온라인 가속화되며 매장은 '경험'하는 장소로…
사람과 관계 구축하며 공동체 중심으로 거듭나고
서비스·사회성·지속가능성 통해 고객 마음 얻어야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으로 오프라인 유통 업계가 벼랑 끝에 몰렸다. 제품을 제공하면 고객이 알아서 방문해 구매하던 과거와 달리 온라인이 발달하며 이제는 기업이 고객을 모셔가는 시대가 됐다.

주셉페 스틸리아노 글로벌 마케팅 그룹 WWP 운영자는 31일 조선비즈와의 인터뷰에서 "유통의 미래는 B2B(기업 간 거래), B2C(기업과 소비자 간 거래)를 넘어 H2H(사람 간 거래)에 있다"고 설명했다.

결국 매장은 경험을 통해 사람과 관계를 구축하는 곳이 되며 공동체의 중심으로 거듭나야 한다는 것이다. 그는 이탈리아의 여러 대학에서 리테일·마케팅을 강의하며 최근 저서 ‘리테일 4.0’을 출간했다. 그에게 코로나19 이후 유통 업계의 미래에 대해 들어봤다. 다음은 일문일답.

주셉페 스틸리아노 글로벌 마케팅 그룹 WWP 운영자. 이탈리아의 여러 대학에서 리테일·마케팅을 강의하며 최근 저서 ‘리테일 4.0’을 출간했다. 그는 “유통의 미래는 H2H(사람 간 거래)에 있다”고 주장한다.

-현재 유통을 '리테일 4.0'이라 정의했다. 리테일 4.0이란 무엇인가.

"리테일 1.0은 1800년대 후반 가게에서 유니폼을 입은 직원이 단순히 제품을 판매하던 때다. 리테일 2.0은 1960년대 쇼핑몰을 의미한다. 레스토랑·볼링장·영화관이 들어서며 백화점은 제품 구매에 대한 부담 없이 가족·친구와 시간을 보내는 장소가 됐다.

1990년대 아마존 등 전자상거래가 등장하며 리테일 3.0 시대가 됐다. 리뷰가 고객의 구매에 영향을 미쳤고 기술이 발달하며 고객이 좋아할 만한 제품을 추천하기 시작했다. 리테일 4.0은 온라인 가속화와 민주화다. 고객은 매장에 방문하지 않아도 온라인으로 제품·서비스에 대한 정보에 쉽게 접근할 수 있다. 소셜미디어에서 직접 소통도 가능하다. 결국 B2B, B2C를 넘어 H2H 시대가 열렸다."

-H2H에 대해 구체적으로 설명해달라.

"H2H는 모든 기업 뒤에 살아 숨 쉬는 사람이 존재한다는 개념이다. 우리는 인공지능과 머신러닝이 만연한 사회에 살고 있다. 그럴 때일수록 사람 냄새 나는 요소를 구현하는 것이 중요하다. 인간미가 느껴지는 유통 마케팅으로 고객의 감정과 구매에 영향을 미쳐야 한다.

서비스·사회성·지속가능성(service·sociality·sustainability)으로 사람과 관계를 맺고 신뢰를 쌓아야 하는 것이다. 서비스는 기업보다 사람의 관점을 우선하는 것이다. 이케아는 매장을 가정이나 사무실처럼 꾸미고 어울리는 제품을 추천해 준다. 자연스럽게 구매를 제안하며 고객의 선택 과정을 단순화했다.

사회성은 매장이 지역 공동체의 중심이 되는 것이다. 단순히 제품을 판매하는 장소에서 벗어나 만남의 장소가 돼야 한다. 2016년 샌프란시스코의 유니언 스퀘어에 애플이 플래그십 스토어(브랜드 이미지를 극대화한 매장)를 열었다. 영업 시간이 끝나도 사람들이 이용할 수 있는 야외 공간(plaza)을 마련했다. 무료 와이파이와 의자가 있어 매주 어쿠스틱 공연이 열린다. 애플이 사람을 끌어 모으며 지역 공동체 역할을 하는 것이다.

