룰루레몬은 어떻게 요가복의 샤넬이 됐을까. 1998년 캐나다 출신 데니스 칩 윌슨은 체형을 잡아주는 요가복을 만들고 체험형 매장을 냈다. 매장에 요가·명상 시설을 만들고 요가복을 입어보게 했다. 디자인과 기능에 만족한 사람들은 소셜미디어(SNS)에 입소문을 냈다. 룰루레몬은 에슬레저룩(일상에서 입는 운동복)의 대명사가 됐다. 거리에서 룰루레몬을 입는 사람들도 많아졌다.

룰루레몬은 전 세계적인 브랜드로 성장했지만 현실에 안주하지 않았다. 코로나가 터지자 사람들은 더이상 외출하지 않았다. 매장에서 요가를 체험할 일도 없고 거리에서 요가복을 입고 돌아다닐 일도 없었다. 룰루레몬은 전략을 바꿨다. ‘집콕’으로 홈트레이닝 시장이 성장하는 점에 주목해 미국 홈트레이닝 스타트업 ‘미러’를 5억달러(약 6000억원)에 인수했다. 사람들은 1495달러(약 180만원)를 내고 스마트거울을 산 뒤 매달 39달러(약 4만6000원)를 내면 스마트거울에 등장하는 강사에게 운동을 배울 수 있다.

룰루레몬은 미러의 운동 장비를 매장에서 판매하는 동시에 미러의 운동 영상에 등장하는 강사에게 자사 요가복을 입혀 광고 효과를 노리고 있다. 룰루레몬의 올해 8월부터 10월까지 매출은 11억2000만달러(약 1조2200억원)로 작년 같은 기간보다 22% 늘었다. 룰루레몬은 올해 미러 판매액 1억달러(약 1100억원)를 넘기고 내년 손익분기점에 도달하는 것을 목표하고 있다.

나이키도 혁신하면 빼놓을 수 없는 브랜드다. 나이키는 10여 년 전만 해도 아디다스, 푸마 등과 경쟁했지만 지금은 확실한 1위 신발 브랜드가 됐다. 업계에서 "코로나로 다들 옷을 대충 입고 다녀도 신발만큼은 나이키를 신는다"는 이야기가 나올 정도다. 일찌감치 온라인에 주력하며 소비자를 분석하고 관련 제품을 내놓았기 때문이다.

나이키는 모바일 앱 나이키 트레이닝 클럽을 통해 홈트레이닝 시장을 공략하고 있다. 키, 몸무게, 운동 시간 등을 입력하면 개인 맞춤형 운동을 추천해준다. 5분 플랭크, 15분 뱃살 빼기 운동 등이다. 소비자 입장에서는 헬스장에 가지 않아도 본인에게 맞는 운동을 할 수 있고 나이키 입장에서는 빅데이터를 분석해 관련 제품을 판매할 수 있다. 나이키의 올해 6월부터 8월까지 순이익은 15억2000만달러(약 1조6458억원)로 작년 같은 기간보다 11% 늘었다.

나이키와 룰루레몬의 공통점은 현실에 안주하지 않고 끊임없이 혁신한다는 것이다. 국내에도 많은 의류 기업이 있지만 이들만큼 혁신한다는 이야기는 아직 듣지 못했다. 그간 국내 의류 기업은 유행에 편승해 쉽게 돈을 번다는 지적을 받아왔다.

2000년대 중반 ‘등골 브레이커’로 불린 노스페이스 패딩부터 2018년 평창 동계올림픽을 시작으로 유행한 롱패딩까지. 의류 기업은 유행하는 제품을 만들었고 소셜미디어 등에서 홍보하며 마치 안 사면 나만 뒤처지는 것 같은 사회 분위기를 만들었다. 유행의 전제 조건은 사람들이 거리로 많이 나왔다는 것이다. 학교에 가면 학생들은 노스페이스 패딩을 입고 수업을 들었고 겨울에 친구를 만나면 모두 김밥처럼 생긴 롱패딩을 입고 있었다.

문제는 코로나로 유행의 전제 조건인 외출이 줄었다는 점이다. 사람들은 더이상 학교나 직장에 가거나 친구를 만나지 않는다. 거리에서 남들을 보고 따라 살 만한 물건이 없어진 셈이다. 코로나로 불황이 찾아오자 사람들은 유행하는 제품을 사는 대신 입던 옷을 계속 입기 시작했다. 남들에게 보여주기 위한 소비에서 나를 위한 소비로 상황이 180도 바뀌었다. 끊임없이 유행을 만들며 제품을 판매하던 국내 의류 기업들이 당황할 수밖에 없는 이유다.

산업연구원에 따르면 올해 12월 국내 섬유 제조업 전문가 서베이 지수(PSI)는 85로 5월 이후 최저치를 기록했다. 100을 기준으로 200에 가까울수록 업황이 좋고 0에 가까울수록 업황이 나쁘다는 이야기다. 이제는 국내에도 룰루레몬, 나이키 같은 혁신적인 패션 기업이 나올 때가 됐다. 해외 기업도 했는데 우리 기업이라고 못할 이유가 없다. 새해에는 국내 패션 기업이 유행에 안주하던 관성에서 벗어나 부단히 연구하고 혁신하고 소비자에게 다가가며 코로나를 극복하길 기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