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조선업체를 대상으로 특허권을 남용해 ‘갑질 계약’을 했다가 공정거래위원회로부터 120억원의 과징금 처분을 받은 프랑스 기업이 행정처분 취소 소송을 제기한다. 이 프랑스 기업이 보유한 특허권은 국내 조선사 주력 선박인 액화천연가스(LNG) 운반선의 핵심 기술 중 하나다. 조선업계는 소송 결과에 따라 갑질 계약에 또 노출될 수 있다는 점에서 소송 진행 상황을 예의주시하고 있다.

25일 조선업계와 법조계에 따르면 전 세계적인 엔지니어링 업체인 프랑스의 가즈트랑스포르 에 떼끄니가즈(GTT)는 공정위의 과징금 처분과 시정명령이 부당하다는 취지로 서울고등법원에 취소 소송을 제기한다.

공정위는 지난해 11월 GTT에 공정거래법 위반 혐의로 시정명령과 함께 과징금 125억2800만원을 부과했다. 공정위는 당시 GTT가 대우조선해양·현대중공업·삼성중공업(010140)·한진중공업·현대삼호중공업·성동조선해양·대한조선·현대미포조선등 8개 국내 조선사에 대해 시장지배적 지위 남용 행위를 벌였다고 설명했다.

엔지니어링 업체인 프랑스의 가즈트랑스포르 에 떼끄니가즈 홈페이지

GTT가 보유한 ‘LNG 화물창 기술 라이선스’는 LNG 저장탱크와 관련된 특허와 노하우 등을 사용할 수 있는 법적인 권리를 부여하는 것이다. LNG 화물창 특허에 대한 GTT의 글로벌 시장점유율은 95%(2018년 말 기준)에 달한다.

조선업계 관계자는 "LNG운반선은 폭발 위험 때문에 화물창의 안전성이 선박 건조의 핵심으로 꼽힌다"며 "국내에서 건조 중인 LNG 운반선박은 전부 GTT의 기술이 적용되고 있다. 글로벌 선주들이 GTT의 기술을 원한다"고 했다.

공정위 조사 결과 GTT는 국내 조선사에 LNG 화물창 기술 라이선스 뿐만 아니라 자사가 보유한 엔지니어링 서비스까지 한꺼번에 판매하는 ‘끼워팔기’ 계약을 강요했다. 2015년 전후로 국내 조선사들은 엔지니어링 서비스 수행 경험을 쌓으면서 LNG 화물창 기술 라이선스만 구매하고 엔지니어링 서비스는 필요 시 별도로 거래할 것을 요청했으나 GTT는 이를 전부 거절했다. 공정위는 GTT의 이런 특허권 남용이 위법하다며 125억2800만원의 과징금을 부과하고 계약서상 불공정한 조항도 수정·삭제 명령을 내렸다.

조선업계에서는 GTT의 소송 제기는 예정된 수순으로 보고 있다. 다만 소송에서 공정위가 패할 경우 국내 조선업계는 GTT와 또다시 불리한 계약을 해야 하는 상황이라 긴장감을 감추지 못하고 있다. 그동안 GTT는 이런 계약을 통해 조선사가 LNG선을 건조할 때마다 선가의 5% 수준을 로열티로 받아갔다. GTT는 특허권을 보유하고 있지만 선박 건조와 LNG 화물창 탑재 공사 경험이 없는 업체다. 실제 선박 건조에 사용하는 기술력은 한국 조선사들이 보유하고 있다는 것이 국내 업계의 설명이다.

한 조선사 관계자는 "현재 국내 조선사들이 수주하는 선박 대부분이 LNG 운반선인데, 선박 건조 때마다 GTT에 5%의 로열티를 ‘울며겨자먹기’ 식으로 낸다"며 "공정위가 이번 소송에서 패할 경우 GTT가 국내 조선사에 더 심한 갑질 계약을 요구할 수도 있어 조선업체들이 긴장하고 있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