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오프라인 매장은 미래에도 중요한 채널…
디지털화 진행될수록 '실재적 경험' 욕구 커질 것
'리테일 레거시' 버리고 새로운 시각으로 공간 재구성해야

황지영 노스캐롤라이나대 교수.

"디지털화가 진행될수록 실재적 경험과 직접 소통에 대한 소비자들의 욕구는 더 커질 것이다. 오프라인 매장은 미래에도 중요한 채널로 존재할 것이다." 황지영 노스캐롤라이나대학 교수는 조선비즈와의 인터뷰에서 이렇게 말했다.

오프라인 유통이 절체절명의 위기를 맞았다. 온라인 쇼핑의 부상과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장기화로 오프라인 매장은 폐점 공포가 가속화되고 있다. 코어사이트 리서치에 따르면 미국에선 2019년에 9800여개의 점포가 문을 닫았고, 지난해엔 2만5000여개의 소매점이 폐점한 것으로 추정된다. 여기엔 토이저러스, 시어스, 니만마커스 등 오랜 역사를 지닌 점포도 대거 포함됐다. 국내에서도 롯데를 비롯한 유통업체들이 구조조정과 온라인 전환을 골자로 한 강도 높은 체질 개선을 진행 중이다.

하지만 황 교수는 "코로나19 이후 비대면 소비가 확산하면서 온라인으로 유통 판도가 바뀐 건 분명하지만, 여전히 오프라인은 중요한 채널"이라며 "지금은 오프라인의 종말이 아닌 오프라인의 재탄생을 준비할 시기"라고 강조했다.

황 교수는 미국 노스캐롤라이나대학교 마케팅 전공 부교수로 재직하며 삼성전자, 신세계푸드, LG상사, GS리테일 등 국내외 유통 기업을 대상으로 강연과 자문을 하고 있다. ‘리테일의 미래’ ‘리:스토어’ 등을 출간해 유통업의 미래를 진단하기도 했다. 그에게 오프라인 유통의 미래를 들어봤다.

-오프라인은 미래에도 중요한 채널로 존재할 것이라고 했다. 그 근거는.

개인적으로 스타벅스 창가에 앉아서 커피 한 잔을 마시며 일하고 친구들과 만나는 걸 좋아한다. 이사할 때도 집 근처에 스타벅스 매장이 있는지를 먼저 본다. 코로나19로 도시가 폐쇄된 후 재택근무를 하면서 그 공간이 무척 그리웠고, 인간의 본성은 디지털만으로는 채울 수 없다는 걸 실감했다.

비대면 쇼핑 시대에도 오프라인 매장이 중요한 이유는 ‘실재적 경험’이라는 인간의 욕구를 충족시키기 때문이다. 이는 디지털 세상에서는 채울 수 없는 가치이다. 지난해 국내에서 젊은 등산 인구가 부쩍 증가한 것도 억눌린 실재적 경험에 대한 인간의 본성이 표출된 까닭이다.

설치 미술 작품으로 꾸민 안경 브랜드 젠틀몬스터 홍대 매장.

특히 소비 시장의 중심으로 떠오른 Z세대(1995년 이후 출생자)는 실재적 경험에 대한 욕구가 크다. 디지털이 일상인 이들에게 오프라인 매장은 기분 전환과 안정감, 멋을 찾는 공간이다. 글로벌 컨설팅 기업 커니의 조사에 따르면 Z세대 응답자의 91%가 오프라인 쇼핑을 선호하고, 73%가 매장에서 새로운 상품을 발견하기를 원했다.

디지털화가 가속화될수록 실재적 경험과 직접 소통에 대한 욕구는 더 커질 것이다. 이에 따라 오프라인 매장은 쇼핑을 넘어 재미와 정체성을 발견하는 공간으로 소비될 것이다. 아마존을 비롯해 안경 브랜드 와비파커, 남성복 보노보스 등 온라인 기반 직접 판매(D2C·Direct To Consumer) 브랜드들이 오프라인 매장을 적극적으로 여는 것도 바로 이런 이유에서다.

-코로나19 이전에도 오프라인 유통은 쇠퇴하고 있었다. ‘소매업의 종말(리테일 아포칼립스)’라는 말까지 나왔을 정도다. 몰락의 근본적인 원인은 무엇일까.

오프라인 기반 업체들이 파산했기에 ‘오프라인 유통의 종말’이라 표현하는 것이 더 정확할 거 같다. 오프라인 유통사들이 위기를 맞은 이유는 오프라인 레거시(유산·자산)에 묶여 변화에 제대로 대응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붉은 여왕 이론(Red Queen’s Theory)’라는 진화론적 관점에서 설명할 수 있다. 어떤 생물이 적자생존에서 뒤처지거나 소멸하는 이유는, 그 생물이 변화를 시도해도 주변 환경이나 경쟁 대상이 같이 변하기 때문이다.

온라인 유통사들이 적극적으로 변화를 시도할 때 상대적으로 기반이 탄탄한 오프라인 유통사들은 안일한 자세를 취했다. 온라인으로 주도권이 넘어간 후 뒤늦게 변화를 시도했지만, 이미 온라인 유통사는 기술, 빅데이터, 물류 등 모든 면에서 전통 유통사를 앞질러 버렸다. 아무리 투자하고 변화해도 저 멀리 앞서간 온라인 업체와 이탈한 소비자를 따라잡기엔 역부족이다. 여기에 코로나19 사태가 발생하고 비대면 쇼핑이 일상화하면서 오프라인의 위기는 더 심화하고 있다.

-전통 유통기업들이 ‘리테일 레거시’적 관점에 함몰됐다고 짚었다. 신사업에 진출해도 고객 수나 매출에 매달리다 보니 가치는 뒷순위로 밀렸다고 지적했다. 하지만 사업자로서는 리테일 레거시를 무시할 수 없다.

