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난지원금 놓고 '집안 싸움' 불거지며
대립 구도 휘말리자
정부 여당 "불필요한 논쟁 끝내자"
지원 방식 아닌 목적에 따라 분류키로
文대통령 "5차 지원금은 '국민 위로지원금'" 언급

"코로나에서 벗어날 상황이 되면 '국민 위로지원금' '국민 사기진작용 지원금' 지급을 검토할 수 있다."

문재인 대통령이 지난 19일 더불어민주당 지도부와의 간담회에서 전(全) 국민 대상 '5차 재난지원금'을 지급하겠다며 이렇게 말했다. 당정이 4차 재난지원금을 코로나19 피해 계층에게 '선별' 지원하기로 결정하며 '보편' 지원안이 빠진 데 따른 것이다.

그런데 문 대통령은 재난지원금이라는 용어 대신 '국민 위로지원금'이라는 표현을 썼다. 코로나19 팬데믹이 시작된 이후 정부가 지급한 지원금은 방식에 상관 없이 차수만 변경될 뿐 '재난지원금'으로 통용돼왔다.

문 대통령이 새로운 용어를 들고 나온 것은 최근 불거진 '보편·선별' 논란과 무관치 않다. 보편·선별 지원을 둘러싼 당과 정부, 당내 유력 대권 주자들의 '집안 싸움'이 계속되며 대립 구도가 부각되자, 논란에 휩쓸리지 않기 위해 선을 그을 필요가 있다고 판단한 것이다. 이에 당정은 재난지원금 용어를 지원 방식이 아닌 '지원 목적'에 맞게끔 손질하자는 데 뜻을 모았다고 한다.

문재인 대통령이 19일 오전 청와대 본관에서 열린 더불어민주당 지도부 초청 간담회에 참석하며 이낙연 더불어민주당 대표와 인사를 하고 있다.

21일 민주당 관계자는 "당정이 4차 재난지원금 논의를 시작하며 가장 먼저 재난지원금 용어를 재정립하기로 했다"며 "손실 보상과 경기 부양의 목적에 맞게끔 정확한 용어를 사용하자는 취지"라고 했다. 이어 "보편 지원과 선별 지원을 둘러싼 논쟁이 무의미하다고 보고 이를 정리할 필요가 있다고 판단한 것"이라고 했다.

정부와 여당 고위 관계자는 최근 들어 '보편·선별 지원은 적절한 용어가 아니다'라는 메시지를 내고 있다. 정세균 국무총리는 19일 CBS라디오에 인터뷰에서 4차 재난지원금 선별 지급 방침을 밝히며 "(선별지급이 아닌) 차등지급이 적절한 용어"라며 "4차 재난지원금은 차등 지급으로 준비를 하고 있다"고 했다.

민주당 김종민 최고위원도 지난 17일 라디오에서 "'선별이냐, 보편이냐'는 정확한 분류가 아니다. '피해 보상을 위한 지원이냐, 경기 진작을 위한 지원이냐' 지원 목적으로 용어를 부르는게 훨씬 더 정확하다"고 했다. 염태영 최고위원도 라디오에서 "재난지원금을 선별과 보편으로 구분하는 것은 정확한 표현이 아니다"라며 "지원 목적에 따라 '피해 맞춤형 지원이냐, 경기 부양 지원이냐' 이렇게 구분해야 한다"고 했다.

재난지원금은 크게 정부의 코로나19 방역 지침으로 피해를 입은 자영업자·소상공인과 재난 지원 사각지대에 놓인 계층을 위한 ‘선별 지원’과 경기 진작을 위한 전 국민 ‘보편 지원’으로 나뉜다. 앞서 1차 재난지원금은 작년 5월 전 국민에게 가구당 최대 100만원씩 총 14조3000억원이 지급됐으며, 2차와 3차는 자영업자 등을 위주로 각각 7조 8000억원, 9조3000억원이 선별 지원됐다.

보편·선별 논란이 본격화 된 것은 4차 재난지원금 논의가 시작되면서 부터다. 민주당은 1~3차와 달리 4차 지원금은 전 국민과 피해 계층에게 병행 지원하겠다는 뜻을 밝혔다. 그러자 이를 두고 이낙연 민주당 대표와 이재명 경기지사, 정세균 국무총리 등 여권 유력 대권 주자들이 갑론을박을 벌이며 대립했다.

당정 갈등도 격화됐다. 정부가 재정 부담을 이유로 보편 지원이 불가하다는 입장을 재차 굽히지 않자, 민주당의 '홍남기 때리기'는 수위가 높아졌다. 홍남기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이 페이스북에 "국가 재정은 화수분이 아니다"며 반박성 글을 올리자, 최인호 민주당 수석대변인은 당 최고위 직후 공개적으로 "’홍 부총리는 즉각 사퇴해야 한다’는 의견이 (지도부에서) 나왔다"고 말했다.

이낙연 대표는 지난 18일 민주당 시도당위원장 연석회의에서 "애국은 (기재부) 혼자 하는 게 아니다" "당 대표가 어렵게 이야기를 꺼냈는데 바로 SNS에 글을 올려서 면박을 주면 어떻게 하자는 것이냐"며 불편한 기색을 드러냈다.

정치권 일각에서는 당초 민주당이 공언한 '4차 재난지원금 전 국민 지원' 공약이 사실상 실패하자, 이에 대한 비판을 피하기 위한 의도가 깔려있다는 분석도 나온다. 4월 서울·부산시장 보궐선거, 내년 대통령 선거를 앞두고 반복되는 재난지원금 지급이 '선거용 재정 퍼붓기'를 연상시키는 것도 여권에는 부담으로 작용하고 있다.

민주당 내부에서는 전 국민을 상대로 1인당 최소 20만원 이상을 지급한 재난지원금이 작년 총선 승리의 1등 공신이었다는 평가가 나온다. 이 때문에 주요 선거를 앞두고 민주당이 재난지원금 지급을 서두르는 것을 두고 선거용이라는 비판이 끊이지 않는다.

국민의힘 관계자는 "전 국민 지원 공약이 자신들 뜻대로 관철되지 않자 '지원 대상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목적이 중요하다'며 강조하고 있는 것인데, 본질은 달라지지 않는다"며 "선거용 돈풀기일 뿐 말장난과 다름 없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