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리협정 복귀 및 마스크 착용 의무화 명령
"'트럼프 시대'와 '바이든 시대' 차이 입증"
송유관 사업에도 제동... 100여개 조치 폐기
프라우드 보이스 "트럼프는 루저, 협잡꾼"
큐아난 대표 인물 "이제 일상으로 돌아가자"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이 20일(현지 시각) 워싱턴DC 백악관 집무실에서 행정명령에 서명하고 있다.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이 임기 첫날인 20일(현지 시각) 파리기후협약 복귀와 마스크 착용을 의무화하는 내용 등 15개 행정명령에 서명했다. 외신들은 바이든이 2개의 행정조치를 추가해 총 17건에 서명할 예정이라고 보도했다. 취임 첫날 행보로 전임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의 정책 중 문제가 있다고 판단되는 조치를 일제히 뒤집은 것이다.

AP통신 등 외신에 따르면 바이든 대통령은 이날 백악관 집무실에 입성한 뒤 가장 먼저 코로나19 확산 방지를 위해 모든 연방 시설 내 마스크 착용과 사회적 거리두기를 의무화하는 행정명령에 서명했다. 두 번째는 유색인종과 소외된 지역 사회에 대한 지원 명령이었다. 세 번째로 30일 내 파리기후변화협약 재가입을 명령하는 서명이 이뤄졌다. 바이든은 참모진과 출입기자단 앞에서 펜을 들고 서명하며 "기다릴 시간이 없다. 즉시 일을 시작하자"고 했다.

이른바 '100일 마스크 쓰기 도전(100 Days Masking Challenge)'으로 불리는 행정명령에 따라 전국의 모든 연방정부 건물 및 하위 기관에 출입하는 사람은 마스크를 착용해야 한다. 사회적 거리두기도 의무 규정이다. CNN방송은 첫 번째 행정명령이 곧 '트럼프 시대'와 '바이든 시대'의 차이를 극명하게 보여준다고 했다. 마스크 착용을 극도로 기피한 전임 대통령을 지나 미 전역에서 마스크 의무 착용이 시행되는 새 정부가 출범했다는 의미다.

바이든 대통령은 트럼프 행정부 시절 단행된 세계보건기구(WHO) 탈퇴 결정도 취소키로 했다. 당장 이번 주 열리는 WHO 이사회에 미국 대표자도 참여할 예정이다. 외신들은 코로나19 대응에 완전히 실패했다는 비판을 받은 미국이 세계 무대에서 무너진 위상을 재정립하기 위한 조치에 나섰고 분석했다.

파리협정 재가입에 이어 환경오염 우려가 컸던 석유 관련 사업에도 제동을 걸었다. 캐나다와 미국을 잇는 키스톤 XL 프로젝트를 취소하고 국립야생보존지역 내 석유와 천연가스 개발을 금지하는 내용이다. 이 사업은 캐나다 앨버타주(州) 오일 샌드 유전지역에서 텍사스 정유시설까지 하루 83만 배럴의 원유를 운반하는 1897km 규모의 송유관 건설 프로젝트다. 이를 막기 위해 트럼프 전 대통령이 허가했던 100여개의 조치를 폐기하기로 했다.

바이든 대통령은 연방정부 예산이 유색인종 사회와 관련 단체에 공평하게 분배되는지를 적극 조사하는 내용에도 서명했다. 또 인구조사국에 각 주별 인구 수와 불법체류자 규모를 정확히 계수할 것을 지시했다. 이는 연방자원이 인종과 상관없이 효율적이고 공정하게 분배되도록 하려는 목적이라고 백악관은 설명했다. 전국적인 반(反)인종차별 시위를 일으켰던 트럼프 행정부의 특정 인종 우월주의와 정확히 선을 그으려는 행보다.

◇트럼프 숭배하던 극우집단도 뿔뿔이…"트럼프는 루저"

이런 가운데 트럼프 전 대통령을 지지했던 극우 집단 내 분위기도 변하고 있다. 뉴욕타임스(NYT)는 지난 6일 미 의사당 난입 사태에서 중심적인 역할을 맡았던 '프라우드 보이스(Proud Boys)'가 트럼프에 등을 돌리기 시작했다고 보도했다. 최근 소셜미디어 팔러(Parler) 퇴출 움직임에 따라 암호화 메신저 '텔레그램'으로 이동한 프라우드 보이스 온라인 모임에서는 "트럼프는 완전한 루저" "나약한 협잡꾼" 등의 발언이 쏟아졌다고 한다.

NYT는 이들이 트럼프 전 대통령에 대해 '배신감'을 느낀 것이 결정적 계기가 됐다고 전했다. 트럼프가 앞서 의사당 난입 사태에 대해 "결코 용납될 수 없다"는 등 공개적으로 유감을 표하면서 극우 세력의 충성심이 무너졌다는 것이다. 실제 이들은 이러한 유감 표명 이후 단체 회원들에게 트럼프와 공화당을 위한 집회 및 시위에 참가하지 말 것을 권유한 것으로 알려졌다.

특히 바이든 대통령의 취임을 전후로 음모론 집단 큐아난(QZnon)의 결집력도 한층 약해졌다. 이 단체는 트럼프 전 대통령이 미국 진보진영 인사들로 이뤄진 비밀세력 '딥 스테이트'로부터 미국을 구할 인물이라며 음모론을 생산했었다. 코로나19 대응 정국에서는 정부 내 딥 스테이트 세력이 트럼프의 재선을 막기 위해 백신 개발과 배포를 고의로 늦추고 있다고 주장하며 소셜미디어에 허위정보를 유포하기도 했다.

그러나 큐아난의 대표 인물인 기업가 론 워킨스는 이날 취임식 직후 온라인에 향후 활동 중단을 암시하는 글을 남겨 화제가 됐다. 대선 뒤집기 시도와 친(親) 트럼프 시위를 이끌었던 구심점이 사라진 셈이다. 그는 큐아난 회원들에게 "새로운 대통령이 취임했고, 시민은 헌법을 준수할 의무가 있다"며 "이제는 각자의 삶으로 돌아가자"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