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코노미조선]

스타트업의 시대다. 겁 없는 개척자들은 글로벌 경기를 꽁꽁 얼어붙게 만든 신종 코로나 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의 위협에도 아랑곳없이 미지의 창업 세계로 뛰어든다. ‘이코노미조선’은 모두가 안정을 외치는 지금, 되레 도전을 외치는 사람들에 주목했다. 대기업 울타리를 뛰쳐나와 스타트업을 일군 일명 ‘챌린저스(Challengers·도전가)’와 이들을 옆에서 지켜본 전문가를 인터뷰했다. 이코노미조선이 만난 기업인들은 부의 축적을 넘어 사회 문제 해결을 목표로 했다. 챌린저스의 생생한 도전기가 독자들에게 울림을 줄 수 있길 바란다. [편집자 주]

김성훈 대표는 “확신을 갖고 도전할 수 있는 그 99℃에 스스로를 바깥 세상으로 던질 수 있어야 한다”고 말했다.

"물은 100℃에서 끓어요. 미지근한 온도에서는 끓지 않고, 끓을 기미도 보이지 않습니다. 그러나 포기하지 않고 1℃씩 밑바닥부터 차근차근 온도를 높이다 보면, 99℃의 고지가 보입니다. 이때 다가올 100℃를 위해 기꺼이 몸을 던지는 것, 이 용기와 참을성을 전 도전이라고 생각합니다."

AI(인공지능) 스타트업 업스테이지의 김성훈(49) 대표는 지난해 9월 3년간 AI 분야를 총괄하는 책임 리더로 재직했던 네이버에 사직서를 제출했다. 이때 모두가 그의 행보를 큰 도전이라 평가했다. 홍콩과기대 교수 출신인 김 대표는 ICSE(세계소프트웨어엔지니어링학회) 등 유명 학회에서 우수 논문상을 4회나 수상했다. 이 때문에 그가 다음 거처를 어느 대기업으로 옮길지에 IT(정보기술)·스타트업 업계는 물론이고 AI 학계가 모두 주목했다. 그러나 그가 택한 길은 창업이라는 또 다른 도전이었다. 그는 지난해 10월 기업에 AI 모델 및 시스템 구축을 포함한 컨설팅을 제공하는 회사 업스테이지를 설립했다.

‘이코노미조선’은 1월 4일 경기 성남시 백현동에서 평생 AI 혁신의 ‘끓는 점’만을 위해 조금씩 작은 도전을 해왔다는 김 대표를 만나 그의 도전기를 들어 봤다.

오직 AI 업계의 100℃만 바라보고 네이버를 퇴사했다. 100℃가 되면 어떻게 되나.
"모두가 쓸 수 있는 AI 기술의 탄생, 그것이 바로 AI 업계의 '보일링 포인트(boiling point·끓는점)'다. 나는 개발자로서 기술의 가치는 모두가 이를 자유롭게 활용할 수 있을 때 비로소 달성하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대다수의 소기업은 대기업이 만든 AI 기술을 일부만 전수받아 제한된 범위에서 활용하고 있다. 그러나 전 인류가 AI로부터 혜택을 받기 위해선 최대한 많은, 다양한 사람들이 AI 기술로 직접 다양한 실험을 해보고, 변형해보면서 많은 도전을 해야 한다. AI는 특히 신기술인 만큼 모두에게 기회를 주는 것이 중요하다."

네이버에서도 가능하지 않나.
"네이버에서 만드는 기술은 네이버에서만 쓸 수 있는 기술이다. 어찌 보면 당연한 이야기지만 현실이 그렇다. 네이버에서 만든 AI 기술은 내부 서비스에 접목한 후, 외부 기업에도 팔아 매출을 낸다. 하지만 이때 제공하는 기술은 포장·변형된 것으로, 개별 회사가 자신의 도메인에 최적화할 수 없다. 자체 개발 프로세스를 가질 수도 없고, 따라서 AI 기술을 발전시키고 사업화하는 데에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다. 그 이유는 컴퓨터 프로그램의 설계도라고 할 수 있는 '소스 코드'를 제공하지 않기 때문이다. 쉽게 말하자면, '3분 짜장'을 기업에 판매할 뿐, 춘장을 만드는 법은 알려주지 않는다. '그냥 사 먹으면 되지 왜 만드는 법을 알아야 해'라는 의문점이 커질수록 AI 기술은 후퇴한다. 네이버 입장에서는 수익화를 위해 당연한 것이지만, AI 발전 측면에선 아쉬움이 있었다. 그래서 큰 기업의 이익이라는 한계에서 벗어나 도전했다. 업스테이지는 기업에 AI 기술을 이전한다"

