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지하철 4호선 신용산역 내 여자 장애인 화장실이 여자화장실이 아닌 남자화장실 안에 설치돼 있어 논란이 일고 있다. 서울교통공사는 여자화장실 내부 공간이 부족해 어쩔 수 없었다는 입장이지만 장애인의 기본적인 권리마저 고려하지 못한 구조라는 지적이 나온다.

지난 23일 서울지하철 4호선 신용산역 역사 내 화장실 모습. 여자화장실 입구 벽면에 여자 장애인 화장실은 남자화장실에 설치돼 있다고 표시돼 있다.

지난 23일 서울지하철 4호선 신용산역 역사 내 화장실을 방문해 보니, 왼쪽은 여자화장실 오른쪽은 남자화장실로 출입문이 구분돼 있었다. 그러나 여자화장실 출입구 벽면에는 ‘여자 장애인 화장실로 가려면 남자화장실로 들어가야 한다’는 뜻의 화살표가 그려져 있었다. 장애인 여성이 화장실을 이용하려면 여자화장실이 아닌 남자화장실 입구로 들어가야 했다.

24일 서울교통공사에 따르면 2019년 기준 신용산역은 일 평균 이용객 3만3699명으로 전체 288개 지하철역 중 103번째로 승하차 인원이 많다. 게다가 서울 한복판에 위치한 탓에 출퇴근 시간대가 아닌 평일 낮 시간에도 역사 내 화장실 이용객은 끊임없이 이어졌다. 이 때문에 여성 장애인이 남자화장실 입구로 들어가기란 쉽지 않아 보였다.

이곳을 찾은 한 이용객은 소셜미디어(SNS)에 글을 올리고 "화장실을 이용할 때 남자 화장실 안으로 들어가야 해 곤욕이었다. (화장실을) 이용하는 남성들 눈에 띄지 않도록 해야 하고, 화장실을 이용하는 내내 경계하며 자동문 쪽을 바라봐야 했다"고 했다.

그는 "제일 싫은 건 화장실을 이용하고 나오는 남성과 마주치는 일이다. (남성들도) 당황하면서 ‘여자화장실은 저쪽’이라고 말한다"며 "자신의 성별에 따라 눈치보지 않고 화장실을 이용할 권리는 누구에게나 필요하다"고 썼다.

서울시는 지난 2016년부터 ‘지하철 장애인 편의시설 실태조사 및 개선 사업’을 시행해오고 있다. 서울교통공사는 장애인 불만족 지수가 높은 화장실에 대해 세면대 비누 위치와 화장지걸이 높이 등을 조정했을 뿐, 정작 가장 필요한 화장실 성별 구분 등은 중장기 과제로 미뤘다. 개선 사업이 시작된 지 5년이 넘은 이날까지도 뚜렷한 해법은 없는 상황이다.

문애린 서울장애인차별철폐연대 상임대표는 "장애인 화장실이 다른 성별 화장실 안에 들어가 있거나 성별 구분 없이 남녀 공용으로 쓰이는 경우는 여전히 많다"며 "지하철역 화장실의 3분의 1정도는 성별 구분이 안 돼 있다"고 말했다.

문 대표는 "장애인을 무성(無性)적인 존재로 여기고 장애인 화장실 역시 유휴공간 정도로 인식하는 것이 근본적인 문제"라면서 "화장실 설치가 제대로 돼 있다고 해도 관리가 부실해 청소도구함으로 전락하거나 이용 중에 자동문이 불쑥불쑥 열리기 일쑤"라고 지적했다. 그는 "화장실마다 문제점도 천차만별이라 지하철 화장실은 이용하기 꺼려진다"고 덧붙였다.

지하철역 시공을 담당한 서울교통공사는 건축 구조상 어쩔 수 없다는 입장이다. 공사 관계자는 "2016년에 역사 화장실을 재건축했는데, 기존에 없던 장애인 화장실을 새로 설치하는 과정에서 불가피한 측면이 있었다"며 "역사가 지하에 있기 때문에 화장실을 넓히려면 땅을 더 파야 해 어쩔 수 없었다"고 설명했다.

이 관계자는 "장애인 시설 환경 개선을 위한 발전 단계라고 생각한다"며 "구조 때문에 여자 장애인 화장실을 여자화장실 내부로 옮기기는 힘들지만, 칸막이를 세워 남자화장실 내부를 분리할 수 있도록 하겠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