中 "경제·정치적 이익 따지지 않고 공공재로 백신 지원"
'이기주의' 비판 받는 美 겨냥, 유럽 내 영향력 확대 노력
콧대 높은 佛·獨 이어 오스트리아까지 "중국 백신 환영"
WSJ "中, 유럽 내 발자국 늘리려고 백신 '후하게' 공급"

중국 정부가 자국 백신을 '공공재'로 선언하며 백신 부족 사태를 겪고 있는 유럽 국가들에 대한 영향력을 키우고 있다.

중국이 유럽 국가들에 대한 '백신 지배력'을 확대하고 있다. 유럽 대륙을 둘러싸고 미중 간 패권 경쟁이 펼쳐지는 가운데 중국이 코로나19 백신 부족 사태를 겪는 유럽 각국에 '백신 공공재'를 선언하며 전략적으로 영향력을 키우는 작업에 나선 것이다.

왕이 중국 국무위원 겸 외교부장은 18일 열린 유엔 안전보장이사회 장관급 화상회의에서 "중국은 코로나19 백신 배포에 대해 어떠한 경제적·정치적 이익도 따지지 않고 전 세계의 공공재로 활용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며 "백신 부족 사태를 해소할 수 있도록 국제적인 지원과 협력을 확대하겠다"고 말했다.

월스트리트저널(WSJ)은 중국이 이날 연설로 '백신 이기주의' 비판을 받는 미국과 유럽을 동시에 겨냥했다고 분석했다. 백신 생산력을 앞세워 일종의 훈수를 뒀다는 것이다. 앞서 독일은 유럽연합(EU) 협정과는 별개로 백신을 자체 구매했다가 빈축을 샀고, EU는 최근 영국과 아스트라제네카 백신 공급 문제로 충돌해 '수출 금지' 등 보복조치까지 오갔다. 미국도 지난해 12월 자국민 우선 접종을 강제하는 행정명령에 서명했다.

이런 가운데 중국산 백신을 선택하는 유럽 국가는 점차 늘어나고 있다. 헝가리는 지난 15일(이하 현지시각) EU 회원국 중 최초로 중국 제약사 시노팜의 백신을 구입해 초기 물량 55만 도스(1회 접종분)를 인도받았다. 헝가리 정부는 향후 4개월에 걸쳐 총 500만 도스를 수령할 예정이다. 시노팜 백신은 두 차례 접종이 필요해 헝가리 인구 1000만명 중 25%에 해당하는 250만명에게 주사할 수 있는 분량이다.

체코도 이미 지난달부터 중국 민간 제약사인 시노백의 코로나19 백신 접종을 시작했다. 여기에 프랑스와 독일에 이어 오스트리아까지 중국 백신 도입에 긍정적인 신호를 보냈다. 제바스티안 쿠르츠 오스트리아 총리는 이달 초 "누가 개발했든지 가장 빨리 안전한 백신을 접종하는 것이 관건"이라며 "승인이 나면 오스트리아에서 중국 백신을 생산할 준비가 돼 있다"고도 했다.

WSJ은 "중국 시노팜과 시노백 코로나19 백신은 동료 평가를 받은 국제학술지 게재 이력도 없으며 EU 당국에 백신 사용 승인을 요청하지도 않았다"면서 "그런데도 중국의 백신 생산과 선적 속도가 워낙 빠르고 공급도 후한 편이어서 납품에만 수개월이 걸리는 서구 제약사와는 대조적이기 때문에 중국산 백신의 유럽 내 영향력이 더욱 커지고 있다"고 전했다.

부크 부카노비치 런던 정치경제대학 연구원은 WSJ와 인터뷰에서 "중국 정부의 후한 백신 공급 이면에는 전략적으로 중요한 유럽 지역 내 영향력을 확대하려는 열망이 자리잡고 있다"고 했다. 특히 지난달 19일 유럽 최초로 시노팜 백신 접종을 개시한 세르비아의 선례가 다른 유럽 국가들로 하여금 중국산 백신 구매를 부추겼다면서 중국이 백신을 통해 '소프트 파워'를 높이려는 외교 정책이 효과를 발휘한 것이라고 분석했다.

한편 CNN비즈니스는 중국이 지난해 미국을 제치고 EU의 최대 교역국으로 부상했다고 전날 보도했다. EU가 발표한 통계자료에 따르면 지난해 EU와 중국의 교역 규모는 5860억 유로(약 780조6000억원)를 기록해 미국과의 교역 총액(5550억 유로)을 제쳤다. EU의 대중국 수출은 2025억 유로(약 270조원)로 전년 대비 2.2% 증가했고, 수입도 5.6% 증가한 3835억 유로(약 511조원)에 달했다.

CNN은 "대중(對中) 견제 기조를 유지하고 있는 미 행정부가 유럽과도 무역 분쟁을 벌여온 상황에서, 중국이 양 측의 균열을 기회로 삼아 최대 무역국 지위를 차지한 것"이라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