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융당국이 가계대출을 억제하기 위해 고액 신용대출의 분할상환 의무화를 추진하면서 그 여파로 이른바 ‘영끌(영혼까지 빚을 끌어쓴다는 뜻)’ 주택 매매가 원천 봉쇄될 전망이다. 현재 신용대출은 10년 분할 상환으로 간주해 총부채원리금상환비율(DSR)을 계산하는데, 분할상환이 의무화되면 상환기간은 10년보다 줄어들 가능성이 크다. DSR이란 연 소득 대비 전체 가계부채 원리금이 차지하는 비율을 뜻한다.

분할상환이 의무화 될 경우 신용대출을 조금만 받아도 DSR 비율이 훌쩍 오르게 된다. 추가로 받을 수 있는 주택담보대출 한도 역시 크게 줄어들 수밖에 없다. 현재 투기지역·투기과열지구의 경우 집값의 40%까지 주택담보대출을 받을 수 있는데, 고액 신용대출을 받은 차주는 추가로 주택담보대출을 받을 수 있는 한도가 LTV 40%에 따른 한도보다도 낮아질 수 있다는 전망이 나온다.

22일 금융위원회는 일정 금액을 넘는 고액 신용대출에 원금을 나눠갚는 분할상환 방식을 도입하기로 하고 관련 방안을 1분기 중 마련할 계획이다. 신용대출은 보통 만기까지 매달 이자만 내다가 원금은 한꺼번에 갚는데, 최근 금리가 낮아지면서 이자 부담이 줄어들자 ‘일단 대출을 받고 보자’는 수요가 늘었다. 이자에 원금까지 함께 갚아나가는 분할상환 방식이 시행되면 불필요한 대출을 받는 움직임은 다소 줄어들 것으로 금융당국은 내다보고 있다.

연합뉴스

신용대출을 나눠 갚아야 하면 돈을 빌린 차주가 매달 납입해야 하는 원리금 부담이 커지는 것은 물론, 추가로 주택담보대출 등을 받는 것 역시 어려워질 것이란 지적이 나온다. 이는 DSR 규제 때문이다.

DSR은 모든 대출의 연간 원리금 상환액을 연간 소득으로 나눈 값이다. 신용대출은 통상 만기가 1년이지만 매년 연장해 사용하는 행태를 감안해 DSR을 계산할 때 10년간 나눠 갚는 것으로 간주해왔다. 그러나 상환기간이 줄어들면 연간 부담해야 하는 원리금 상환액이 늘어나 신용대출을 조금만 받아도 DSR 비율이 크게 오르게 된다.

아직 분할상환을 적용할 고액 신용대출의 기준이 정해지진 않았지만, 연소득 8000만원을 넘는 고소득자가 받는 신용대출 총액이 1억원을 넘으면 차주 단위 DSR 규제 40%가 적용되고 있기 때문에 기준이 1억원으로 잡힐 것이란 관측이 제기된다. 이를 토대로 연소득 8000만원 직장인 A씨가 신용대출 1억원을 연 2% 금리에 빌렸다고 가정해보면, 상환기간이 10년일 경우 DSR 비율은 14%다. 그러나 이 상환기간이 5년으로 줄어들면 DSR 비율은 26%로 두배 가까이 뛴다.

즉 DSR 40%에서 신용대출 26%를 제외한 14%에 해당하는 금액만 추가 대출을 일으킬 수 있는 셈이다. A씨가 주택담보대출을 추가로 받는다면, 만기 30년에 연 3% 금리로 2억1000만원만 빌려도 DSR 40%가 꽉 찬다. 신용대출 상환기간이 10년일 경우 가능한 주택담보대출 한도가 4억1000만원이라는 것과 비교하면 2억원 적은 수준이다.

금융위 관계자는 "시뮬레이션을 해봐야 하는 만큼 신용대출 분할상환 기간이 어느정도로 조정될 것인지 등에 대해서는 확답하기 어렵다"면서도 "DSR이 확대되면 추가 대출이 다소 어려워지는 것은 맞다"라고 말했다.

신용대출 분할상환이 현재 주택담보인정비율(LTV) 규제보다 더욱 강력한 조치로 작용할 수 있다는 분석도 나온다. 정부는 투기지역·투기과열지구에 주택가격 9억원 이하분까지는 LTV 40%, 9억원 초과분에 대해선 LTV 20%를 적용하고 있다. 예컨대 서울 내 10억원짜리 집을 산다면 3억8000만원까지 주택담보대출을 받을 수 있는데, A씨는 주택담보대출을 2억1000만원만 받을 수 있어 LTV 규제보다 더욱 강력한 규제를 받게 되는 셈이다. 시중은행 관계자는 "주택담보대출을 최대한 받으려면 고액 신용대출은 포기해야 하는 상황이 올 수 있다"라고 설명했다.

이에 은행권에서는 금융당국이 분할상환 방식 적용을 제외하겠다고 밝힌 마이너스통장으로 수요가 몰릴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 그러나 마이너스통장이 분할 상환 대상에서 빠지면 풍선효과로 마이너스통장에 수요가 몰릴 수 있는 만큼, 금융당국은 마이너스통장에 대한 관리 강화도 시사하고 있어 이마저도 여의치 않을 것으로 보인다. 시중은행 관계자는 "마이너스통장으로 쏠림을 방지하기 위해 지금보다 최대 한도가 더욱 낮아질 수 있다"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