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집 마련을 아직 못한 무주택자는 벼락거지가 됐다는 박탈감에서 쉽게 헤어나오기 어려운 요즘이다. 집을 가진 사람과 아닌 사람의 자산 격차가 몇년치 근로 소득으로 메울 수 없을 만큼 커졌기 때문이다. 이런 상황에서 여러 채 집을 가진 다주택자를 고운 눈으로 바라보기도 어렵다. 하지만 이쯤에서 불편한 질문을 던져볼 필요가 있다. 다주택자는 정말 모두 적폐인걸까.

이 문제에 있어서 정부의 답은 늘 하나였다. 다주택자들이 무주택자의 내 집 마련 기회를 뺏은 것으로 봤다. 무리 지어 다니면서 10채, 20채씩 집을 쓸어담는 다주택자만 생각하면 일견 타당해보이기도 한다. 이런 맥락에서 지난 4년간 다주택자에 대한 핀셋 규제가 나왔다. 다주택자들에겐 취득세부터 보유세, 양도소득세가 모두 중과됐다. 세를 놓고 얻는 수익에도 제한을 뒀다.

그러나 우리 주변엔 어쩌다 다주택자가 된 이들도 많다. 부모 봉양으로, 직장 문제로, 아이 학교 문제로, 노후 대비를 위해. 사연은 많다. 더구나 이런 다주택자들은 그동안 시장 가격으로 임대주택을 사회에 공급하는 역할을 도맡아왔다. 좋은 값에 세를 놓으려고 자비를 들여 간단한 인테리어를 하기도 했다. 다주택자라고 임대료를 마음대로 좌지우지할 수 있었던 것도 아니다. 시장에 임대주택이 많을 땐 가격을 낮췄다. 시장에서 정해지는 가격을 받으면서 정부가 공공의 힘으로는 책임질 수 없는 부분을 다주택자가 메워온 셈이다.

특히 언제부터인지 적폐 중에 적폐로 꼽히는 등록임대사업자는 이런 면에서 더 적극적으로 임대주택을 공급하는 주체였다. 세금 혜택을 보는 대신 다주택자보다 더 많은 제약 조건을 안고 집을 빌려줬다. 전셋값이 아무리 올라도 연 5% 이상 올릴 수도 없고 세입자가 원한다면 계약을 무제한으로 갱신해줘야 했다. 중간에 수익이 나지 않는다고 마음대로 매도할 수도 없다. 집값이 너무 오른 결과로 많은 돈을 벌게 됐다는 게 이들의 죄라면 죄일 뿐이다.

다주택자를 싸잡아 규제한 결과는 우리가 보고 있는 바와 같이 참혹하다. 지난해 전셋값은 4.61% 올라 2015년(4.85%) 이후 5년 만에 최대폭을 기록했다. 다주택자들은 세금이 늘어 수익이 나지않게 되자 이를 상쇄하기 위해 전·월셋값을 적극적으로 올렸다. 전셋집이 남아 돌았으면 전월셋값을 올리지 못했겠지만 상황이 그렇지 않았다.

비과세 요건을 맞추려고 마지막까지 남겨놓고 싶은 집으로 속속 이사를 가기도 했다. 살기 좋은 지역의 집부터 채워졌다. 실거주를 한다며 멀쩡한 집을 비우는 일도 생긴다. 그들 입장에서는 합리적인 선택일 뿐이다. 상대적으로 저렴한 값에 좋은 환경을 누리고 살던 세입자들은 외곽으로 나가거나 높은 전·월세 보증금을 감당해야 하는 상황이 됐다.

그렇다고 다주택자 매물이 시장에 매물로 나오지도 않았다. 집값이 너무 오른데다 세제까지 바뀌다보니 양도소득세를 감당하느니 그대로 있는게 나아서다. 결국 다주택자를 적폐로 모는 정책은 매물을 끌어내 집값을 내리지도 못하면서 전세 시장까지 흔들어놓은 꼴이 됐다.

이쯤되면 모든 다주택자가 적폐라는 시각에 의문을 가져보는 것이 당연한 일이 아닐까. 설 연휴 직전에 나온다는 대책에는 다주택자를 적으로 보는 시선보다는 임대주택 공급의 동반자로 바라보는 시선이 담기길 바란다. 이들의 역할을 인정해주면서 시장에서 정상적인 매매 또는 임대차 거래가 행해지도록 물꼬를 터야 전세난이 해소되고 집값 안정을 기대해볼 수 있다. 무주택자들에겐 전셋값 안정, 집값 안정이 감정적으로 다주택자를 벌하는 것보다 시급한 문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