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서대문구에서 백반집을 운영하는 김모씨(40)는 새해부터 한숨이 짙어졌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여파로 음식점을 찾는 발길이 줄었지만, 쌀값, 고기 등 식재료 가격이 줄줄 급등했기 때문이다. 허씨는 "손님도 끊겨 어려운 상황인데, 쌀값에 식재료들이 줄줄이 올라, 더 어려워졌다. 어려운 시기에 가격을 올릴 수도 없고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있다"고 하소연했다.

코로나19에 따른 매출 급감한 자영업자들이 이번에는 ‘쌀값 폭탄’라는 이중고를 겪고 있다. 9시 이후 영업 중단으로 매출이 반토막이 난 상황에서, 쌀 도매가격이 30% 가까이 올랐기 때문이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사태로 외식을 줄이고 집에서 식사하는 시간이 늘어난 만큼, 쌀 수요가 증가하면서 쌀값은 계속 오를 것으로 전망된다.

12일 서울 시내 한 대형마트 쌀 판매대의 모습.

정부가 비축미 공급하는 등 대책 마련에 나섰지만, 시장 수요를 감당하기는 턱없이 부족한 상태다. 일각에서는 농업(Agriculture)과 인플레이션(Inflation)의 합성어인 ‘애그플레이션(Agflation)’을 빗대 ‘쌀플레이션’ 이라는 신조어도 등장했다. 쌀 값 급등이 외식비 등 서비스 물가와 각종 가공식품 가격에 전방위로 영향을 미쳐, 코로나로 위축된 가계 경제활동을 위축시킬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쌀값 급등’ 정부, 비축분 18만톤 공급… 장바구니 물가 잡히나

12일 한국농수산식품유통공사 농산물유통정보에 따르면 지난 12일 기준 쌀 20㎏ 평균 매가격은 5만9723원으로 1년 전 5만1790원에 비해 15.3%가 올랐다. 최고값과 최소값을 제외한 3년 평균값인 평년 가격 4만5968원보다 1만3755원(29.9%) 비싸진 셈이다. 한달 전에는 6만453원을 기록하며, 6만원대를 돌파하기도 했다.

지난해 4월(4만6990원)까지 정체됐던 쌀값은 코로나19의 영향으로 6월(4만8393원) 들어 급등하기 시작한 뒤, 7월(4만8719원)→8월(4만9404원)→9월(5만713원) 등 상승세를 이어가며, 처음으로 5만원을 넘어섰다. 이후에는 가격 상승폭이 지난해 11월 쌀값은 5만5599원으로 전달(10월)에 비해 한달만에 커지면서 6.1% 급등했다.

그래픽=정다운

쌀값 급등 현상은 공급은 줄었는데, 쌀 소비가 크게 늘어난 영향으로 풀이된다. 통계청에 따르면 지난해 장마와 태풍 영향으로 쌀 작황이 부진해, 쌀 생산량은 전년보다 6.2%가 줄어든 350만7000톤에 그쳤다. 1968년 320만 톤 생산 이후 가장 적은 양을 기록했다.

통계청 관계자는 "건물 건축, 공공시설 개발에 따른 경지 감소와 정부의 논타작물 재배 지원사업으로 벼 재배면적이 감소했다"며 "여기에 낟알이 형성되는 시기에 긴 장마와 태풍 등 기상여건이 악화됐기 때문"이라고 했다. 이로 인해 10a((1000㎡)당 평균 생산량이 483kg으로 지난해 513kg보다 줄어들었다는 것이다.

정부는 쌀값 급등을 막기 위해, 1~2월 중 산물벼 인수, 2차례 공매를 통해 쌀 18만 톤을 시중에 푼다는 계획이다. 산물벼는 논에서 콤바인등을 이용해, 바로 수확한 상태의 벼를 말한다. 정부는 올해까지 시장에 총 37만 톤을 공급할 예정이다.

하지만 18만 톤으로는 쌀값의 고공행진을 잡기가 어렵다는 지적도 나온다. 쌀밥에 주로 사용하는 산물벼 분량은 8만톤(44%)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또 총 37만 톤의 공급 시점이 올해 6월까지인 만큼, 당장 급한 수요를 감당할 수 없다.