지속가능성은 미래 세대를 고려하며 자원을 활용하는 것이다. 의류 기업 파타고니아는 승합차를 타고 미국 전역을 다니며 의류 수선 서비스를 제공한다. 총매출의 1%나 수익의 10%를 환경 보호 단체에 기부한다. 고객들이 공정 무역 브랜드나 환경 보호에 기여한 제품을 선호하는 상황에서 환경에 대해 지속적으로 관심 갖는다."

서울 현대백화점 천호점에 입점한 이케아의 국내 첫 도심형 매장 ‘이케아 플래닝 스튜디오 천호’.

- 매장에서 제품을 경험하고 구매는 온라인에서 하는 고객이 늘고 있다. 온오프라인 통합을 위해 무엇이 가장 중요한가.

"고객이 꼭 구매를 위해 매장에 방문하는 것은 아니다. 이미 고객은 온라인에서 다양한 방법으로 제품을 발견하고 구매할 수 있다. 매장은 제품을 구매하는 곳이 아니라 재밌게 경험하고 배우고 소속감을 느끼는 장소로 인식돼야 한다.
전 세계 소비자의 85% 이상이 제품과 관련해 기억할만한 경험을 얻는 대가로 제품 가격의 4분의 1을 더 지불할 용의가 있다는 조사가 있다. 제과점에서 영업 시간이 끝나고 쿠킹 클래스를 열거나 생선 가게에서 생선을 다듬는 수업을 진행할 수도 있다. 이제는 생활 방식을 팔아야 한다."

-유통 기업들은 온라인이 가속화된다는 것을 잘 알고 있지만, 온라인 전환을 성공적으로 해내는 기업은 드물다. 혁신을 주도하는 최고경영자(CEO)에게 필요한 덕목은 무엇일까.

"모든 유통 경영자의 역할은 비전을 제시하고 에너지를 불어넣는 것이다. 리더로서 책임감을 갖고 권한을 행사하는 것도 중요하다. 한편으로는 조직이 감당할 수 있고 흡수할 수 있는 변화의 정도를 이해해야 한다. 야망과 함께 겸손함도 갖춰야 한다. 우리는 앞으로 유통 업계가 어떻게 변화할지 모르기 때문이다."

코로나 직격탄을 맞은 미국 뉴올리언스의 중심가 부르봉 스트리트가 행인 한명 없이 텅 비어있다.

-한국은 홈쇼핑과 편의점이 합병하고 IT 기업과 물류 업체가 손 잡는 등 온라인 혁신을 위한 합종연횡이 활발하다.

"코로나로 우리는 ‘통합의 계절’에 접어들었다. 서로 다른 산업을 영위하는 기업들이 합병하며 (유통사에) 중요한 발자국을 남기고 있다. 민첩하게 기회를 잡고 균형 있게 사업을 관리하는 것은 필수적이다. 서로 다른 산업이 상호 의존한다면 변화하는 환경에 유연하게 대처할 수 있다."

-고객은 언제나 불만족한다. 고객을 만족시키고 끝까지 살아남기 위해서는 무엇이 필요할까.

"그동안 유통 업계는 부동산과 위치를 중요하게 생각했다. 가장 좋은 장소에서 가게를 열면 모든 게 해결된다는 식이었다. 온라인 시대에는 이런 접근이 논리를 잃고 있다. 최근 몇 년간 많은 유통 기업이 폐업했고 일부 전문가들은 '종말론', '아마겟돈(최후의 전쟁)'까지 말하고 있다.

코로나 시대 고객들은 여러 기업의 제품을 아주 불규칙한 경로로 구매한다. 구매 패턴도 종 잡을 수 없다. 언제 어디서나 쇼핑할 수 있게 되며 고객의 기대감은 점점 높아지고 있다. 온오프라인 콘텐츠를 통합해 매력적이고 의미 있는 경험으로 브랜드 인지도를 높이고 팬을 확보해야 한다. 성공하기 위해서는 결국 다른 기업이 복제할 수 없는 ‘특별한 경험’을 제공하는 수밖에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