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업통상자원부가 감사원 감사 직전 북한 원자력 발전소 건설과 관련한 문건을 삭제한 것으로 알려지면서 논란이 일고 있다. 지난 2018년 4월 1차 남북정상회담 당시 문재인 대통령이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에게 건넨 이동식저장장치(USB)에 북한 원전 관련 문건이 있었던 것이 아니냐는 의혹도 번지자 ‘이적죄’와 ‘여적죄’에 해당된다는 주장까지 나오고 있다.

지난달 3일 오전 정부세종청사 산업통상자원부 원전산업정책과에서 직원들이 이동하고 있다.

앞서 월성1호기 원전 관련 감사원 감사를 방해한 혐의 등으로 재판에 넘겨진 산업부 공무원들이 삭제한 530건의 자료 목록 중 ‘북한 지역 원전건설 추진 방안’ ‘북한 전력 인프라 구축을 위한 단계적 협력 과제’ 등 자료가 있었던 것으로 드러나면서 논란은 시작됐다.

산업부는 "구체적인 계획이 없는 아이디어 차원이다. 해당 문서는 추가적인 검토나 외부에 공개된 적이 없이 그대로 종결됐고 정부 정책으로 추진된 바 없다"면서도 삭제 이유는 밝힐 수 없다고 했다.

그러나 문재인 대통령이 이같은 내용의 문건이 담긴 USB를 지난 2018년 1차 남북정상회담 ‘도보다리 회담’ 때 김 위원장에게 건넨 것이 아니냐는 보도가 나오자 또다시 진실공방이 격화하고 있다. 문 대통령은 정상회담 직후 김 위원장에게 발전소 내용이 포함된 USB를 전달했다는 사실을 언급한 적이 있다.

논란이 이어지자 일각에선 "정부가 북한에 원전을 지원하려던 것이 아니냐"며 이적죄와 여적죄까지 언급하고 나섰다.

형법은 적국과 합세하여 대한민국에 맞서는 행위를 ‘여적(與敵) 행위’로 규정하고 있다. 또 대한민국의 군사상 이익을 해하거나 적국에 군사상 이익을 공여하는 행위를 ‘일반이적(利敵) 행위’로 간주한다.

형법에서 말하는 ‘적국’이란 대한민국에 적대하는 외국 또는 외국인 단체를 말하며, 여적·이적 미수범 역시 처벌 대상이다.

2018년 9월 19일 문재인 대통령과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평양 5.1 경기장에서 열린 ‘빛나는 조국’을 관람한 뒤 손을 잡고 있다.

지난달 30일 청와대 국민청원에는 "북한 원전성치 계획을 검토했던 산업부 관계자들을 즉시 구속해 엄벌해달라"는 제목의 청원이 올라왔다. 청원인은 "산업부 공무원들이 북한에 원전 설치를 검토했다는 것 자체가 이적행위이자 전국민에 대한 살인미수 행위"라며 "이적행위자들을 철저히 조사해 엄벌에 처해달라"고 썼다.

세종시의 한 지역 카페에는 "한국은 아직 6.25 전쟁 휴전 중인데, 북한에는 원전을 지어주고 한국은 탈원전을 밀어부치는 건 명백한 이적행위" "북한 비핵화 하겠다고 하더니, 우라늄 추출해 핵 개발에 쓰라고 북한에 원전을 지어주려는 것이냐. 충격적이다" 등의 글이 올라왔다.

반면 북한 원자력 발전소 건설 추진 의혹은 사실이 아닌 정치 공세에 불과하다는 목소리도 만만치 않다.

친여 성향 커뮤니티 클리앙에는 전날 "북한 원전 아이디어가 아래 공무원에 의해 제출됐다는 사실만 맞고 나머지는 다 틀리다. 정부에선 북한 원전 관련 계획을 세운 것이 없는데 이적죄가 말이 되느냐. 아이디어 생각만 해도 잡아가야 한다는 건 무슨 논리냐" "선거를 앞둔 일부 세력의 북풍 공작이다" "역대 대통령들도 북한 원전 계획을 세웠으니 그들도 이적죄를 행한 것"이라는 글들이 올라왔다.

청와대도 단호하게 선을 그었다. 당시 청와대 국정상황실장으로 지낸 윤건영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문재인 정부에서 있었던 3차례의 남북 정상회담과 교류 협력 사업 어디서도 북한의 원전 건설을 추진한 적이 없다"고 했다. 청와대 관계자도 "당시 USB에 담긴 문서 내용을 주말 새 다시 열람했지만 원전의 ‘ㅇ’ 자도 없다"고 밝혔다.

문 대통령은 이날 오후 수석보좌관회의를 열고 "가뜩이나 민생이 어려운 상황에서 버려야 할 구시대의 유물 같은 정치로 대립을 부추기며 정치를 후퇴시키지 말라"고 언급하며 원전 문건을 둘러싼 논란에 불편한 기색을 감추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