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자동차그룹이 ‘105층 타워’로 계획했던 신사옥 글로벌비즈니스센터(GBC)를 2~3개동으로 쪼개는 방안을 검토하면서 국내 1위 엘리베이터 회사인 현대엘리베이터가 수주를 기대하고 있다. 현대엘리베이터는 그동안 100층 이상 건물의 엘리베이터 수주 경쟁에서 번번이 글로벌 업체들에 밀려 고배를 마셨다. 업계 안팎에서는 GBC 층수가 50~70층으로 낮아지면 범(汎)현대그룹 효과까지 더해져 현대엘리베이터의 경쟁력이 높아질 수 있다는 얘기가 나오고 있다.

◇ GBC 105층에서 낮아지나… 엘리베이터 업계 촉각

13일 업계에 따르면 현대차 GBC에 납품할 엘리베이터 수주전은 엘리베이터 업계에서 최대 관심사 중 하나로 꼽혀왔다. 당초 GBC는 국내에서 가장 높은 지하 7층~지상 105층짜리 건물로 지어질 계획이었다. 이 건물에 설치될 120대 이상의 엘리베이터를 납품하면 홍보 효과는 물론, 보수와 유지 등 안정적인 이익이 보장되기 때문에 글로벌 업체들이 수주전에 총출동할 것으로 예상된다. 일반 아파트에 들어가는 엘리베이터가 대당 4000만원 선인 반면, 초고속 엘리베이터는 대당 가격이 최고 10억원대로 알려졌다.

105층 타워 1개동이 포함된 현대차 GBC 조감도.

하지만 현대차가 GBC 층수를 낮춰 50층짜리 3개동이나 70층짜리 2개동으로 짓는 방안을 검토하면서 엘리베이터 업체들도 부랴부랴 계획을 수정하고 나섰다. 글로벌 엘리베이터 업체 관계자는 "기존 계획대로라면 우리나라 최고층 빌딩으로 서울의 랜드마크가 돼 상징성이 있고 기술력도 입증할 수 있다고 봤다"며 "2년 전부터 전담팀을 구성해 입찰을 준비하고 있었는데, 계획이 통째로 바뀔 수도 있어 여러 대안을 마련해놓고 있다"고 말했다.

서울시 강남구는 "GBC를 기존 약속대로 105층으로 건립해야 한다"며 정의선 현대차그룹 회장과의 면담을 요청한 상태다. 현대차는 확답을 보류하고 있다.

◇ 국내 엘리베이터 기업, 100층 이상 빌딩 수주 경험 부족

GBC의 층수가 확 낮아지면 현대엘리베이터가 수혜를 보는 것 아니냐는 의견이 업계 안팎에서 나오고 있다. 현대엘리베이터는 국내에서 43%의 높은 점유율을 보이고 있지만, 대개 중저층 건물용 엘리베이터를 공급해왔다. GBC가 105층으로 설계될 경우 글로벌 업체에 비해 100층 이상의 초고층 승강기 수주 경험이 없는 현대엘리베이터가 불리할 수밖에 없다는 것이 업계 중론이다. 현대엘리베이터 제품이 설치된 고층 건물은 지상 63층 규모의 부산국제금융센터(BIFC)가 전부다.

업계 관계자는 "국내 초고층 엘리베이터 시장은 미국계 오티스와 독일계 티센크루프, 일본계 미쓰비시 등 외국 업체가 주름잡고 있다"며 "100층 이상 빌딩의 엘리베이터 입찰에서는 대부분 과거 수주 실적을 토대로 가점을 매기기 때문에 현대엘리베이터는 고속 기술을 보유하고도 글로벌 전통 강자들에게 고배를 마시는 경우가 많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50층으로 낮아지면 현대엘리베이터도 비접촉 기술 등을 내세워 경쟁력을 높일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앞선 123층짜리 롯데월드타워 시공에서도 현대엘리베이터는 미쓰비시(31대 수주)와 오티스(30대 수주)와의 수주 경쟁에서 밀렸다.

현대엘리베이터 관계자도 "업계에서는 100층 내외의 빌딩에 분속 600m의 고속 엘리베이터 기술이 필요하다고 보는데, 글로벌 톱10 엘리베이터 기업들은 이미 이런 기술의 개발을 완료했다"며 "현대엘리베이터도 작년 5월 세계 최초로 분속 1260m의 초고속 엘리베이터 기술 개발에 성공했으나 입찰 과정에서 수주 경험이 발목을 잡는 경우가 대부분"이라고 말했다.

범 현대 기업이 신사옥을 지을 때 현대엘리베이터 제품을 쓴 경우가 많았다는 점도 긍정적이다. 지난해 4월 강남구 대치동에 새로 문을 연 현대백화점 신사옥에도 현대엘리베이터 제품 8대가 설치됐다. 범 현대그룹 한 관계자는 "GBC 규모상 여러 업체에 엘리베이터 설치를 맡길 가능성이 높지만, 범 현대그룹 기업이 건물을 지을 때는 현대엘리베이터에 맡긴 적이 많은 것으로 알고 있다"고 말했다.

오티스가 롯데월드타워 최상부에 권상기를 설치하는 모습

◇ 정부의 주택 공급 확대 정책에도 기대

엘리베이터 업계는 현대차 GBC 외에 정부의 주택공급 확대 정책에도 기대를 걸고 있다. 엘리베이터산업은 대표적인 건설 후방산업이다. 업계 관계자는 "건물 골조를 다 세워야 부설이 가능한 엘리베이터 특성상 건물 착공 시점과 실적에 반영되는 시간은 차이가 있을 수 있으나, 주택 공급이 늘어나면 엘리베이터 수요는 당연히 탄력을 받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지난해 양호한 실적을 거둔 현대엘리베이터는 올해 "매출은 1000억원이 줄더라도 이익은 100억원을 더 남길 것"이라는 포부를 밝혔다. 현대엘리베이터는 지난해 매출이 1조8217억원으로 전년과 비교해 2.7% 줄었지만, 영업이익은 10.9% 증가한 1510억원을 기록했다.

현대엘리베이터는 올해 매출액으로 작년보다 1000억원가량 감소한 1조7175억원을 예상하면서 영업이익은 100억원 늘어난 1610억원으로 내다봤다. 수주 목표액은 1조9073억으로 지난해 수주 실적인 1조6911억원보다 2160억원가량 높여 잡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