쌀 뿐 만 아니라, 주요 식량작물은 모두 상승세를 보이고 있다. 찹쌀 1㎏ 소매 가격은 4938원으로 1년 전 4435원 대비 11.3% 올랐다. 콩 500g 소매가격은 5909원으로 1년 전 4777원 대비 23.6% 올랐고, 팥 500g 소매가격은 9167원으로 1년전 7244원 대비 26.5% 인상됐다. 이외에도 고구마(밤 1㎏), 감자(수미 100g)는 각각 6035원, 318원으로 1년전 가격인 4217원, 272원 대비 431%, 16.9% 가격이 올랐다.

축산물도 대부분 1년전 가격대비 올랐다. 한우 등심 100g 9207원→1만87원, 한우 안심 100g 1만1453원→1만2531원, 국산냉장 삼겹살 100g 2109원→1680원, 목살 100g 2007원→1728원 등으로 상승했다.식품에 많이 사용되는 계란 특란 30개 기준 소매가격은 6106원으로 1년 전 5444원 대비12% 증가했다.

◇즉석밥 등 가공식품, 가격인상 오나… 기재부 "예의주시, 후속 대책 검토"

일각에서는 주요 식량작물과 축산물의 가격 상승으로 즉석밥을 비롯해 편의점 도시락, 깁밥 등 가공식품의 가격 상승을 부추길 수 있다는 전망이 나온다. 지난 6개월간 국제 선물시장에서 밀은 38.5%, 옥수수는 20.0% 올랐다.

유통업계 관계자는 "소맥, 옥수수, 대두박, 대두 등 우리나라의 주요 곡물 수입액이 오름세를 보이고 있다는 점도 가공식품의 가격 인상 요인"이라며 "우리나라에서 해외 주요 국가에서 들여오는 곡물 수입분들은 3~6개월 이후 대금을 지급하는 구조이기 때문에, 최근의 상승분에 따른 가격인상이 올해 상반기에 집중될 가능성이 크다"고 했다.

편의점 도시락

이 같은 상황을 수치로도 입증됐다. 지난 11일 유엔식량농업기구(FAO)이 발표한 지난해 12월 세계식량가격지수는 전월(105.2)보다 2.2% 상승한 107.5를 기록했다. 식량가격지수는 지난해 5월 91.0를 기록한 이후 6월 93.1→7월 94.0→8월 95.8→9월 97.9→10월 101.2→11월 105.2 등 7개월 연속 오름세를 보였다.

식품업계의 고민도 커지고 있다. 지난해 코로나19 여파로 경제 상황이 좋지 않은 점을 고려해 가격 인상을 자제했지만, 식재료 가격 상승으로 더 이상 가격 인상을 미루기 힘든 상황이 오고 있기 때문이다.

이미 오뚜기는 지난해 9월 즉석밥 제품 3종의 가격을 평균 8% 인상했다. 앞선 지난 8월 롯데제과는 찰떡파이 가격을 평균 10.8% 올렸다. 통계청 외식비 통계에 따르면 분식점의 김밥도 지난해 11월 기준 평균가격이 2379원으로 전년 대비 4.4% 올랐다. 편의점 업계에서도 ‘도시락 인상설’이 꾸준히 나오고 있다. 또 쌀 부족으로 인해 가격이 오르면 식당가에 ‘공깃밥=1000원’이라는 공식을 깨질수 있다는 전망도 나온다.

김한호 서울대 농촌경제학과 교수는 "소득은 그대로인데 물가만 오르면, 소비자는 할 수 없이 지갑을 닫고, 가게 측면에서 느씨는 심리적 압박감은 굉장히 클 수 있다"며 "밀가루, 쌀은 가공비율이 높아, 가공식품 가격 인상 요인으로 작용할 수 있다. 최근 코로나19로 고용감소 등 취약계층이 늘어나는 상황에서 물가 인상의 부작용 체감은 더욱 커질 수 밖에 없다"고 했다.

정부도 물가 상황을 예의주시하고 있다. 쌀값과 식재료 인상이 코로나19로 어려운 시기에서, 경기를 바라보는 소비자 체감 지수를 더욱 낮출 수 있기 때문이다. 기획재정부 관계자는 "밥상 물가는 굉장히 민감한 문제이고, 쌀 가격을 지속적으로 면밀히 모니터링하고 있다"며 "지난주 정부 비축분 18만톤을 푸는 대책을 발표했는데, 이후 상황을 지켜본 뒤 추가 대책을 검토하겠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