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 바이러스 감염증 사태가 1년 넘게 이어지면서 중소 제조업체를 운영하는 사람들의 고민이 갈수록 깊어지고 있다. 코로나 바이러스 감염증 사태로 실적이 악화된 가운데 부도를 피하기 위해 대출을 끌어다 쓰면서 채무 부담이 커졌기 때문이다.

이달 11일 경기도 안산시 반월산단 거리에 공장 매매 현수막이 걸려있다.

대구에서 30년 넘게 섬유업체를 운영해 온 이모(70)씨는 27일 조선비즈와의 통화에서 "지난해는 정부의 코로나 대출 등으로 가까스로 버텼지만, 올해는 어떻게 회사를 운영할 지 걱정"이라고 말했다.

이씨는 최근 전체 직원 중 15%를 내보내는 구조조정을 단행했다. 자신이 보유한 부동산 자산을 처분해 급한대로 자금 융통도 해봤지만, 도저히 무리라고 판단해 결국 사람까지 줄였다.

그는 "지난해부터 수출길이 막히고 내수도 침체되면서 주문은 끊겼는데 직원들 월급에 섬유 원사값 등 매달 지출은 그대로 나가고 있다"면서 "빨리 코로나 사태가 종식되지 않으면 적자가 누적된 제조업체들의 줄도산이 이어질 것"이라고 한숨을 쉬었다.

구미의 한 전자부품업체 사장인 김모(63)씨도 "올 상반기까지 코로나가 종식되지 않으면 폐업을 할 수 밖에 없는 상황이지만, 이마저도 쉽지 않을 것 같다"고 말했다. 직원들 월급을 주기 위해 지난해 받은 코로나 대출금 13억원이 김씨의 발목을 잡고 있어서다.

김씨는 "공장을 매각해도 은행 대출을 갚고, 직원들 퇴직금을 주기에는 턱없이 부족하다"며 "다음달부터 백신 접종이 시작된다는데, 상반기에는 꼭 코로나 사태가 종식됐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정보기술(IT) 업종이나 마스크 등 방역물품을 만드는 일부 코로나 수혜 업종을 빼면 대부분의 중소 제조업체들이 대출에 의존하고 있는 상황이다. 중소기업중앙회가 지난해 대출을 받은 330개 중소기업을 대상으로 실시한 설문조사에서 전체의 15%인 50곳의 기업들만 매출이 늘었다고 답했다. 작년 말 국내 은행권의 기업 대출액은 총 977조원으로 1년 만에 약 11%(108조원)가 늘었다. 2009년 이후 최대 증가 폭을 기록했다.

지난해 급격한 매출 감소에 위기감을 느낀 제조업체들이 생존을 위해 본업이 아닌, 방역물품 생산에 뛰어든 경우도 많았다. 식품의약품안전처에 따르면 지난해 1월 국내 마스크 제조업체는 137개에 불과했지만, 현재는 1232개로 10배 가까이 늘었다.

경북의 한 중소 헬스케어업체 사장 김모(63)씨는 "마스크 판매만으로 지난해 총 3억원의 매출을 올렸다"며 "특별한 기술이 없어도 마스크 생산이 가능하다는 이점 때문에 많은 제조업체들이 마스크 사업에 뛰어들었다"고 했다.

법원경매정보업체 지지옥션 시스템에 따르면 지난해 전국 법원에서 실시된 공장 경매 건수는 총 4441건으로 2019년 공장 경매 건수(4796건)보다 약 8% 줄었다. 정부가 중소기업들의 도산을 막기 위해 적극적인 대출 지원정책을 펼친 영향 때문이다. 하지만 빠른 시일 안에 코로나 사태가 종식돼 경기회복으로 이어지지 못할 경우 과도한 빚에 허덕이다 오히려 중소기업들이 줄도산 하는 사례가 올해는 더 늘어날 것이라는 우려가 나온다.

중소기업 정책 전문가들도 올해 코로나 사태 종식에 실패할 경우 중소 제조업체들의 누적된 채무 부담이 한꺼번에 터지면서 뿌리산업인 제조업계가 무너질 수 있다고 경고한다.

김희중 중소기업중앙회 정책총괄실장은 "대출 지원 정책을 통해 지난 1년은 어떻게든 버텨냈지만, 누적된 피해가 올해부터 본격적으로 드러날 것"이라며 "대출 정책에만 의존하지 말고 중소 제조업체들에 일감을 만들어 주는 등 경기부양책을 병행해야 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