 더 컸다. F35A는 5세대, KF-X는 4.5세대 전투기이지만 KF-X의 운영비용은 F35A의 절반에 불과하다는 게 KAI 측의 설명이다. 다음 달 시제 1호기 출고를 마칠 KF-X는 2022년 7월 초도 비행, 보완 작업 등을 거쳐 2026년 6월 개발을 끝낼 계획이다. 이후 같은 해 7월부터 2028년까지 추가무장시험이 예정돼 있다.

방위사업청 소속 정광선 KF-X 사업단장은 "이번 사업으로 인한 생산유발 효과는 약 24조4000억원, 부가가치유발 효과는 약 5조9000억원, 기술적 파급 효과는 약 49조5000억원, 그리고 취업유발 효과는 약 11만명으로 예상된다"면서 "KF-X 성능과 경쟁 전투기, 그리고 현재 전투기 노화로 교체 시기가 다가온 국가 등을 고려했을 때 양산이 완료되면 300~500대 정도의 시장성이 있다고 본다"고 설명했다.

또 KF-X를 공동 개발하고 있는 인도네시아가 사업을 포기할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오는 데 대해선 "(인도네시아 측과) 협상이 계속 진행되고 있다"며 "서로 입장을 타진하고 공유하는 과정이 진행 중"이라고 말했다. 인도네시아는 전체 사업비의 20%인 1조7000억원을 투자하기로 했으나, 경제 사정 등을 이유로 2017년 하반기부터 분담금 지급을 미루고 있다.

지난달 24일 김진수 KAI 헬기비행시험팀 수석이 직접 소형전투헬기(LAH) 비행 시험을 하고 있다.

◇ 헬기 개발도 활발… "LAH, 미래戰 군단 핵심전력"

지난해 2월 새로 문을 연 약 1만7851㎡(5400평) 규모의 회전익동에선 수리온, 소형민수헬기(LCH) 등의 제작이 한창이었다. 수리온은 2013년에 개발이 완료된 첫 국산 헬기다. 맹금류를 의미하는 ‘수리’와 100을 의미하는 ‘온’의 합성어다. 시속 260km 속도로 최대 450km까지 비행할 수 있고, 주야간 악천후에도 안정적인 기동이 가능하다. 백두산 높이(약 2750m)에서도 제자리 비행을 할 수 있다.

이번 동에서 주목받은 것은 격납고에 자리 잡은 소형무장헬기(LAH)였다. LAH는 수리온 다음으로 KAI가 개발 중인 두 번째 국산 헬기다. 육군의 노후 공격헬기(500MD, AH-1S) 대체가 목적으로 연구개발에 약 6643억원, 양산에 6조원 투입된다. KAI는 지난 2015년 6월 개발에 착수한 이래 3년여만인 2018년 12월 시제 1호기를 처음 공개하고 지난해 7월 초도비행에 성공했다.

이날 김진수 KAI 헬기비행시험팀 수석은 직접 LAH를 5분여간 운전하며 6~7m 저공비행 후 급상승에 이어 슬라럼(장애물 회피 기술) 및 피루엣(Yaw회전·기체를 팽이처럼 회전시키는 기술) 비행을 선보이는 등 기동력을 과시했다. 지난해 12월 방위사업청으로부터 ‘잠정 전투용 적합’ 판정을 받은 LAH는 오는 2022년 체계개발 완료 계획을 앞두고 최초양산을 위한 기반을 마련하게 됐다.

김 수석은 "LAH는 기동성이 뛰어나고, 수리온과 디스플레이·시험장치·조종장치 등 내부 구조 90% 이상이 유사해 기존 조종사들이 빠르고 쉽게 운용할 수 있다"면서 "‘유·무인 복합운용체계(Manned-Unmanned Teaming)’를 적용해 향후 인구절벽에 따라 병력이 감축된 미래전(戰)의 핵심 기동타격 전략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