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조·건설 및 금융분야를 주력으로 하는 한화(000880)가 인공위성 기술 확보에 속도를 내고 있다. 한화그룹의 항공·방산 계열사 한화에어로스페이스(012450)는 13일 소형 인공위성 기업 쎄트렉아이(099320)를 인수한다고 밝혔다. 항공·방산 업계에 따르면 한화그룹의 잇따른 위성 개발 기업 인수는 우주 개발을 주도하는 주체가 정부에서 민간으로 넘어가고 있는 최근의 우주산업 트렌드에 따라 시장을 선점하기 위한 것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지구 상공에 떠 있는 스페이스X의 스타링크 위성을 지구 위에 표시한 이미지.

최근 글로벌 우주산업의 쟁점은 ‘우주 인터넷’, 즉 저궤도 위성통신 사업이다. 지상에서부터 고도 200~1500㎞에 위성을 쏘아 올려 5G·6G(5·6세대 이동통신) 수준의 통신망을 구축하는데, 기존 인터넷 통신망과 달리 인터넷이 잘 안 되는 저개발 국가나 시골 지역은 물론 산간 오지나 해양 및 공중에서도 빠른 속도의 인터넷을 이용할 수 있다. 궁극적으로 인터넷 소외 지역이 야기한 사회문제인 ‘정보 편차’를 없앨 수 있는 것이다.

이같은 국제 사회의 필요성과 기업의 경제적 이익이 맞물리면서 민간 기업 간 위성 기술 선점 경쟁은 치열해지고 있다. 테슬라의 최고경영자(CEO)인 일론 머스크가 창업한 스페이스X, 아마존, 애플, 영국의 원웹(OneWeb) 등이 저궤도 위성통신 사업에 뛰어들어 치열한 경쟁을 벌이고 있다. 위성통신 안테나 관련 시장 규모는 오는 2026년 50조원에 달할 것으로 전망된다.

미국 우주탐사기업 스페이스X는 오는 2027년까지 저궤도 위성 1만2000개를 쏘아 올려 지구 전역에서 초고속 인터넷 사용이 가능한 ‘스타링크’ 사업을 추진 중이다. 이미 독일, 호주, 그리스, 영국에서 사업승인을 받았다. 아마존은 프로젝트 ‘카이퍼(Kuiper)’를 통해 저궤도 위성 3236개를 쏘아 올릴 계획이고, 총 110대의 위성을 확보한 윈웹은 향후 매월 30대의 위성을 발사할 예정이다.

카이메타의 위성통신 안테나(붉은원)가 차량에 설치돼있는 모습.

업계에서는 한화 역시 이 전쟁에 본격적으로 참여할 준비에 나섰다는 관측이다. 한화에어로스페이스에 앞서 한화시스템은 지난해 6월 영국의 위성통신 안테나 기술 벤처기업인 ‘페이저 솔루션’의 사업 및 자산 일체를 인수해 한화페이저를 설립했다. 이에 저궤도 인공위성통신을 실현하기 위한 핵심기술은 전자식 빔 조향 안테나(ESA) 시스템 등 원천기술을 확보했다.

한화시스템은 지난달에도 미국의 ESA 기술 기업인 카이메타(Kymeta)에 3000만달러(약 330억원)를 투자해 전략적 파트너십을 맺었다. 올해부터 카이메타 위성 안테나 제품의 한국시장 독점 판권을 확보해 국내외 시장 개척에 나설 예정이며, 양사는 차세대 전자식 위성통신 안테나 공동개발을 계획하고 있다.

한화시스템 관계자는 "실용성과 시장성이 높은 카이메타의 메타구조 기반 안테나 기술과 한화페이저의 반도체 칩 기반 고성능 안테나 기술을 동시에 확보해 해상·상공·지상 전 영역의 저궤도 위성통신 안테나 사업 역량을 높여나간다는 전략"이라고 했다.

김승연 한화그룹 회장은 최근 신년사에서 "미래 성장 동력을 확보해 세계 무대에서 사업 역량과 리더십을 확대해야 한다"면서 항공·우주를 비롯해 모빌리티(운송수단), 그린수소 에너지 등 신사업에서 기회를 선점해달라고 주문하기도 했다.

서울 중구 한화그룹.

전문가들은 한화그룹의 항공·방산 계열사가 중장기적인 협력을 통해 국내외 위성 사업에서 시너지를 발휘할 것이라고 입을 모은다. 한화그룹은 지난 2015년 삼성그룹과 진행한 빅딜로 한화에어로스페이스(구 삼성테크윈)를 세우면서 항공우주사업 역량을 강화했다. 2018년엔 한화에어로스페이스를 ㈜한화 아래 항공 전담 지주회사 격으로 전환하고 한화디펜스, 한화시스템 등을 자회사로 뒀다.

한화에어로스페이스는 우주 위성사업 관련 한국형 발사체인 ’누리호(KSLV-2)‘ 액체로켓엔진 개발을 맡고 있다. 한화시스템은 위성 탑재체인 영상레이더(SAR), 전자광학·적외선(EO·IR) 등 구성품 제작 기술과 위성안테나, 통신단말기 등 지상체 부문 일부 사업을 하고 있다.

항공·방산업계 관계자는 "위성시스템은 위성 본체, 전자광학 탑재체, 지상체 등이 핵심 구성품"이라며 "계열사간 특성을 살려 기존에 보유한 방산 통신·레이다 기술을 바탕으로 우주 인터넷을 비롯해 우주 영역 감시·대응체계 등 항공우주 산업에서 경쟁력을 확보할 수 있을 것"이라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