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 최남단의 섬이면서 유일한 특별자치도인 제주도. 전 세계를 멈춰세운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사태가 한국에서 본격화된지 1년이 되면서, 제주도 경제 역시 그 영향을 피하지 못했다. 관광객 특수가 사라진 상권에는 공실이 넘치고, 관광업체들은 허리띠를 졸라매고 있다. 동시에 관광업계에서는 그동안 ‘가성비 여행’ ‘자연 여행’에만 국한됐던 제주의 관광산업을 고도화할 기회라는 목소리도 나온다. 제주도는 ‘포스트 코로나(코로나 이후)’를 어떻게 대비해야 할까. 조선비즈는 제주 관광업계의 현황과 청사진을 4편의 기사를 통해 분석해 본다. [편집자주]

"평소 같으면 시내 영업은 안 했는데 요새는 워낙 손님이 없으니 다 공항에서 기다리는 겁니다. 10년 넘게 동남아 관광객들 택시 관광 영업을 했는데 지난해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 사태로) 3월부터는 완전히 끊겨서···. 9시 이후엔 식당도, 술집도 문을 닫으니 택시타는 내국인 손님도 없어요."

지난 달 29일 제주공항에서 만난 택시 기사는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사태 이전까지만 해도 한 달에 20~25일은 시간당 2만원 정도 요금을 받고 외국인 관광 택시를 몰았다고 했다. 코로나19로 국내 방역 수위가 올라가면서는 현지인도, 내국인 관광객도 저녁 시간에 다니지 않아 시내를 아무리 돌아다녀도 영업이 어렵다고 말했다.

지난달 29일 제주시 연동 누웨마루거리 초입.

외국인 관광객들로 넘치던 제주 시내 상권에도 찬바람이 불고 있었다. 제주시의 중심부인 연동 누웨마루거리는 금요일 저녁인데도 한산했다. 큼지막한 음식 사진과 영문, 중국어로 병기된 메뉴판이 나붙은 식당이나 한자 간판을 단 식당들 상당수는 불이 꺼진 채였다. 영업 중인 식당과 카페도 있었지만, 손님은 찾아보기 어려웠다.

한때 이 거리는 ‘바오젠거리’로 불리며 중국인 관광객들로 북새통을 이루던 상점가다. 제주시의 로데오거리였던 이곳은 지난 2010년 차 없는 거리로 조성됐는데, 이듬해 중국 건강용품업체인 바오젠(寶健)그룹의 직원 1만1000여명이 포상여행차 방문하면서 외국인을 겨냥한 관광지로 변신했다.

이전까지만 해도 지역민들이 찾는 옷가게와 음식점, 술집 중심이던 거리는 화장품 가게와 중국인 관광객의 입맛에 맞춘 식당들로 간판을 바꿔달았다. 바오젠거리라는 이름은 도(道) 차원에서 중국 기업의 대규모 관광에 대한 감사의 의미로 붙였다.

누웨마루거리의 바깥쪽 대로인 신광로와 노연로 주변 상가에도 냉기가 돌았다. 패션브랜드 매장과 편집숍, 화장품 상점들이 중심인 대로 상가는 두세 건물에 한 가게 꼴로 공실이었다. 사거리에 자리한 1층 상가도, 시내 면세점 인근의 편의점도 문을 닫았을 정도다. '제주도의 명동'으로 불리던 길이다.

제주시 연동 노연로(위)와 신광로 상가 건물 1층에도 임대 안내문 등이 붙은 채 영업을 중단한 가게들을 쉽게 찾아볼 수 있다.

누웨마루거리 인근의 비즈니스 호텔에 입점한 한 외식업장 직원은 "코로나 사태 전까지만 해도 이 주변의 작은 화장품 가게도 하루 매출 500만원은 우스울 정도로 외국인 관광객들이 많아 상가 권리금만 3억원까지 올랐다"면서 "코로나19 사태가 1년 넘게 이어지면서 최근에는 상가 권리금이 0원일 정도로 (상권이) 침체된 상태"라고 말했다.

◇ 제주 관광객 수, 8년 전 수준으로 뚝··· 제주서 숙박·쇼핑에 돈 안 써

통계청에 따르면 제주도 인구는 올해 1월 기준으로 67만여명. 광역시 중 인구가 가장 적은 울산(113만명)은 물론, 수원(118만명)·고양(108만명)·용인(107만명)·성남(94만명) 등 경기도의 웬만한 시보다도 인구 규모가 작다.

제주도의 관광산업 의존도가 높아질 수 밖에 없는 배경이다. 가장 최근 통계인 2018년 제주도의 업종별 총 부가가치 비중을 보면, 관광산업을 구성하는 숙박 및 음식점업(6.4%)과 문화 및 기타서비스업(4.5%), 도소매업(7.4%)이 전체의 22% 정도를 차지한다. 제조업 같은 2차 산업은 거의 발달하지 않은 편이다.

그래픽=정다운

코로나 사태 이전까지만 해도 제주도의 관광산업은 성장세였다. 해마다 관광객 수가 두자릿수로 증가했다. 제주도관광협회 통계에 따르면, 지난 2011년 874만명이던 입도객은 불과 5년 만인 2016년 두 배가 됐다. 하루 평균 4만여명이 제주도로 발을 들였다. 2017년 발생한 중국과의 사드(고고도미사일체계) 갈등으로 중국인 여행객이 급감했지만 그 빈 자리는 일본, 대만, 말레이시아와 태국 같은 동남아시아 관광객과 내국인들이 채우기 시작했다.

