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신 접종을 'K-방역 시즌2'로"…'K-접종' 마케팅 강화
대통령은 백신 수송 훈련, 총리는 트럭에 봉인지 붙여
文, 1호 접종 지켜봐…탁현민 "국민들에게 소상하게 공개"
野, 거센 비판…"가난한 나라로 갈 분량을 우리가 받는다"

"사람들은 이것을 '백신'이라고 부르지만, 저는 '일상'이라고 부르고 싶습니다."

정세균 국무총리가 26일 국내에서 코로나 백신 접종이 시작된 뒤 소셜미디어(SNS)에 올린 글이다. "백신을 저처럼 오매불망 기다려 온 '세균'도 없을 겁니다"라며 자신의 이름을 이용한 '아재개그'도 했다. 문재인 대통령도 함께 "회복하고 도약하는 봄이 다가왔다"며 희망의 메시지를 내보냈다.

이처럼 정부가 코로나 백신 첫 접종에 큰 의미를 담으며 감성적 문구로 홍보에 나섰지만, 어디에도 103개 나라가 먼저 코로나 백신을 접종을 시작했다는 내용은 등장하지 않는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중 백신 접종 '꼴찌'라는 사실 역시 마찬가지다.

정치권에서는 4월 서울·부산시장 보궐선거를 앞두고 정부가 백신 확보가 늦었다는 사실은 감추고, 'K-접종' 슬로건으로 지난해 'K-방역'처럼 문재인 정권 지지율을 올릴 필요가 있기 때문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K-접종', 丁총리 밀고 文대통령 당기고

정 총리는 코로나 백신 도입을 준비하면서 여러 차례 'K-접종'을 강조했다. 지난 6일에는 국립중앙의료원 중앙예방접종센터를 찾아 "첫 접종이 초읽기에 들어갔다"며 "그동안 K-방역의 선봉에 서 왔듯, K-접종의 신화를 쓰는 데도 선도적 역할을 해달라"고 말했다. 지난 15일에는 자신의 페이스북에 코로나 대유행으로 양극화가 심해지는 'K-자 회복'이 아닌 'K-회복'을 해야 한다면서, "K-방역이 이룬 성과처럼 K-접종이 모범 사례가 될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겠다"고 썼다. 25일에는 "백신 접종을 'K-방역 시즌2'로 만들어 나가겠다"는 말도 했다.

정세균 국무총리 SNS 캡처

'K-접종'을 준비하는 장면에도 정 총리는 모습을 나타냈다. 아스트라제네카 백신을 위탁 생산하는 SK바이오사이언스 안동 공장에선 지난 24일 국내 공급용 백신 물량이 첫 출하됐는데, 이 현장에 정 총리가 참석했다. 그는 이상균 SK바이오사이언스 안동공장장에게서 백신 출하 현황을 보고 받고, 백신 수송 차량을 직접 봉인한 후 환송했다. 정 총리는 "트럭에 실린 백신이 코로나19로 힘들어하는 국민들께 희망의 봄을 꽃피울 수 있는 씨앗이 되기를 기대한다"고 했다.

'K-접종' 준비는 문 대통령도 직접 챙겼다. 지난 3일 인천국제공항을 찾아 코로나 백신이 국내에 들어올 때를 대비한 민·관·군·경 합동 모의훈련을 참관했다. 당시 문 대통령은 미국 오리건주에서 수송차량이 눈 때문에 막힌 사례를 거론하며 "수송 도중 돌발 상황 때 어떻게 대처할지 요령을 미리 만들어야 한다"고 말하기도 했다. 이 때까지 국내 도입이 확정된 백신은 국내에서 생산해 육로로 이송되는 아스트라제네카 백신 뿐이었다.

정세균 국무총리가 지난 24일 오전 코로나19 백신 출하 현장점검으로 아스트라제네카 국내 위탁생산업체인 경북 안동시에 있는 SK바이오사이언스를 방문, 이천 물류센터로 이송되는 백신 수송차량 봉인과정을 살피고 있다.

