對中포위망에 소극적이면 韓배제 공급망 구성 가능성
"한국이 미국에 동맹으로 협력하느냐에 달린 문제"
日 반도체소재 한국수출규제도 새 국면 맞을 수도

조 바이든 대통령의 행정명령 서명을 계기로 미국 정부가 반도체 등 핵심 산업 제품의 공급망 점검에 들어갔다. 삼성전자(005930)의 미국 반도체 생산라인 증설에 도움이 될 수도 있지만, 국내 기업의 수출량 절대 다수를 차지하는 중국 시장에서 타격을 입을 수도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또 미국이 반도체 공급망이라는 고삐로 동맹국의 군기 잡기에 나선 점도 한국 반도체 업계에는 찜찜한 일이다. 일본, 호주 등 동맹국들을 연결해서 중국을 포위하겠다는 안보전략에 한국이 소극적일 경우, 미국이 반도체 협력 파트너로 일본·대만 연합을 선택할 수 있다는 전망이 나온다.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 등 한국 반도체 업체들의 글로벌 시장에서 지배력이 위협받을 수 있다는 의미다.

◇ 화웨이 제재 때 ‘대체효과’ 이번에도 가능할까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이 지난 24일(현지시각) 워싱턴D.C 백악관 집무실에서 민주·공화 양당 의원들과 만나 중요 산업 재료의 공급망 문제를 논의하면서 컴퓨터 칩을 들어 보이고 있다.

바이든 대통령은 지난 24일(현지시각) 반도체, 희토류, 의료장비 및 의약품, 전기차 배터리 등의 핵심 소재 및 부품 공급망을 재검토하라는 행정명령에 서명했다. 바이든 대통령은 서명식에서 "반도체 칩 공급 부족으로 자동차 생산이 지연됐고 그로 인해 미국인 노동자의 근무 시간이 줄었다"고 언급하는 등 반도체 산업을 특히 강조했다. 바이든 대통령은 그러면서 "우리의 이익과 가치를 공유하지 않는 나라에 공급망을 의존해서는 안 된다"고 했다. 이번 행정명령이 중국에 대한 견제 조치라는 분석이 나온 이유다.

미국이 공급망 검토후 한국 등 반도체 회사의 대(對) 중국 수출을 제한할 경우 심각한 악재가 될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화웨이 제재를 통해 개별기업 제재가 중국내 다른 기업을 키워준 결과를 지켜본 미국이 개별 기업을 넘어서는 새로운 수출 규제 방식으로 접근할 수 있다는 이야기다. 이 경우 한국 반도체 기업은 ‘대체효과’라는 비상구가 없어 타격을 그대로 받을 수 있다.

26일 산업통상자원부에 따르면, 지난해 반도체 수출액은 1002억5000만달러였는데 이중 홍콩을 포함한 중국으로의 수출은 총 606억5000만달러로 압도적 비중을 차지했다. 다른 곳으로의 수출은 미국은 80억7000만달러, EU 22억5000만달러 등에 그쳤다.

지난해 9월 화웨이 제재 전까지만 해도 국내 반도체 업체들의 화웨이로의 수출이 막혀 타격을 입을 것이라는 예상이 나왔지만, 제재에 들어가니 중국내 경쟁사인 샤오미나 비보, 오포 등의 반도체 수요가 늘어나면서 화웨이발 충격을 상쇄했다. 2020년 중국으로의 반도체 수출은 2019년에 비해 오히려 1.7% 늘었다. 삼성전자 메모리사업부 임원을 지낸 양향자 의원은 "시안 공장 등 중국에서 만들어진 메모리 반도체는 대부분 중국에서 소비되지만, 그를 활용해 만들어진 제품이 미국에 들어간다"면서 "미국이 화웨이 등 중국의 개별기업 제재만으로 한계가 있다고 보고 공급망을 통제하기 위한 방안을 마련하고자 상황을 파악하는 것 같다"고 말했다.

