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을 상대로 도·소매업을 하는 회사에서 디자이너로 일했던 박지인(가명·38)씨는 코로나 바이러스 감염증 사태로 지난해 일자리를 잃었다. 박씨는 "경제적 어려움이 장기간 이어질수록 분노가 파도처럼 밀려왔고, 모든 것을 포기하고 싶다는 생각도 스스로를 짓눌렀다"고 토로했다.

우울감에 시달리던 박씨는 이후 서울 성동구 정신건강복지센터에서 심리 상담을 받았다. 그는 "실직의 충격과 함께 1년 가까이 경제적 어려움까지 겹치니 난생 처음으로 우울증을 겪었다"며 "8주간 일주일에 한 번 1시간씩 심리상담을 받았다"고 했다.

코로나 바이러스 일러스트.

코로나 사태가 장기화하면서 심적 고통을 호소하는 사람들이 크게 늘고 있다. 우울감을 느끼는 ‘코로나 블루’에 이어 격한 분노를 느끼는 ‘코로나 레드’, 절망감과 암담함을 느끼는 ‘코로나 블랙’ 등 각종 신조어까지 나왔다. 우울감을 호소하는 시민들이 자치구에 마련된 심리상담센터를 찾는 경우도 급증했다.

김남영 성동구 정신건강복지센터 상임 팀장은 "지난해 우울증이나 조울증, 조현증, 불안장애 등의 상담 건수가 전년대비 47% 정도 늘어났다"면서 "상담유형으로 봤을 때는 조현병이 전년보다 약 36% 증가했고 우울증 상담도 63% 정도 많아졌다"고 말했다.

심리상담센터를 찾는 사람들은 연령대별로 다른 이유로 우울감을 호소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서초구청 보건소 정신건강복지센터 관계자는 "청년층은 구직이 안 되면서 경제적으로 타격을 받는데 따른 우울감을 느끼는 경우가 많다"면서 "중년층은 재택근무가 늘면서 가족 간 갈등을 호소하기도 하고, 노년층에서는 외부활동이 제한돼 외로움을 호소하는 사람이 많다"고 했다.

코로나 사태에 따른 대표적 피해자들로 꼽히는 자영업자나 소상공인들이 특히 정신건강에 ‘위험신호’가 켜졌다. 중소기업중앙회가 1006개 소상공인을 대상으로 실시한 조사에서 코로나 이전에 비해 ‘만성피로·피곤함·우울감이 늘었다’는 응답은 전체의 78.5%를 기록했다.

이들이 심리적인 고통을 호소하는 이유는 경제적 타격 때문이다. 중기중앙회 조사에서 소상공인들의 지난해 월평균 매출액은 3583만원에서 2655만원으로 928만원(25.9%) 감소했다. 영업이익도 월 727만원에서 468만원으로 259만원(35.6%) 줄었다.

코로나 사태가 1년째 지속되며 우울감을 호소하는 사람들이 크게 늘자, 정부는 전 국민을 대상으로 ‘정신건강서비스’를 제공하는데 5년간 2조원을 투입하겠다고 밝히기도 했다.

보건복지부에 따르면 통합심리지원단을 통해 코로나 확진자와 격리자를 위한 맞춤형 심리지원을 추진한다. 현재 1대뿐인 ‘안심버스’를 올해 13대로 늘린다. 안심버스는 코로나 대응인력과 장애인‧노인 등 취약계층 대상으로 찾아가 심리지원을 진행하는 제도다. 구직자나, 실직자 등에 대해서는 별도의 심리상담을 실시하고, 직업 트라우마센터를 통해 근로자의 정신건강도 관리할 계획이다.

전문가들은 규칙적인 외부활동이나 운동, 취미생활 등이 코로나 우울증을 극복하는데 도움을 줄 수 있다고 조언한다.

권준수 서울대병원 정신건강의학과 교수는 "재택근무 등으로 인해 외부활동이 오랜 기간 단절되면서 우울감이나 불안감을 느껴 병원을 찾는 경우가 많았다"고 전했다. 그는 "운동이나 스트레칭 등 몸을 풀어주는 활동을 하고, 비대면 방식을 통해서도 꾸준히 타인과 소통하는 노력을 적극적으로 해야 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