문제는 코로나19 사태로 하늘길이 막히면서 시작됐다. 지난해 외국인 관광객은 예년과 비교해 90% 가까이 줄었다. 지난해 2월 ‘무사증 제도’가 중단된 것도 큰 타격을 줬다. 175개국 국민에 한해 제주도에서 30일 동안 사증(비자) 없이 체류할 수 있도록 허용한 제도로, 지난 2002년 외국인 관광객을 유치하기 위해 도입됐다. 중국인 관광객 비중이 크고, 상급종합병원 등 의료시설이 부족한 제주도의 상황을 고려한 조치다. 내국인 관광객 수도 26% 감소했다. 사회적 거리두기 강화 등 방역 단계에 따라 입도객 수가 출렁거렸다.

제주도와 제주관광공사, 신한카드가 작년 12월까지 집계한 카드 사용액 자료를 보면, 제주 지역의 소비는 2019년보다 6.5% 감소한 6조260억원이다. 제주도민의 씀씀이는 1.6% 줄어드는데 그쳤지만, 내국인 관광객(-3.7%)과 외국인 관광객(-69.4%)의 소비가 크게 줄었다. 제주도를 찾더라도 호텔과 상점가 대신 산이나 바닷가를 찾거나 캠핑을 택했다. 제주도를 찾은 관광객들이 예전만큼 돈을 쓰지 않았다는 얘기다. 숙박·여행(-24.4%) 업종의 소비가 가장 큰 폭으로 감소했고 그 뒤를 패션·잡화(-17.2%), 문화·여가(-7.7%), 식음료(-7.5%) 등이 이었다.

◇ 관광객 사라진 호텔·면세점 시름···제주관광공사도 시내면세점 철수

이 같은 영향은 제주도 관광업을 떠받치는 숙박·면세·카지노업종 기업들의 실적에 고스란히 반영됐다. 한국면세점협회에 따르면 코로나19 사태 전까지만 해도 국내 면세점 방문자의 45% 정도가 외국인이지만, 현재는 95% 급감했다. 내국인 면세점 방문자도 80% 가까이 줄었다.

그래픽=박길우

외국인 관광객들이 하루에도 수백명씩 찾던 제주도 시내면세점은 현재 개장 휴업 상태다. 평일에는 오후 2~6시 사이에만, 명품 패션 브랜드와 화장품 등이 자리한 일부 층만 운영한다. 주말에는 아예 문을 닫을 정도다. 면세점들은 주4일제와 유급 휴직 등으로 인건비를 줄이는 상황이다.

제주시의 한 시내면세점 부점장은 "제주도의 국제선 운항이 중단되면서 면세점을 이용할 수 있는 고객 자체가 줄었는데, 코로나19 이전에는 하루 평균 500~700명이 찾았다면 최근에는 50~60명에 불과하다"면서 "평소대로라면 직원과 입점업체의 판매직원을 포함하면 1000명 정도가 근무해야 하지만, 지금은 일부 브랜드들은 면세점 영업을 임시 중단하고 직원을 다른 지역 매장으로 파견할 정도"라고 말했다.

제주관광공사가 운영하던 시내면세점도 철수했다. 2017년 사드 사태 이후로 영업이 위축된 상황에서 코로나19 사태까지 덮치자, 지난해 4월 제주신화월드 내 JTO면세점의 문을 닫았다. JTO면세점이 사용하던 공간은 아직 빈 상태다.

호텔과 리조트 등 숙박업체들도 상황은 비슷하다. 코로나19 방역 지침에 따라 전체 객실의 3분의 2(66%)만 운영할 수 있지만, 관광객 수 자체가 줄어든 탓에 그만큼 예약이 차지 않는다.

2000여 객실을 갖춘 대규모 복합리조트인 제주신화월드는 전체 직원의 30% 정도가 근무시간을 단축하거나 정부의 고용유지지원금을 받아 유급휴직 중이다. 5성급 호텔과 카지노, 식음료업장, 테마파크 등을 갖춘 제주신화월드의 직원은 1500여명에 달한다.

제주신화월드 관계자는 "비수기인 점을 감안해도 현재 (객실) 예약률이 20~30%에 불과할 정도로 관광객이 줄었다"면서 "지난해 1월만 해도 비수기임에도 객실 예약률이 평균 50% 정도였는데, 코로나 이후로는 비수기 예약률이 10%대까지 떨어질 정도"라고 말했다.

익명을 요구한 한 관광업계 관계자는 "코로나 사태가 장기화되면서 제주도 관광업계 전반이 고용 유지에 어려움을 겪는 상황이기 때문에 정부의 맞춤식 지원과 규제 개선이 절실하다"면서 "방역이 최우선이기는 하지만 코로나 음성 증명서나 백신 접종 확인증 등을 보유한 사업가만이라도 제주도로 입국할 수 있도록 출입국 대책을 마련해 국제선 항공편 등을 재개하길 기대한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