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디가드·섹시쿠키 등 좋은사람들, 음식점업·AI 사업 검토
쌍방울은 마스크 생산·판매 주력…신영와코루는 레깅스 확대
해외·SPA·유통업체 PB 상품에 소비자 뺏겨…경영 전략 수정

보디가드, 섹시쿠키, 예스(YES) 등 1세대 토종 패션속옷 브랜드로 유명한 좋은사람들(033340)이 돌연 음식점업, 인공지능(AI) 소프트웨어 관련업을 사업목적에 추가한다고 밝혀 눈길을 끈다. 해외·SPA(제조·유통 일괄형) 브랜드와 대형 유통업체에 소비자를 뺏긴 토종 업체들이 마스크, 손 소독제, 레깅스 등 새로운 사업 분야로 손을 뻗어 불황을 견디고 있다.

속옷 전문 기업 좋은사람들의 브랜드 보디가드가 작년 출시한 속옷.

25일 금융감독원 전자공시시스템에 따르면 좋은사람들은 2월 5일 임시 주주총회를 열고 정관 일부 변경의 건을 의결한다고 밝혔다. 회사 측은 사업목적에 △음식점업 △식품제조 판매 및 수출업 △가공식품 제조 및 판매업 △제과류 제조 및 판매업 △인공지능(AI) 소프트웨어 개발 유통 등 7개를 추가할 예정이라고 설명했다.

좋은사람들은 1991년 개그맨 출신 사업가 주병진이 만든 속옷 브랜드 제임스딘이 모태다. 국내 패션 속옷의 시초로 평가받는다. 1990년대까지만 해도 속옷 시장은 4대 브랜드(비비안·비너스·트라이·BYC)가 주도하는 흰색 위주 내의가 주를 이뤘는데 좋은 사람들은 화려한 색감과 과감한 디자인의 속옷을 출시해 시장의 판을 뒤집었다. 예스, 섹시쿠키, 보디가드 등의 브랜드를 보유하고 있다.

사업 초기 연 매출이 1000억원을 기록하기도 했지만 글로벌 금융위기를 정점으로 경영이 급격히 악화됐고 2015년 이후 해외 브랜드 유입과 SPA·운동복 브랜드 등 비(非)전문 브랜드의 속옷 시장 진출, 유통업체의 자체 브랜드(PB) 출시로 시장 경쟁이 치열해지면서 이익이 감소하고 있다. 지난해(1~9월) 영업손실은 132억원으로 전년 같은기간(38억원)보다 크게 늘었다. 이익잉여금은 2019년 말 302억원에서 작년 9월 말 171억원으로 반토막 났다.

회사 측은 "의류 시장이 워낙 침체되다 보니 사업 다각화 목적에서 음식점업 등을 추가 하겠다고 한 것이지 당장 어떤 사업을 시작하겠다는 건 아니다"고 했다. 그러나 이 회사는 작년 3월 정기 주주총회에서 사업 목적에 '의약품, 의약외품, 보건용품 제조 및 판매업'을 추가한 뒤 손 소독제 시장에 진출한 적이 있다. 창립 이래 처음으로 패션 이외 사업에 진출한 뒤 그 영역을 확대하며 새로운 수익원을 모색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한국섬유산업연합회에 따르면 세계 속옷 시장은 꾸준히 성장 중이지만 국내 시장은 2016년 2조4000억원에서 작년 1조원대로 오히려 축소된 것으로 추정된다. 배경으론 크게 세가지가 꼽힌다. 먼저 원더브라 등 해외 유력 브랜드의 한국 진출과 소비자들의 직구가 확대됐다. 유니클로 같은 SPA와 나이키 등 스포츠 의류 브랜드 등 비(非)전문 기업이 속옷 시장에 진출한 영향이다. 마지막으로 유통업체의 PB 속옷 출시 여파다. 여기에 10~30대 소비자를 대상으로 한 온라인 속옷 전문몰이 우후죽순 생겨나면서 기존 업체들의 점유율이 떨어지고 있다.

쌍방울이 작년 9월 식품의약품안전처로부터 허가를 받아 제조·출시한 KF94 마스크.

속옷 이외 사업을 다각화하는 것은 토종 속옷업체들의 공통적인 불황 타계 전략이다. 비비안을 보유한 쌍방울(102280)은 2019년 마스크를 신성장동력으로 삼고 주문자 상표 부착생산(OEM)을 시작했다. 지난해 6월 유상증자로 조달한 657억원 가운데 절반을 마스크 관련 시설에 투자했다. 그해 8월에는 지오영과 708억원 규모의 마스크 공급 계약을 체결하기도 했다. 3분기 누적 매출액에 맞먹는 금액이다. 다만 여전히 매출에서 내의 판매 비중이 높아 작년 3분기 기준으로는 적자 전환 했다. 경쟁사인 BYC(001460)도 작년 패션 마스크 시장 진출을 본격화 했다.

비너스, 와코루, 솔브 등의 브랜드를 보유한 신영와코루(005800)는 지난해부터 레깅스, 기능성 속옷 사업을 확대하고 있다. 지난해 9월 코리아세븐과 손잡고 전국 세븐일레븐 편의점에 레깅스를 출시했다. 11월에는 연세의료원과 방사선 치료용 브래지어 개발을 위한 기술이전 협약을 체결했다. 의류업계 한 관계자는 "국내 속옷업체들에게 신사업은 선택이 아니라 생존을 위한 필수가 됐다"며 "다만 기존에 강점을 갖고 있던 분야와 접목하는 경우 시너지가 날 수 있지만 그렇지 않은 경우 재무건전성만 갉아먹는 위험요인이 될 수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