암호화폐 도지코인(dogecoin)이 지난 9일 사상 최고치를 기록했다. 암호화폐 거래사이트 코인마켓캡에 따르면, 도지코인은 이날 오전 10시 20분 0.084달러에 거래되면서 전날 기록한 종전 최고치인 0.083달러를 하루만에 경신했다. 최고점을 찍은 시점을 기준으로 24시간 동안 거래량은 약 169억달러(약 18조8600억원)에 달했다.

듣도 보도 못한 이 암호화폐는 대체 어쩌다 시장을 떠들썩하게 만든 걸까.

도지코인.

도지코인은 2013년 개발자들이 장난삼아 만든 암호화폐다. 당시 인터넷에서 유행했던 시바견 사진을 이용해 개발자인 빌리 마커스가 밈(meme)으로 만든 것이 시초다.

전문가들 사이에서는 기술적 파급력보다 팬덤에 좌지우지되는 화폐로 분류된다. 도지코인의 상승세가 테슬라의 일론 머스크 최고경영자(CEO)와 관련이 깊기 때문이다. 미 경제전문매체 CNBC는 이날 도지코인의 랠리도 테슬라가 15억달러(약 1조6700억 원) 규모의 비트코인에 투자하고, 비트코인으로 테슬라 제품을 구입할 수 있게 하겠다는 방침을 밝힌 데 따른 것이라고 분석했다. 머스크가 제시한 비트코인의 장밋빛 전망에 또다른 암호화폐인 도지코인도 덩달아 힘을 받고 있다는 설명이다.

머스크는 도지코인을 직접 홍보한 적도 있다. 애니메이션 라이온킹의 주인공 심바에 도지를 합성하거나, 추억의 팝송 ‘Who let the dogs out’을 ‘Who let the doge out’으로 패러디하는 식이다. 그를 ‘파파머스크(Papa Musk)’로 부르며 따르는 개인 투자자들은 일찌감치 그의 트윗에 촉각을 곤두세우며 도지코인을 사모았고, 올해 들어서만 1500% 폭등이란 기염을 토하기에 이르렀다. 머스크가 지난달 29일(현지 시각) 가짜 잡지 도그(dogue)의 이미지를 공유했을 때에도 도지코인 가격은 800% 넘게 뛰었다.

박상현 하이투자증권 연구원은 이를 "팬덤 이코노미가 경제는 물론 금융시장에도 큰 영향을 미치고 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사례"라고 짚었다. 팬덤 이코노미란 말 그대로 팬덤이 주체적으로 이끄는 새로운 경제를 뜻한다. 과거 소비자들이 기업이 제공하는 제품과 서비스, 가치를 수동적으로 수용했다면 오늘날의 소비자들은 훨씬 더 능동적으로 자신이 원하는 바를 기업에 전달하고 있다는 것이다.

금융시장에서는 최근 일어난 게임스톱 사태가 대표적인 예다. 공매도 관행에 불만을 품은 개인 투자자들이 망해가는 게임 소매 체인 주식을 대거 매수하면서 한달만에 무려 1700%라는 주가 상승 기록을 세웠다. 게임스톱을 공매도한 헤지펀드 멜빈캐피털은 1월 한달간 52% 수준의 손실을 입었다.

하지만 머스크를 선봉에 세운 투자가 탁월한 선택이 될지, 허망한 투기로 마무리될지는 지켜봐야 한다는 지적이 많다. 도지코인의 랠리는 말장난에 기반한 것이라 더욱 주의를 요한다. 암호화폐 거래소 블록체인닷컴의 게릭 하일만 연구원은 "암호화폐는 이제까지 실물경제에 진입한 적이 없기 때문에 지금 투자자들이 몰리는 상황이 우려스럽다"며 "도지코인의 가치는 90%까지 날아갈 수 있다. 도지코인은 말 그대로 조크(joke)"라고 경고했다.

제도권의 반응도 주목된다. 재닛 옐런 미 재무장관은 "암호화폐가 많은 경우 불법 금융에 쓰이는 것으로 알고 있다"며 규제 가능성을 내비친 바 있다. 머스크의 트윗으로 시장이 큰 영향을 받은 만큼 미 증권거래위원회(SEC)의 제재를 받을 가능성도 거론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