좋은 지적이다. 기존의 비즈니스 방식을 버려야 한다는 뜻이 아니라, 새로운 시각이 필요하다는 걸 강조하고 싶다. 최근 온라인 기반의 D2C 브랜드들이 오프라인 매장을 여는 경우가 많은데, 그 이유는 체험 중심의 매장으로 소비자들에게 좋은 인상을 남겨 온라인 매출을 늘리기 위해서다. 바로 ‘후광 효과’다. 반면, 오프라인 기반의 유통사들은 매장을 자산으로 보고, 매장에서 상품이 얼마나 많이 팔리는지에 집중한다. 이런 시각의 차이가 오프라인 유통의 위기로 이어졌다고 본다.

D2C 남성복 브랜드 보노보스 매장.

물론 브랜드 인지도 면에서 리테일 레거시는 좋은 유산이다. 가령 신사업을 할 때 이마트와 신세계가 만들고 추천하면 고객들은 신뢰한다. 하지만 그 내용이 고객들에게 기대만큼 만족을 주지 못하면 실망할 수도 있다.

소비자는 변했다. "우리가 이만큼 투자를 했으니 고객들이 좋아할 거야"라는 생각으로는 실패할 수밖에 없다. 고객이 어떻게 변하는지를 보고, 외부 고객의 시각으로 생각하고 의사를 결정하는 ‘아웃사이드 인(Outside-in)' 경영이 필요하다.

-앞으로 오프라인 매장은 어떤 역할을 하게 될까?

상품 구매의 주 채널이 온라인으로 넘어감에 따라 오프라인 매장의 역할은 변할 것이다. 이미 오프라인은 경험이나 브랜드 이미지 구축, 소통 채널로 활용되고, 온라인은 구매가 이뤄지는 장소로 나뉘고 있다. 코로나19 이후 이런 경향은 더 뚜렷해지고 있다. 그 과정에서 오프라인 매장의 축소는 불가피할 것으로 보인다.

-온라인으로 간 소비자들을 오프라인으로 되돌리는 방법은.

‘다시 방문하고 싶은 매장’ 만들기. 즉 그 매장만이 줄 수 있는 가치를 구현해야 한다. 뉴욕 소호에 위치한 쇼필즈는 온라인 브랜드를 숍인숍(Shop in Shop·매장 내 매장) 형태로 구성해 새로운 브랜드를 발견하는 재미를 주고, 맨해튼 5번가의 나이키 플래그십스토어(대표 매장)는 각종 기술을 탑재한 인테리어로 미래에 온 것 같은 짜릿함을 준다.

또 파리 쁘렝땅 백화점은 식품 코너를 7층에 배치해 식품 쇼핑에 시각적 가치를 더했다. 국내 백화점들도 화장품과 명품이 있던 1층을 맛집과 카페, 식품 코너로 바꾸고 있다. 오프라인에서만 가능한 경험을 보다 세련되고 자극적으로 제공해 매장을 찾을 이유를 제시한 것이다.

코로나19로 비대면 소비가 가속화되는 걸 고려할 때, 오프라인 매장 수는 줄이되 매장의 뚜렷한 정체성과 고객의 시간을 점령하는 특별한 경험을 제공하는 방향을 큰 틀로 세워야 한다. 지속가능한 매장으로의 성공 여부는 고객에게 전달하는 감성과 경험, 영감 등을 얼마나 구체적으로 구현하느냐에 달렸다.

집처럼 꾸민 쇼필즈의 매장.

-아마존의 알고리즘을 활용한 추천 서비스를 오프라인에서도 실현할 수 있을까?

인공지능, 머신 러닝, 빅데이터 등을 이용하면 가능하다. 이미 오프라인 매장에서 데이터를 축적하고 분석하는 기술은 상당 수준 발전해 있다. 아마존고와 아마존 프레시는 알렉사 키오스크(무인 정보 단말기)와 스마트 쇼핑 카트 등으로 데이터를 모으고, 이를 오프라인 쇼핑에 적용한다. 알리바바의 허마센셩은 알고리즘으로 수요를 예측하고 재고를 확보해 30분 내 상품을 배달한다.

앞으로는 오프라인 매장에서도 점원의 기억과 경험에 의한 추천이 아니라, 데이터를 가지고 점원이 태블렛에서 추천되는 상품을 소비자에게 권하는 방식이 보편화될 것이다.

-한국에서 좋은 영감을 받은 매장이 있다면.

아이웨어 젠틀몬스터의 매장은 설치 미술을 결합한 인테리어가 색달랐고, 아모레퍼시픽이 운영하는 아리따움 메이크업 프로 스튜디오는 내가 사는 지역의 메이크업 전문가가 나만을 위한 스타일을 제안한다는 콘셉트가 인상적이었다. 신사동 카페 청수당 갤러리에서는 자연 친화적인 인테리어로 휴식과 치유를 소비하는 리테일 테라피 경험을 얻을 수 있었다.

-유통의 미래는 어떤 모습일까?

미래의 유통은 ‘연결성(connectivity)’이 화두가 될 것이다. 언제 어디서든 스마트폰 없이도 얼굴과 손금, 음성으로 쇼핑이 가능하고, 증강현실(AR)·가상현실(VR)로 판매자와 소비자가 소통하며 상품 구매와 결제까지 하게 될 것이다. 또 땅에서는 로봇이, 하늘에는 드론이 상품을 배송할 것이다.

오프라인 매장은 소통하고 마실 가는 공간으로서의 성격이 강해질 것이다. 무인매장 같은 디지털 매장부터 아날로그 감성이 강한 공간까지, 다양한 형태의 매장이 존재할 것으로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