바이든 대통령은 "공급망의 복원력 확보는 미국에서의 생산을 늘리는 것도 중요하지만, 가치를 공유하고 신뢰할 수 있는 파트너 국가와 긴밀하게 협력하도록 해야 한다"고도 했다. ‘믿을 수 있어야 협력한다’고도 읽을 수 있는 대목이다. ‘중국과 거래하는 업체는 미국의 공급망에 못들어온다’는 식의 ‘세컨더리 보이콧’은 화웨이 제재 과정에서 이미 적용됐다. 로버트 스트레이어 미국 국무부 부차관보는 지난해 7월 LG유플러스(032640)에 화웨이의 통신장비를 사용하지 말라고 공개 요구하기도 했다.

◇ "韓, 반도체 소재·장비 국산화에 日공급망 대만 접근 가능성"

미국 내 반도체 생산을 늘리는 정책이 본격화되면 삼성전자가 혜택을 받을 수 있다는 기대도 있다. 행정명령 서명식에는 반도체의 미국 내 생산 등에 투자고 인센티브를 주는 법안(CHIPS for America Act)을 발의한 마이클 매카울 하원의원 등도 초대받았기 때문이다. 반도체 공장을 짓는데 막대한 투자가 필요한 만큼, 미국 정부가 텍사스 오스틴에 반도체 생산라인 증설을 검토중인 삼성전자의 투자 유치를 위해 추가 인센티브를 제안할 수 있다.

그러나 바이든 행정부가 미국 중심의 공급망이라는 수단으로 트럼프 행정부를 거치며 이완된 아시아 태평양 지역의 동맹을 재정비하기 시작했고, 이 과정에서 한국이 미국과 중국 사이에서 미뤄온 선택을 해야하는 상황이 왔다는 점은 전문가들 사이에서 크게 이견이 없다.

한국이 미·중 간 줄타기를 계속하고 확실한 미국편이라는 신호를 주지 않는다면, 미국이 한국을 빼고 일본과 대만 등 경쟁자들을 첨단산업의 파트너로 선택할 수 있다는 우려까지 나온다. 벌써부터 반도체 업계에서는 대만 TSMC를 중심축으로 한 미국·일본·대만 간 반도체 동맹이 형성될 가능성도 제기된다.

일본의 대(對) 한국 수출규제로 인해 한국이 일본산 반도체 관련 소재·장비 국산화를 시도하고, 부분적 성과를 내고 있는 현 상황이 오히려 일본과 대만의 관계를 가깝게 만들 가능성이 있다고 지적도 나온다. 과거 삼성전자 등의 공급망이었던 일본 기업들이 생존을 위해 대만이라는 또다른 반도체 강국을 새 납품처로 선택할 수 있다는 것이다. 시장과 첨단기술을 주도하는 미국이 한국을 등지고 일본·대만을 선택할 경우 한국의 반도체 산업은 고사 직전의 위기에 놓일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문종철 산업연구원 연구위위원은 "한국이 미국에 동맹으로서 협력하느냐에 달린 문제지만, 일본과 대만이 손을 잡고 미국이 그쪽을 키워주는 방향으로 갈 수도 있다"면서 "그러면 메모리 반도체에서 한국과 역량이 비슷한 골치 아픈 경쟁자가 될 수 있다"고 말했다.

◇ 미 행정부, 일본의 對한국 수출 규제에 개입할까?

한편, 이번 행정명령을 계기로 일본의 ‘반도체 공정 소재 수출 규제’에서 불붙은 한·일 간 갈등이 새로운 국면을 맞을 수도 있다. 미국이 동맹국을 활용해 공급망을 안정화하려는 상황에서 양국간 갈등을 적극적으로 중재하려고 나설 수 있기 때문이다.

특히 양국간 갈등이 촉발된 지점은 반도체 산업 공급망으로 이번 행정명령 검토 대상이다. 한국 정부는 일본에 수출 규제를 철회하라는 요구를 해왔고, 일본은 이를 거부해 왔다. 문 연구위원은 "미국이 중재는 하고 싶어 하겠지만, 한국이 납득할 수 없는 안을 제시할 경우 상황이 더 나빠질 수도 있다"고 했다. 미국이 한국정부가 수용하기 어려운 중재안을 제시할 경우, 한국은 국내정치와 국제외교 사이에서 길을 잃을 수 있다는 이야기다.

2020년 반도체 등 주요 ICT 제품의 국가별 수출 비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