'K-접종'의 가장 중요한 행사였던 '1호' 접종도 직접 챙겼다. 문 대통령은 26일 오전 서울 마포구 보건소를 찾아 1호 접종자로 나선 김윤태(60) 넥슨어린이재활병원장과 2호 접종자 이정선(32) 시립서부노인전문요양센터 작업치료사가 아스트라제네카 백신 주사를 맞는 모습을 지켜봤다. 문 대통령은 접종이 끝나자 "당분간 먼저 접종하는 분들이 이상이 없는지가 국민들의 관심사가 될 것"이라며 "이상이 없길 바라고, 백신이 아주 안전하다는 것을 많이 알려주면 좋겠다"고 덕담을 건넸다.

문 대통령의 행사 참석은 '국민과 함께하는 K-접종'의 의미를 담았다. 탁현민 청와대 의전비서관은 페이스북에 "대통령의 백신 접종 현장 방문은 코로나19가 특별한 누구에게만 닥쳐온 재난이 아니었으니, 코로나19 종식의 시작이 될 첫 번째 접종자는 특정 인물·지역이 아닌 모두가 함께 일상을 회복하는 걸음을 같이 하자는 의미"라고 설명했다. 또 "우리의 백신 접종 시스템과 준비 상황을 국민들에게 소상하게 보여드리자는 의도"라고 했다.

문재인 대통령이 지난 3일 오전 인천국제공항 대한항공 화물터미널에서 열린 코로나19 백신 수송 모의훈련에 참석, 관계자들과 인사하고 있다.

◇野 "우물쭈물하다 막차 타고 이제 겨우 접종 시작"

그러나 야당은 'K-접종'을 강하게 비판한다. 주호영 국민의힘 원내대표는 26일 "아프가니스탄. 세네갈보다도 접종 개시가 늦었다"며 "우물쭈물하다가 백신 확보를 놓쳐 막차를 타고 이제 와서 겨우 백신 접종을 시작한 데 대해 정부와 민주당은 국민 앞에 먼저 사과부터 해야 한다"고 했다. '전세계 105번째, OECD 꼴찌'라는 한국의 백신 접종 성적표를 정부가 애써 감추고 있다는 지적이다.

정부는 27일부터는 의료진을 대상으로 화이자 백신 접종을 시작한다. 백신 공동구매·배분 국제 프로젝트인 '코백스 퍼실리티(COVAX Facility)'를 통해 들여온 5만8500만명분이다. 그러나 이 화이자 백신 물량도 논란이 되고 있다. 1인당 국내총생산(GDP)가 3만달러가 넘는 한국이 제때 백신 확보를 못해 개발도상국에게 돌아가야 할 물량을 받아오는 게 아니냐는 지적이 나오고 있기 때문이다.

코백스가 제공하는 코로나 백신이 빈곤국(world’s poorest countries)을 위한 것이라고 적혀 있다.

로이터는 지난 3일(현지 시각) 세계백신면역연합(GAVI)을 인용해 "코백스가 올해 상반기에 빈곤국(poorer countries) 3억3000만회분 이상의 코로나 백신 배분을 세웠다"고 전했다. 이 계획은 상반기에 인도 세럼과 한국 SK바이오사이언스를 통해 아스트라제네카 백신 3억3600만회분을 공급하고, 화이자 백신 120만회분을 공급한다는 내용이다. 한국이 '빈곤국'에 포함돼 코백스가 나눠주는 화이자 백신 120만회분 중 11만7000회분을 가져오는 것이다. 한국과 함께 화이자 백신을 받는 다른 나라들은 대부분 1인당 GDP가 3000~6000달러 수준의 개도국이다.

의사 출신인 박인숙 전 미래통합당(현 국민의힘) 의원은 페이스북에서 한국의 백신 접종 상황에 대해 "전세계 거의 맨 꼴찌"라며 "그것도 아스트라제네카가 국내 공장에서 생산돼 이제라도 접종을 받을 수 있어서 다행"이라고 했다. 또 "화이자는 코백스를 통해서 들어오는 것으로, 가난한 나라로 갈 분량을 우리가 받는 것"이라고 설명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