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육청 재량평가·감점점수 확대 소급적용이 결정적
법원 "갱신제 본질 정면으로 위배"

세화고 김재윤 교장(왼쪽)·배재고 고진영 교장이 18일 오후 서초구 서울행정법원에서 열린 자율형 사립고등학교 지정 취소처분 취소 청구 소송에서 승소 판결을 받은 후 취재진 질문에 답하고 있다.

자율형사립고(자사고)인 서울 배재고와 세화고에 내려진 자사고 지정 취소처분이 법원에서 뒤집힌 데에는 서울시교육청이 무리한 감점제도를 소급적용한 것이 결정적 요소로 작용했다.
자사고 재지정 평가 제도는 일종의 갱신제도인데, 서울시교육청이 정부의 자사고 폐지 정책에 따라 이 제도에 '자의적' 기준을 갖다댔다고 법원이 판단한 것이다.

19일 서울행정법원 판결문에 따르면 서울시교육청은 2019년 시행한 자사고 재지정 평가에서 기준 점수를 60점에서 70점으로 올렸고, 교육청이 재량으로 평가할 수 있는 항목을 신설했다. 감사로 감점할 수 있는 점수도 3점에서 12점으로 늘렸다. 서울시교육청은 이러한 변경된 기준을 평가대상 기간인 2015년부터 적용하겠다며 2018년 12월에 각 자사고에 전달, 2019년 4월 심사를 진행했다.

심사 결과 배재고는 65.0점, 세화고는 67.5점을 받아 재지정 기준(70점)에 미달해 서울시교육청으로부터 지정취소 처분을 받았다. 다만 두 학교는 법원에 지정취소처분 효력정지 가처분 신청을 내고 행정소송도 제기하면서 자사고 지위를 유지해 왔다.

재판부는 서울시교육청의 자사고 재지정 평가 제도가 일종의 갱신제로 봤다. 이에 따르면 행정청은 '자의'가 아니라 객관적인 기준에 의해 심사해야 하며 자사고 측에 심사기준을 사전에 알려줘야 한다. 특히 기준점수와 감점제도 상향은 재지정 여부에 큰 영향을 미쳤던 만큼 미리 공표했어야 했다는 것이다. 재판부는 "갱신제의 본질과 사전에 공표된 심사기준에 따라 공정한 심사가 이루어져야 한다는 요청에 정면으로 위배된다"고 했다.

재판부는 이번에 신설된 '고교입학전형 영향평가의 충실도' 및 '교실수업 개선 노력 정도'과 배점이 바뀐 항목들 자체에 대해선 문제가 없다고 봤다. 그러나 이로 인해 배재고는 -17.2점 감점, 세화고는 -9.9점 감점을 받았다.

두 학교는 서울시교육청 재량평가 항목 중 '학생참여 및 자치문화 활성화'에서도 소급적용으로 감점을 당했다.

배재고는 '학급자치 활성화를 위한 학급운영비 확보(학급당 20만 원 이상)'과 '학생회·학교장 간담회(학기별 2회 이상 운영)' 항목과 관련해 '2018년도에야 학급비를 20만원 이상 상향 지원하고 간담회를 연 4회 이상 실시해, 2015년과 2017년에는 해당 요소를 충족하지 못했다'며 감점 요소로 지적받았다. 세화고는 '2017년부터 학급회의 격주 1회 이상 실시의 원칙을 세웠으나 우수성을 확인할 자료가 없고, 학생자치회 실질 예산이 일부 연도의 경우 적절히 편성되지 못했다'며 감점을 당했다.

이 외에도 재판부는 서울시교육청이 평가항목에 넣은 '학부모 학교 교육 참여 확대 및 지역 사회와의 협력' 지표에 대해 "자사고 지정 목적과 관련성이 적다"며 "서울시교육청이 추진하는 '서울형 혁신학교 운영 기본계획'과 흡사한 내용"이라고 했다. 또 기존에 자사고가 높은 점수를 받아온 '학교 만족도' 평가 영역 배점을 15점에서 8점으로 대폭 축소하면서 교육청의 재량평가가 재지정 취소에 영향을 크게 작용했다고 판단했다.

재판부는 "서울시교육청이 평가지표와 평가기준에 중대한 변경을 가하였고, 평가대상기간이 이미 대부분 지나고 그 기준을 소급적용한 후 자사고 지정 목적 달성이 불가능하다고 평가했다고 인정할 수 있다"며 "재지정 제도의 본질 및 적법절차원칙에서 도출되는 공정한 심사 요청에 반하므로 재량권을 일탈·남용한 것에 해당한다"고 판시했다.

재판부가 이번에 배재고와 세화고의 손을 들어주면서, 서울시교육청과 소송 중인 나머지 6개 자사고(경희고·숭문고·신일고·이대부고·중앙고·한대부고)도 자사고 지위를 유지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숭문고·신일고 1심 선고는 내달 23일 예정됐고, 나머지 학교도 선고만 남긴 상태다.

한편 교육부가 발표한 '고교 서열화 해소 방안'에 따르면 2025년 3월에는 자사고와 외국어고, 국제고가 일반고로 전환된다. 자사고와 외고, 국제고 등 24곳은 학교 폐지를 위해 초·중등교육법 시행령을 개정한 것은 기본권 침해에 해당한다며 헌법소원 심판을 청구한 상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