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국택배노동조합이 이달말 총파업을 예고했으나, 21일 노사가 택배 노동자 과로사 방지를 위한 분류작업 책임 문제 등에 대해 최종 합의하면서 설 물류 대란은 피할 수 있게 됐다. 택배기사 과로사의 주원인으로 꼽히는 택배 분류작업을 택배사 책임으로 명시함에 따라 택배사들은 대책 마련에 팔을 걷어붙였다. 업계에서는 택배사의 비용 부담이 늘어나면서 택배비 인상이 불가피하다는 전망도 나오고 있다.

이날 체결된 합의문의 핵심은 노사 간 주요 쟁점이었던 분류작업을 ‘다수의 택배에서 타인 또는 본인(택배기사)의 택배를 구분하는 업무’로 규정하고 이를 택배사의 책임으로 명시한 것이다. 그동안 택배기사들은 과로사의 주요 원인으로 이른바 ‘까대기’라 불리는 분류작업을 꼽아왔다. 분류 업무는 지역별 허브터미널에 집하한 택배를 담당 구역별로 나누고 자신의 택배차에 싣는 과정을 말한다.

이로써 앞으로는 택배사가 분류작업 전담 인력을 투입하고 그 비용을 부담하게 됐다. 만약 택배기사가 불가피하게 분류작업을 하게 되면 사측은 추가 분류인력을 투입하는 비용보다 높은 대가를 기사에게 지급해야 한다. 인력을 구하기 어려운 사업장 등에는 동포 외국인력(H-2)을 허용하는 방안을 추진한다는 내용도 합의문에 담겼다. 동시에 합의문은 택배 사업자가 분류작업 설비 자동화 추진 계획을 수립해야 한다고 명시했다.

한 택배기사가 터미널에서 분류한 택배 물품을 차량에 실어 나르고 있다.

문제는 비용이다. 국내 택배업체 중에서 분류작업 자동화 설비가 도입된 곳은 CJ대한통운(000120)한 곳뿐이다. 업계에 따르면 분류작업 자동화 설비를 위해서는 1700억원 내외의 투자금이 필요하다. 한진(002320)의 지난해 영업이익은 약 1100억원, 롯데글로벌로지스는 350억원으로 추정된다. 이들의 한 해 영업이익을 다 합쳐도 자동화 설비 증설에 필요한 금액에 미치지 못한다.

업계의 한 관계자는 "궁극적으로는 자동화 설비에 투자해 인건비를 줄이는 것이 최선이지만 당장 회사의 유동성이 좋지 않아 어떤 방식으로 투자를 진행할지는 큰 고민"이라고 말했다. 또 다른 관계자는 "택배사의 영업이익률은 전체 매출의 1~2% 정도에 불과하다"며 "이익금을 탈탈 털어도 자동화 설비를 마련할까 말까 하는 수준"이라고 말했다. 이와 관련해 국토교통부 관계자는 "정부와 국회가 추후 예산과 세제 등을 통해 사측의 설비 자동화를 지원할 계획"이라고 했으나 업체들은 당장 비용 마련이 시급하다는 입장이다.

우선 택배업체들은 추가 조치를 고민하는 동시에 급한대로 앞서 발표한 과로사 방지 대책을 빠르게 이행한다는 계획이다. CJ대한통운 관계자는 "합의문은 성실히 이행할 것이며 우선 3월 말까지 투입할 계획이었던 분류인력 4000명에 대한 채용 속도를 높이고자 한다"고 말했다. 롯데글로벌로지스 측도 "합의문 세부 사항을 검토하면서 다음달 1일까지 분류인력 1000명을 투입할 것"이라고 말했다. 한진 측은 "과로사 방지 대책을 충실히 이행해 오는 3월까지 약속한 인력 1000명을 투입할 것"이라고 했다.

그러나 택배기사들은 "앞서 회사들이 발표한 분류인력 투입은 분류작업 전담이 아닌 보조 역할이었기 때문에 이제는 추가 인력 수급이 필수적"이라며 "분류작업 자동화 설비가 없으면 분류인력 1000명으로는 턱없이 부족하다"고 지적했다. 분류인력 지원 비용과 자동화 설비 증설 등 이번 합의에 따른 업체들의 추가 비용 부담이 불가피해진 만큼 추후 택배비 인상 논의가 이어질 것이라는 전망도 나오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