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업들의 ESG(환경·사회·지배구조)채권이 잇따라 흥행하고 있다. 기대보다 더 많은 돈이 몰리고 기업이 발행 규모를 늘리면서 이번달에만 기업의 ESG채권이 1조원 이상 발행될 전망이다.

21일 재계에 따르면 현대오일뱅크가 2000억원 규모의 ‘녹색 채권(그린본드)’ 발행을 앞두고 진행한 수요예측에 총 1조3100억원의 주문이 들어왔다. 6배 이상 흥행한 셈이다. 현대오일뱅크는 발행 규모를 최대 4000억원까지 증액하는 것을 검토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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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제철(004020)역시 지난 19일 총 2500억원 규모의 녹색 채권에 대한 수요예측 결과 총 2조700억원이 몰려, 채권 발행 규모를 5000억원으로 늘리기로 했다. 롯데지주(004990)의 ‘지속가능 채권’도 모집금액(300억원)보다 3배의 주문이 들어와 600억원으로 증액해 발행한다.

녹색 채권과 지속가능 채권 모두 ESG채권의 하나로 자금 사용 목적이 정해져있다. 예를 들어 녹색 채권은 탄소 감축이나 신재생 에너지 프로젝트 자금 등 녹색 산업 관련 용도로만 쓸 수 있다. 현대오일뱅크는 녹색 채권을 통한 자금을 이용, 2022년까지 기존 공장에 탈황 시설과 이산화탄소·대기오염 물질 저감 시설을 설치할 계획이다. 현대제철은 온실가스 감축을 위한 코크스 건식냉각설비(CDQ)도입에, 롯데지주는 경기 오산시 롯데인재개발원에 친환경 건물 준공에 자금을 투입한다.

저금리 기조 속 채권시장이 활황이지만 유독 ESG채권은 인기에 불이 붙었다. 이번달 회사채 시장에서 ESG채권의 발행 비중이 처음으로 10%를 넘어섰다. 수급이 맞아 떨어진 영향이 크다. 정부의 그린뉴딜 정책과 2050 탄소중립 목표에 발맞춰 기업들은 신재생 에너지나 탈탄소 등 사업을 확장하고 있다. 연기금과 운용사 등 기관 투자자들도 ESG투자에 나섰다.

특히 기업들 입장에서 ESG채권이 흥행하는 만큼 자금 조달에 드는 비용을 아낄 수 있어 더 적극적인 상황이다. SK하이닉스(000660)는 10억 달러(약 1조1000억원) 규모의 녹색 채권을 발행하겠다고 공식화했고, LG그룹도 ESG채권 발행을 검토하고 있다.

재계 고위 관계자는 "ESG의 중요성이 커지는 만큼 결국 제조기업들에겐 대규모 설비투자가 필요하다"며 "이런 상황에서 ESG채권이 자금을 마련할 수 있는 좋은 창구가 되고 있다"고 했다.

다만 회사채 시장도 업종과 신용등급에 따라 쏠림 현상이 뚜렷한 만큼 ESG채권 시장도 예외는 아닐 것이란 평가도 나온다. IB(투자은행)업계 관계자는 "연초 시장이 뜨겁지만 옥석 가리기는 계속되고 있다"며 "신용등급 AA 이상 시장과 그 이하 시장의 온도차가 있어 ‘ESG채권’이란 이름을 붙인다고 다 흥행 대박을 낼 수는 없다"고 말했다.

오는 22일 수요예측 조사를 하는 롯데글로벌로지스(롯데택배)가 가늠자가 될 수 있다. 롯데글로벌로지스는 500억원 규모의 녹색 채권을 발행할 계획이다. 물류업계에선 처음이고, 앞서 발행한 기업들보다 신용등급은 ‘A0’로 한두계단 낮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