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산 해운대구 신축 아파트인 ‘해운대롯데캐슬스타’ 단지 내 상가에는 최근 ‘OO슈퍼’, ‘XX슈퍼’ 등 알록달록한 간판의 소규모 슈퍼마켓이 여럿 들어섰다. 내부는 과자 몇 봉지와 음료 몇 개만 진열돼 텅 빈 수준이었다. 계산대도 없었다. 일부에선 "1970년대 달동네냐"는 반응이 나왔다. 지난해 9월 입주를 시작한 신축 아파트에 어울리지 않는 분위기라는 의미였다.

지난 11일 오후 부산 해운대구 해운대롯데캐슬스타 단지 내 상가에 ‘유령슈퍼’들이 들어서 있다.

12일 부동산 업계에 따르면 이런 슈퍼마켓들은 ‘담배권’을 얻기 위해 일시적으로 설치한 점포다. 담배권을 얻으면 편의점으로, 못 얻으면 세탁소 등 다른 상가로 운영하기 위해 다소 엉성한 인테리어로 일시적으로 슈퍼마켓을 꾸며놓은 것이다.

담배권이란 점포에서 담배를 팔 권리를 일컫는 말이다. 정확한 용어는 ‘담배소매인’이다. 지자체로부터 담배소매인으로 지정돼야 점포에서 담배를 팔 수 있다.

담배소매인은 신청하는 누구나 받을 수 없다. 편의점 간 과밀경쟁을 막기 위해 다른 담배소매인과 최소 50m 이상 떨어져 있어야 한다고 법(담배사업법)에 규정돼 있다. 지자체별로 이격거리 규정이 각각 다른데, 서울시와 경기도 일부 지자체는 다른 담배소매인과 최소 100m 이상 떨어져 있어야 담배소매인으로 신청할 수 있다.

예외적으로 역·공항·버스터미널·선박여객터미널 등 대중 교통시설이나 운동경기장·유원지·공원 등에는 이용인원을 고려해 한 시설물에 2개 이상 담배소매인이 지정될 수 있다.

해운대롯데캐슬스타와 같은 신축 아파트가 들어서며 여러 상가가 한꺼번에 담배소매인 지정을 신청하면 누구에게 담배권이 주어질까. 지자체는 공고를 통해 추첨으로 한 소매인에게만 배부하도록 한다. 담배권이 편의점 경영에 절대적인 항목이다보니 경쟁이 치열하기 때문에 이런 절차를 거친다.

점포만 갖고 있는 상태에서 공실로 담배권을 신청하면 될 텐데, ‘OO슈퍼’라는 간판을 내걸고 굳이 과자와 음료수를 소량이나마 채우는 이유는 지자체의 ‘적합 여부 사실조사’를 받기 위함이다. 이 조사를 거치는 점포에 한해 추첨 공급의 기회가 주어진다. 지자체는 조사에서 미개점 점포인 경우 조사가 불가능하다고 판단해 기회를 박탈한다. 그러니 엉성하게나마 간판과 물품을 채운 것이다.

해운대롯데캐슬스타뿐 아니라 이전에 공급된 신축 아파트 상가들에서도 이같은 모습은 꾸준히 나타났다. 담배권을 노려 한 상가에 여러 개의 마트가 일시적으로 줄줄이 생겼다가 연기처럼 사라지기 때문에 ‘유령마트’라고도 불린다.

지난 11일 오후 부산 해운대구 해운대롯데캐슬스타 단지 내 상가에 ‘유령슈퍼’들이 들어서 있다.

최근에는 신축 아파트 상가에서 담배권을 독점하도록 계약한 뒤 분양하는 사례도 있었다. 경기 광주시 ‘광주 초월역 한라비발디’ 단지내상가는 지하 101호(전용 53㎡)에만 담배권이 독점으로 주어졌다.

이 상가의 공급 예정가는 약 6억1400만원이었는데, 투자자가 몰리며 이보다 2억원가량 비싼 약 8억1200만원에 최근 분양됐다. 담배권이 없었던 전용 32~33㎡ 지하 102~107호는 공급 예정가보다 2000만~8000만원 비싼 4억1000만~4억7000만원대로 분양됐다. 담배권이 독점으로 주어진 상가의 인기가 훨씬 높았던 것이다.

선종필 상가뉴스레이다 대표는 "담배 자체의 판매 금액도 크지만, 담배를 사면서 함께 물건을 구매하는 사람들이 많아 편의점 입장에선 담배권을 갖고 있느냐 없느냐가 매출의 40%를 좌우한다"면서 "담배권이 있는 점포·편의점의 월세 지불능력이 좋기 때문에 당연히 담배권을 갖고 있는 상가의 매매가격도 비싸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