학계에서 연구를 이어 가도 되지 않나.
"그저 기술 이전만 실행하는 게 아니라, 각 회사가 특화된 AI 모델을 만들 수 있게옆에서 도와주고 방법을 알려주고 싶었다. 내가 큰 기업에서 배운 노하우로 '기술 이전'을 하고 싶었다. 그러기 위해선 각 회사의 AI팀에 딱 달라붙어 몇 개월을 함께 프로젝트를 하며 엄청난 에너지를 쏟아부어야 한다. 학계에서 제삼자로 참여하는 것 이상의 더 큰 참여가 필요했다. 그래서 힘을 오롯이 여기에 쏟기 위해 회사를 만든 것이다."

처음부터 창업에 도전할 수 있지 않았나. 왜 네이버에 먼저 갔나.
"그때는 무턱대고 AI 관련 창업을 하기엔 AI 관련 사업 경험이나 관련 인프라, 데이터가 모두 부족했다. 학계에 있었던 그때, 물의 온도는 미지근한 70℃ 정도에 불과했다. 그랬던 내게 네이버의 한 직원이 와서, 좋은 인프라와 자본을 제공할 테니 네이버 AI팀을 리딩해달라고 제안했다. 미래의 도전을 위한 좋은 밑거름이 될 것 같아 받아들였다. 그때 출장을 많이 다닌다길래 '참 힘드시겠네요'라며 내가 위로했는데, 나중에 알고 봤더니 그 직원이 네이버 라인을 만든 대표였더라. 어쨌든 덕분에 네이버에서 3명이었던 AI팀을 250명 규모까지 키우고, 현재도 네이버에서 구현되는 100여 개의 AI 기술을 만들어보면서 창업을 위한 많은 경험을 쌓을 수 있었다. 3년간 열심히 물을 끓인 경험이 없었다면 창업하고 10년 동안 기반만 닦다가 끝났을 것이다."

네이버에서 아쉬웠던 점은.
"네이버는 공룡이다. 너무 무겁다. 앞으로 걸어가려면 많은 에너지가 든다. 이미 몇천만 명의 사용자가 있는 회사는 백만 명 정도를 위한 서비스를 만들기 위해 큰 리스크를 감수하지 않는다. 이는 AI처럼 작은 도전을 많이 해야 하는 분야에서는 발전 속도가 느려지는 단점으로 작용하기도 한다. 하고 싶은 것들을 많이 제안하지만, 대기업이라는 한계에서 막히는 사람들도 더러 있으며 이들이 창업하는 경우가 많다."

대기업을 떠나서 홀로서기를 한다는 것이 두렵진 않았나.
"나는 작은 실패를 많이 한 사람이라 오히려 큰 도전은 두렵지 않다. 어릴 때부터 1℃씩 계속 이 순간을 위해 노력해왔다. 도전을 어려운 도전이라고 생각하지 않고, 그냥 묵묵히, 즐겁게 내 일을 하면 된다고 믿는다. 그렇게 인생을 살아왔기 때문이다."

김 대표는 구미전자공고를 거쳐 대구대를 졸업했다. 개발 공부에 매진했고, 수많은 실패 끝에 대학생 때 한국 최초로 한글 검색 엔진 ‘까치네’를 개발했다. 졸업 후 인터넷 솔루션 벤처기업 ‘나라비전’을 설립해 삐삐와 휴대전화로 메일 도착을 알려주는 ‘깨비메일’을 개발했다. 미국에서 석·박사를 마친 후 MIT(매사추세츠공과대)에서 CSAIL(컴퓨터 과학 인공지능 연구소) 박사후연구원을 지내면서 서울대 출신들 사이에서 또 공부했다. 이후 홍콩과기대 부교수가 됐고 휴직을 한 후 네이버에서 일을 했다.

마지막으로 도전의 노하우를 전한다면.
"처음부터 아주 대단한 배경을 가지고 있지 않았다. 시작도 대기업이 아닌 작은 기업 창업이었다. 그땐 월급이랄 것도 없이 용돈 정도 받으며 하고 싶은 일을 했다. 시작이 소박했기 때문에 잃을 것을 두려워하지 않는 도전 DNA를 가질 수 있었다."

[-더 많은 기사는 이코노미조선에서 볼 수 있습니다.]

[챌린저스] ①대기업 나와 스타트업 뛰어든 4人의 도전기

[챌린저스] ②