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이지 말라고 그렇게 말해도 기어이 모여 집단감염을 일으키는 사람들을 보면 ‘나만 괜히 고생하고 있나’ 하는 생각이 들어 억울하다."

"손해가 막심해도 사태 진정을 위해 방역 수칙을 지켜왔는데 계속되는 차별적 정책 때문에 화가 치민다."

지난해 1월 20일 국내에 첫 코로나 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환자가 발생한 뒤 지난 1년 동안 세 차례의 대유행이 발생했고 전국에서 산발적인 집단감염이 계속됐다. 정부의 거리두기 단계에 따라 일상이 달라지고 생업이 좌우되자 불안감이 지속됐다. 코로나에 대한 시민들의 불안감은 특정 집단에 대한 분노로 표출됐다. 시민들은 서로에게 분노와 혐오를 쏟아냈으며 실효성 있는 대책을 내놓지 못하는 정부와의 갈등도 격화했다.

지난 18일 서울 중구의 한 카페에서 시민들이 매장 내 좌석에 앉아 음료를 마시며 대화하고 있다.

◇ ‘방역 수칙’ 두고 깊어지는 갈등의 골… 분노하는 시민들

코로나 바이러스 감염증 방역 조치의 일환으로 일상생활이 제한되자 수칙을 어기는 사례들이 늘어나면서 이와 관련한 갈등이 이어지고 있다. 공공장소에서의 마스크 착용이 ‘선택이 아닌 필수’가 된 지 1년이 됐지만 여전히 버스기사와 역무원, 종업원 등을 폭행하는 사건이 전국에서 발생하고 있다.

지난 15일 마스크를 올바르게 착용해달라고 요청한 카페 주인에게 주먹을 휘두른 70대가 폭행 혐의로 전북 정읍경찰서에 입건됐다. 지난 9일엔 같은 이유로 서울 용산구에서 택시기사를 때리고 발길질한 60대 승객이 경찰에 붙잡혔다. 피해 택시기사는 전치 2주의 상해를 입었다.

지난해 8월 지하철 2호선 열차 안에서 50대 승객이 마스크를 벗은 채 통화를 하다 다른 승객이 마스크 착용을 요구하자, 신고 있던 슬리퍼를 벗어 뺨을 때리고 이를 말리는 승객의 목을 졸라 화제가 되기도 했다. 구속 상태로 재판을 받고 있는 그는 지난달 징역 3년을 구형받았다.

이와 같은 방역 갈등은 코로나 사태 1년을 맞은 이날까지도 이어지고 있다. 19일 행정안전부에 따르면 전날 기준 정부 안전신고 포털인 ‘안전신문고’에 접수된 코로나 관련 신고는 785건으로, 지난해부터 이날까지는 누적 8만6229건의 신고가 접수됐다. 이 가운데 ‘출입자 관리 위반 및 마스크 미착용 등’은 2만6693건으로 31%를 차지했다.

서울대 보건대학원 코로나 기획연구단이 지난해 9월 공개한 ‘코로나19와 사회적 건강’ 조사 결과에 따르면, 코로나 2차 유행을 거치면서 시민들이 느끼는 불안감은 감소한 반면, 분노감을 늘어난 것으로 나타났다. ‘코로나19 뉴스에서 어떤 감정을 가장 크게 느끼는가’라는 질문에 ‘불안’이라고 답한 비율은 8월 62.7%에서 9월 47.1%로 감소했고, ‘분노’라고 응답한 비율은 같은 기간 11.5%에서 26.3%로 두 배 넘게 급증했다. 이유로는 ‘비협조’ ‘집단 이기심’ ‘무책임’ 등을 들었다.

그래픽=김란희

◇ 중국인→신천지→성소수자로 이어진 감염 고리… 분노 넘어 ‘혐오’로

이같은 분노는 특정 집단에 대한 혐오로 이어지기도 했다. 코로나 발발 당시엔 중국인, 3월 1차 유행 땐 신천지 신도, 5월 이태원 클럽발 집단감염 사태 때는 성소수자가 그 대상이었다.

같은 조사에서 ‘코로나와 관련한 혐오 발언을 들어본 적이 있느냐’는 질문에 응답자의 39%가 ‘그렇다’고 답했다. 혐오 발언의 대상은 지난해 9월 기준 신천지, 기독교, 자가격리 수칙 위반자, 사회적 거리두기를 실천하지 않는 사람 순으로 나타났다.

