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량용 반도체 수급난이 최소 오는 2분기까지 지속될 것이라는 전망이 나오면서 국내 완성차업계에 비상이 걸렸다. 특히 내수의 대부분을 차지하는 현대차(005380)그룹은 지금껏 반도체 재고를 쌓아둬 문제가 없을 것으로 알려졌으나, 예상보다 수급난이 길어지면서 생산차질이 불가피할 것으로 보인다.

자동차를 만들고 있는 일본 혼다 공장.

현대차·기아(기아차)에 부품을 공급하는 현대모비스(012330)는 24일 "일부 스펙의 반도체 품목을 집중관리 품목으로 지정해 실시간으로 재고상황을 확인하는 등 비상대응을 시작했다"며 "반도체가 워낙 여러군데 들어가고 여러 업체들이 찾고 있어 수급상황이 좋지 않다"고 설명했다. 이날 현대차·기아는 "차량 생산계획 조정과 반도체 메이커와 협상 등을 통해 가동을 이어가고 있지만, 일부 반도체 부품은 수급이 원활하지 않다"고 밝혔다. 차량용 반도체의 세계적 대란에도 자신감을 보였던 한 달 전과는 다른 모습이다.

현대모비스는 지난달까지 "현재 부품별로 최대 10개월에서 2개월 가량의 차량용 반도체 여유분을 보유 중"이라고 말했다. 현대차 그룹도 지난달 27일 컨퍼런스콜을 통해 "차량용 반도체 공급망을 전체적으로 살펴봤고, (재고가) 빠듯한 품목을 기준으로 집중관리해 단기적으로 생산 차질 없이 준비한 상황"이라고 했다. 업계에서는 차량 반도체 수급난이 지속되면 반도체 재고를 쌓아둔 현대차와 기아가 다른 완성차 업체에 비해 유리한 위치에 서게 될 것이라는 전망도 나왔다.

국내외 완성차 업계는 지난해 10월부터 시작된 반도체 수급난으로 이미 생산차질을 겪고 있다. 폭스바겐은 1분기에만 중국 5만대를 포함해 총 10만대 감산을 예고했고, 아우디는 1분기 1만대 생산감소 및 1만명 임시휴직에 돌입했다. 포드는 지난주까지 독일 자를루이 공장가동을 완전히 중단했었다. 지난 8일부터 생산량을 절반으로 줄인 한국GM 부평공장은 이번주까지도 생산량 감축을 이어갈 예정이다.

현대차·기아는 최근까지도 반도체 대란으로 인한 문제는 없다는 입장이었다. 앞서 겪은 부품 부족 사태로 재고관리 체계를 재정비해뒀기 때문이다. 지난해 중국산 와이어링 하니스 부족사태와 2019년 7월 일본 정부의 반도체 소재 수출 규제로 부품 수급에 차질을 빚으면서 현대차와 기아는 주요 부품 공급처를 복수로 늘리는 등 공급망 다변화 방식으로 체계를 재정비했다.

하지만 차량용 반도체 수급이 전세계적으로 어려워지고 최소 상반기, 늦으면 하반기까지 이어질 것으로 예상되면서 현대차와 기아도 긴장을 놓을 수 없는 상황이 됐다. 특히 현대차 그룹이 올해 새로 선보일 첫 전용전기차 플랫폼 E-GMP를 탑재한 모델들의 생산에도 차질이 생길 수 있다. 현대차는 전날 아이오닉 5를 세계 최초로 공개했고 3월부터 유럽 수출용, 4월에 내수용 양산을 시작한다. 기아는 오는 7월 CV(프로젝트명)를, 제네시스는 올 하반기 JW(프로젝트명)를 출시한다.

현대차·기아는 매주 단위로 주문량과 생산해야할 재고 등의 기준을 확인해 필요한 부품을 조정하고 배치한다. 반도체 수급이 막힐 시, 회사에서 밀어주는 모델이라고 해도 먼저 생산하기 어려운 구조다. 특히 전기차는 일반적으로 내연기관 자동차에 비해 반도체가 더 많이 필요하다. 일반 자동차에는 200~300여개의 차량용 반도체가 들어가는데 비해 전기차에는 1000개 이상의 반도체가 탑재된다.

업계 관계자는 "올해 글로벌 완성차 업체들 모두가 전기차 출시를 계획하고 있는데 반도체 수급난이라는 생각지 못한 암초를 만난 격"이라며 "국내 완성차 산업의 타격은 중소협력사로도 이어질 수 밖에 없기 때문에, 지금이라도 정부가 나서서 차량용 반도체 확보에 공을 들여야 한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