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쿠팡 없이 어떻게 살았더라(How did we ever live without Coupang)?’ 소비자가 이런 의문을 품는 세상을 만들겠다"

쿠팡이 이런 사훈을 내건 ‘S-1’ 상장신고서를 12일(현지시각) 미국 증권거래위원회(SEC)에 제출했다. 이로써 쿠팡의 미국 증시 상장이 공식화됐다. 쿠팡은 클래스A 보통주를 뉴욕증권거래소(NYSE)에 ‘CPNG’ 코드로 상장할 계획이다. 상장될 보통주 수량과 공모가격 범위는 아직 결정되지 않았지만, 총 자금 조달 규모는 10억달러(약 1조1000억원)로 알려졌다. 금융투자업계에선 이르면 다음 달 상장이 완료될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

쿠팡이 미국 증권거래위원회(SEC)에 제출한 S-1 상장신고서에 첨부한 사진. 쿠팡의 배달 사업 모델을 보여주는 사진들이다.

이번 상장은 김범석 쿠팡 이사회 의장의 의지가 반영된 결과물이다. 김 의장은 쿠팡 창업 1주년이었던 2011년 8월 당시 "2년 내 나스닥에 상장해 세계로 도약하겠다"고 밝혔다. 쿠팡은 당초 나스닥 상장을 추진했으나 세계 최대 규모의 증권거래소인 NYSE에 상장 절차를 밟게 됐다. 국내 기업이 NYSE에 직상장하는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쿠팡은 지난 2019년 미국 연방준비제도 의장 후보로 거론되던 케빈 워시 전 연준 이사를 이사로 영입하는 등 외국인 임원을 잇따라 영입했다. 이때마다 국내 유통업계에서는 쿠팡이 미국 증시 상장을 준비하고 있다는 소문이 끊이지 않았다.

업계에선 쿠팡이 NYSE 직상장을 선택한 배경으로 안정적인 투자자금 확보를 꼽는다. 쿠팡은 지금까지 소프트뱅크의 비전펀드 등으로부터 34억 달러(약 3조7600억원)의 투자금을 유치했지만 2018년 이후 비전펀드를 포함, 추가 투자가 끊긴 상태다. 손정의 소프트뱅크 회장은 지난해 3분기 투자금 회수(엑시트·exit)를 발표한 바 있다.

쿠팡의 기업 가치는 30조~50조원으로 예상되고 있다. 블룸버그통신은 300억달러(약 33조2100억원), 월스트리트저널(WSJ)과 파이낸셜타임스(FT)는 500억달러(약 55조3500억원) 이상의 기업가치가 기대된다고 보도했다. 쿠팡 내부에서는 400억 달러(약 44조2800억원) 이상을 내다보는 것으로 알려졌다.

자금 조달은 원활히 이뤄질 것으로 보인다. 이번 상장신고서에 공개된 쿠팡의 실적이 전망이 밝은 덕분이다. 지난해 쿠팡의 매출액은 119억6700만 달러(약 13조2500억원)로 2019년 7조1530억원보다 85.2% 증가했다. 이는 시장 전망치를 웃도는 실적이다. 삼성증권은 지난해 쿠팡이 11조1000억원대 매출을 올린 것으로 예측한 바 있다.

쿠팡의 복병으로 꼽히는 영업적자도 개선되고 있다. 지난해 영업적자는 5억2770만 달러(약 5800억원)로 2019년 6억4383만달러(약 7082억원)보다 줄었다. 쿠팡은 상장신고서에 "2019년까지 누적 적자가 35억6600만 달러(약 3조9500억원)였다"면서도 "앞으로도 고객 기반을 늘리고 마케팅 채널을 확장할 것"이라며 투자 확대 노선을 밝혔다.

◇ 김범석 의장은 29배 차등의결권 보장...쿠팡맨에 총 1000억원 주식 지급

쿠팡은 이번 상장 과정에서 클래스B 보통주 권한을 김 의장 보유 주식에 부여했다. 일반 투자자를 대상으로 발행되는 클래스A 보통주보다 의결 권한이 29배 많은 주식이다. 김 의장은 상장 후 지분 2%만 가져도 주주총회에서는 지분 58%에 해당하는 의결권을 행사할 수 있어 실질적인 경영권을 유지한다. 다만 김 의장이 이 주식을 매각 또는 증여·상속하면 이러한 차등의결권은 무효화된다.

2018년 11월 15일 손정의(왼쪽) 소프트뱅크 회장과 김범석 쿠팡 이사회 의장이 일본 도쿄에 있는 소프트뱅크 그룹 본사에서 만나 악수를 나누고 있다.

구글·에어비앤비·스냅 등 글로벌 주요 테크기업들 창업자들도 이와 비슷한 방식으로 상장 때 1주당 10~20배의 차등의결권을 받았다. 국내에는 이같이 1주당 복수의 의결권을 행사하는 차등의결권이 보장되지 않는다. 이 때문에 쿠팡이 미국 증시 상장을 택한 이유로 경영권 방어 제도 미비가 꼽히기도 한다.

쿠팡은 자사 배송 기사인 ‘쿠팡맨’과 비(非)매니저급 직원에게 최대 1000억원을 들여 자사주를 보너스로 지급할 계획이라고 상장신고서에 밝혔다. 현재 쿠팡 직원 수는 약 5만명이다. 이를 고려하면 쿠팡은 직원 1인당 200만원 규모의 주식을 지급할 것으로 보인다.

다만 쿠팡은 주주를 위한 배당금 정책에는 소극적이다. 쿠팡은 상장신고서에서 "쿠팡은 사업 확대에 자금을 공급하기 위해 가용 가능한 자금과 미래 수익을 확보할 계획"이라면서 "가까운 장래에 현금 배당을 지급하지 않을 것으로 예상한다"고 말했다.

한편 상장신고서에 따르면 김 의장은 지난해 연봉 88만6635달러(약 9억8100만원)와 주식 형태 상여금 총 1325만9121달러(약 146억7700만원)을 포함해 총 1434만1229달러(158억7500만원)의 보수를 받은 것으로 나타났다. 지난해 영입된 투안 팸 최고기술책임자(CTO)는 2743만8000달러(약 303억7300만원) 상당 주식 형태 상여금을 포함해 총 2764만775달러(약 305억9800만원)의 보수를 받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