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광둥성의 기술 허브인 선전시가 7일 두 번째 ‘디지털 위안화(e-CNY)’ 사용 실험에 착수했다. 추첨에서 당첨된 시민 10만 명이 디지털 위안화 200위안(약 3만3800원)씩을 받았다. 총 금액은 2000만 위안(약 33억8000만 원)이다. 지난해 10월 선전시에서 이뤄진 첫 번째 실험 때보다 참여자 수와 금액이 두 배로 늘었다.

중국 정부는 2014년부터 추진한 디지털 통화를 세계 최초로 공식 출범시키기 위해 속도를 내고 있다. 중국 정부는 디지털 위안화를 세계 금융 시스템에서 미국 달러화의 영향력을 줄일 수 있는 수단으로 본다. 기축통화인 달러화 패권을 흔들고 국제 결제 시스템에서 위안화의 위상을 높이겠다는 것이다. 디지털 위안화는 국내적으론 정부가 자금 흐름에 대한 통제권을 더 강화하는 도구가 될 수도 있다.

중국 장쑤성 쑤저우의 한 백화점에 디지털 위안화로 결제할 수 있다는 안내판이 설치돼 있다.

◇ 실생활 사용 가까워지는 디지털 위안화

중국 언론 보도에 따르면, 이번 두 번째 디지털 위안화 추첨은 선전시 푸톈구 거주자를 대상으로 진행됐다. 1일부터 4일까지 온라인 플랫폼 ‘아이(i)선전’에서 진행된 참여 신청에 186만1758명이 몰렸다.

7일 오전 8시, 당첨자들은 선전 시정부로부터 디지털 위안화 전용 앱(응용 프로그램)을 내려받을 수 있는 인터넷 링크를 문자 메시지로 받았다. 당첨률은 5.37%였다.

당첨자들은 국가로부터 받은 200위안짜리 훙바오(紅包·돈봉투)를 오는 17일 자정까지 사용해야 한다. 푸톈구에서 디지털 위안화 결제 시스템을 갖춘 1만 개 이상 지정 상점에서 쓸 수 있다. 일부 중국 온라인 쇼핑몰에서도 사용할 수 있다.

앞서 지난해 10월 선전시 뤄후구에서 일반 시민을 대상으로 중국의 첫 디지털 위안화 사용 공식 테스트가 진행됐다. 추첨을 통해 5만 명에게 디지털 위안화 200위안씩을 지급하는 방식이었다. 1차 실험엔 191만3800여 명이 몰려 당첨률 2.61%를 기록했다. 뤄후구의 3389개 지정 상점에서 약 6만2000건의 결제가 이뤄졌다. 시정부가 뿌린 1000만 위안 중 실제 사용된 금액은 880만 위안이었다. 당시 시정부는 "당첨자 5만 명 중 4만7573명이 앱에서 실제로 디지털 위안화를 내려받았다"고 밝혔다.

이어 동부 장쑤성 쑤저우시가 지난해 12월 2000만 위안 규모의 디지털 화폐 실험에 나섰다. 당시 중국 전자상거래 기업 징둥(JD.com)이 온라인 플랫폼 중엔 처음으로 디지털 위안화로 결제할 수 있게 했다. 쓰촨성 청두와 수도 베이징시도 일부 지역에서 디지털 위안화 실험을 했다.

중국 정부는 일반인을 대상으로 한 공식 사용 실험에 앞서 지난해 상반기부터 일부 기업과 공무원을 대상으로 사전 테스트를 진행했다. 선전시 푸톈구는 지난해 5월 공무원에게 월급의 일부를 디지털 위안화로 지급했다. 7월엔 자선단체 활동에도 디지털 화폐를 사용했다. 중국 정부는 지난해 8월까지 식당, 교통, 쇼핑, 공과금 납부 등 디지털 위안화로 결제할 수 있는 6700건의 사용 시나리오를 구축했다고 밝혔다.

중국 온라인 쇼핑몰 징둥에서 디지털 위안화로 결제하는 화면. 화면에 ‘지불 방식: 디지털 위안화(數字人民幣)’라는 문구가 보인다.

◇ 디지털 화폐로 美 달러화 패권에 대적

디지털 위안화는 중국 중앙은행인 인민은행이 발행하는 법정화폐다. 현재 인민은행이 발행해 유통하는 위안화 지폐와 동전의 디지털 버전이다.

중국 정부가 내세운 디지털 화폐의 가장 큰 목적은 누구나 결제를 더 쉽고 안전하게 할 수 있게 하는 것이다. 판이페이 인민은행 부총재는 "중국에서 디지털 결제, 특히 모바일 결제가 급속도로 발전했지만, 결제 범위, 포용 금융, 결제 효율, 사용자 개인정보 보호 등에서 여전히 개선의 여지가 있다"고 했다.

디지털 위안화 결제가 알리페이나 위챗페이 같은 중국 모바일 결제 서비스와 다른 것은 은행 계좌가 없어도 디지털 위안화 계정(지갑)을 만들 수 있다는 것이다. 중국 민영 기업인 알리바바와 텐센트가 각각 만든 알리페이와 위챗페이 플랫폼을 사용하려면 은행 계좌를 연동시켜야 한다. 이와 달리, 디지털 위안화 계정은 은행 계좌가 필요 없으며, 휴대전화 번호 또는 신분증만으로도 개설할 수 있다. 중국 관영 신화사는 “은행 계좌가 없는 중국인이 마침내 디지털 세상을 이용할 수 있게 된다”고 했다.

디지털 위안화는 인터넷 연결 없이도 사용할 수 있다는 것도 일반 모바일 결제 서비스와의 차이점이다. 가령 인터넷 접속이 안 되는 비행기 안에서도 디지털 위안화로 결제할 수 있다.

미국의 전방위적인 중국 압박은 중국 정부가 지난해부터 디지털 위안화 상용화를 서두르는 또 다른 배경이다. 디지털 위안화가 중심이 된 국제 결제망을 구축해 현재 달러화 중심의 국제 결제 시스템에 대적하려는 것이다.

저우샤오촨(2002~2018년 재임) 전 인민은행 총재도 디지털 위안화가 달러화 지배력을 저지하기 위해 개발됐다는 의도를 공공연히 드러냈다. 그는 지난해 10월 27일 헝가리 중앙은행이 주최한 ‘유라시아 포럼’ 온라인 화상회의에서 “중국이 디지털 화폐를 만든 이유 중 하나는 달러화 통용을 막기 위해서다”라고 밝혔다. 저우 전 총재는 재임 당시 디지털 화폐 연구를 위한 조직을 별도로 설립하며 의욕을 보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