실제로 지난해 초 중국 우한에서 코로나가 확인되고 국내에도 확진자가 발생하자 비난의 화살은 국내에 거주하는 중국인에게 쏠렸다. 이후 3월 신천지 대구교회 발 대규모 유행이 확산하자 혐오의 타깃은 대구·경북 지역과 신천지 신도들로 옮겨갔다. 일각에선 ‘대구 봉쇄령’까지 주장하고 나섰고 ‘대구 코로나’라는 말이 나오기도 했다.

성소수자들이 자주 찾는 이태원의 한 클럽에서 집단감염이 발생하자 혐오는 정점을 찍었다. 포털사이트 실시간 검색어에는 ‘게이 클럽’이 올랐고, 해당 시설에 방문한 확진자의 신상정보와 직업과 직장까지 파헤쳐졌다.

전문가들은 확진자에 대한 혐오를 두려움에서 기인한 현상이라고 봤다. 이동귀 연세대 심리학과 교수는 "사람은 생존 위협을 받거나 좌절감을 느끼면 공격 본능이 올라와 탓할 대상을 찾는 경향이 생긴다"며 "탓했을 때 보복 당할 위험이 없는 대상을 주로 타깃으로 삼게 된다"고 말했다.

이 교수는 이어 "특히 피아 구분적인, 이분법적 사고를 가진 사람일수록 타인에 대한 분노 감정이 쉽게 올라온다"며 "혐오의 대상이 됐던 집단을 보면 국적, 종교, 성적 지향과 같이 이분법적 특성이 두드러지는 집단이었다"고 설명했다.

◇ 헌법 소원·소송 걸고 ‘오픈시위’ 강행… 정부 향한 분노도 쏟아져

지난 한해동안 이같은 시민 간의 갈등 뿐만 아니라 정부와 시민 사이의 갈등도 점차 격화됐다. 코로나 바이러스 감염증 사태로 생업이 막힌 자영업자들이 정부 방역 대책에 저항하고 나서면서다.

정부 방역 대책 ‘보이콧’ 안내문.

업주들은 ‘업종 차별’을 문제로 들며 억울함을 호소하고 생존권 보장을 요구하는 내용의 집회를 여는 것을 넘어 집단 소송과 ‘오픈 시위’를 강행하고 나섰다. 실내체육업계는 지난달 초 내려진 영업금지 조치에 반발해 영업 재개를 강행했다. 정부가 발레·태권도 등 교습소에 대해서만 ‘아동 돌봄 기능’을 이유로 9인 이하 영업을 허용했기 때문이다. 필라테스·피트니스 사업자 연맹은 두 차례에 걸쳐 정부를 상대로 한 18억원 상당의 손해배상 청구 소송을 내기도 했다.

지난 18일부터 다시 영업이 허가된 실내체육업과 달리 여전히 문을 열지 못하고 있는 클럽과 콜라텍, 단란주점, 헌팅포차,감성주점 등 5종 유흥시설 업주들도 반발하고 있다. 한국유흥업중앙회 소속 일부 업소들은 "과태료도 불사하겠다"며 전날 오후 6시부터 영업을 시작했다.

야간 고객이 대부분이지만 오후 9시 이후 영업을 하지 못한 PC방도 전날 ‘점등 시위’에 나섰다. 이들은 21일까지 정부가 실효성 있는 추가 대책을 마련하지 않으면 9시 이후 영업을 강행하겠다는 방침이다. 앞서 이들은 호프집 업주들과 함께 지난 5일 "감염병 예방법과 지방자치단체 고시는 영업중단 손실 보상에 대한 근거조항이 없어 자영업자의 재산권과 평등권을 침해한다"며 헌법 소원을 내기도 했다.

전문가들은 코로나 사태로 지친 시민들의 심리 방역을 위해선 "원칙과 신뢰가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이 교수는"‘확진자가 몇 명이 되면 어떤 조치가 취해진다’는 것이 예상되는 방향으로 진행돼야 반발감이 줄어든다. 그러나 ‘이건 되고 저건 안 되고’ 식의 조치가 이어진 탓에 정부 방역 대책이 신뢰를 잃어 저항을 받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 교수는 "코로나 사태와 같은 위기 상황에서 사람들은 원칙과 일관성이 깨졌을 때 분노한다"며 "어려운 상황이라는 것은 공감하지만 기준을 명확히 세우고 지켜나가야 분노감을 잠재울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