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명유지 필수 단백질 만들려면 DNA 속 설계도 필요
mRNA, 설계도 복사해 '단백질 공장'으로 옮기는 역할
1990년대부터 백신 연구 끝 올해 첫 상용화… "개발 빠르고 안전"

DNA 속 유전정보를 복사한 mRNA(하늘색)가 단백질 공장인 리보솜(회색 덩어리)과 결합해 새로운 단백질(검은색)을 만드는 과정을 설명한 그림.

지난 8일(현지시각) 영국에서 세계 첫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백신 접종이 이뤄졌다. 미국·캐나다·스위스 등에 이어 오는 27일에는 유럽연합(EU) 27개 회원국도 접종을 시작한다. 이들이 접종하는 백신은 글로벌 제약사 화이자·바이오앤테크나 모더나가 ‘메신저 리보핵산(mRNA·전령RNA)’을 주성분으로 만든 ‘mRNA 백신’이다.

mRNA는 데옥시리보핵산(DNA)의 ‘심부름꾼’으로 비유된다. 국내에서 mRNA 관련 연구를 수행 중인 전성훈 한국기초과학지원연구원(KBSI) 박사는 26일 "세포 핵 속에서 DNA의 유전정보를 세포 핵 밖 기관(리보솜)으로 전달하는 역할을 한다"고 설명했다. DNA의 활동을 돕는 물질로 알려져온 mRNA는 현재 코로나19 사태를 종식할 핵심 바이오 소재로 부상했다.

◇60년 전 발견… 이름처럼 DNA 유전정보 필요한 곳에 전달

학계에 따르면 신체가 생명유지 활동을 하려면 생체조직, 호르몬 등 다양한 기능을 가진 단백질을 만들어야 한다. 단백질을 만들려면 기능별로 서로 다른 ‘설계도’가 필요하다. 우리 몸에서 설계도는 DNA 속 유전정보 형태로 저장돼있다.

DNA는 아데닌(A), 티민(T), 구아닌(G), 시토신(C)이라고 부르는 네 종류의 아미노산 여러 개가 특정 순서로 배열된 구조를 이루고 있다. 아미노산들의 순서를 ‘염기서열’이라고 한다. 염기서열에 따라 서로 다른 유전정보가 담긴다. 컴퓨터가 0과 1의 배열로 디지털 정보를 저장하듯, 우리 몸도 A·G·C·T의 배열로 유전정보를 저장한다. DNA는 A·G·C·T 여러 개가 길게 연결된 가닥 2개가 서로를 중심으로 덩굴처럼 꼬인 이중나선 형태로 세포 핵 속에 존재한다.

DNA의 구조.

DNA에 저장된 설계도대로 단백질을 만드는 공장인 ‘리보솜’은 세포 핵 밖에 있다. DNA의 설계도를 리보솜까지 전달할 심부름꾼이 필요하다. 또 세포 핵 속에 보존돼야 하는 설계도 원본(DNA)을 그대로 들고 나올 수는 없으므로 복사본이 있어야 한다. mRNA는 이처럼 DNA의 유전정보를 복사하고 전달하는 역할을 한다.

우선 DNA처럼 하나의 가닥 모양으로 생긴 ‘RNA 중합요소’라는 물질이 DNA 이중나선을 풀고 그중 한 가닥과 결합한다. 이 물질은 ‘전사’라는 과정을 통해 DNA의 염기서열을 복사한다. 이 복사본이 mRNA다. mRNA는 세포 핵 밖으로 나와 리보솜과 결합, 리보솜이 설계도에 맞는 단백질을 만들도록 유도한다.

1953년 생물학자 제임스 왓슨과 프랜시스 크릭은 유전정보의 실체가 DNA 염기서열이라는 사실을 규명했지만, DNA 염기서열이 어떻게 실제 단백질 합성으로 이어지는지는 여전히 밝혀지지 않았다. 1961년 프랑스 생물학자 프랑수아 자코브, 앙드레 르보프, 자크 모노가 mRNA의 역할을 처음 밝혀냈다. 이들은 이 공로로 1965년 노벨생리의학상을 받았다.

최근 국내에서도 mRNA에 관한 연구성과가 있었다. 지난 21일 전성훈 박사 연구팀은 고세균을 초저온전자현미경으로 관찰해 mRNA가 만들어지는 전사 초기 단계를 정밀 규명하는 데 성공했다. 전 박사는 "많은 유전 질환들이 대부분 전사 과정 초기에 오류가 생겨 발병한다"며 "전사 과정을 분자 수준에서 이해함으로써 유전 질환 치료제 개발에 기여할 것"이라고 말했다.

◇항원 설계도만 몸속에 넣는 방식… 안전성·개발속도↑

mRNA를 이해하는 일은 질병 치료에 간접적으로 도움을 줄 뿐만 아니라 직접 질병을 퇴치할 수 있는 백신 개발로 이어졌다. 미국 질병통제예방센터(CDC), 매사추세츠공대(MIT) 등에 따르면 이제껏 백신은 독성을 없애거나 줄인 바이러스(항원)를 직접 몸속에 집어넣는 형태였다. 몸속에 들어간 바이러스는 몸의 면역시스템을 자극해 면역물질(항체)을 만들도록 유도한다. 바이러스를 직접 몸속에 주입하기 때문에 접종 후 오히려 감염되거나 감염 시 증상이 심해지는 부작용이 발생할 가능성도 있다. 우리나라가 먼저 도입하기로 한 아스트라제네카와 얀센의 코로나19 백신도 항원을 인체 무해한 다른 바이러스 안에 넣어 몸속에 투여하는 방식이다.

반면 mRNA 백신은 코로나19 바이러스의 일부인 스파이크 단백질만을 만들 설계도가 적힌 mRNA가 주성분이다. 몸속에 들어간 mRNA는 우리 몸이 스파이크 단백질을 만들도록 유도한다. 스파이크 단백질이 생기면 면역시스템은 바이러스 침입 시와 같은 면역반응을 보이고 항체를 만들어낸다. 이론적으로는 mRNA와 이것이 만드는 스파이크 단백질은 실제 바이러스가 아니기 때문에 기존 백신이 가진 위험성을 낮춘다.

다만 접종 후 일시적인 안면근육 마비, 발열 등의 부작용은 발생할 수 있다. 지난 23일(현지시각)에는 mRNA 백신인 화이자 백신을 접종한 미국의 한 의료인이 중증 부작용인 ‘아나필락시스’ 증세를 보였다가 안정됐다고 블룸버그통신이 전했다. 아나필락시스는 호흡곤란, 혈압 감소, 쇼크 등이 급격하게 나타나는 증상이다. 뉴욕 보건당국은 "부작용 사례에 대한 후속 조치를 취하고 있다"며 "이런 중증 부작용은 흔하지 않고 백신은 전반적으로 매우 안전하다"고 주장했다.

화이자가 개발한 코로나19 백신.

◇변종 코로나 바이러스에 빠르게 대응할 수 있는 구조

mRNA 백신은 최근 영국 등에서 퍼지고 있는 변이 바이러스에도 빠르게 대응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받고 있다. 실제 바이러스의 스파이크 단백질이 아니라 그보다 간단한 설계도만 새로 만들면 되기 때문이다. 화이자 백신을 공동 개발한 독일 바이오앤테크 측은 지난 22일(현지시각) 현재 언론을 통해 "mRNA 기술의 장점은 이 새로운 돌연변이를 완전히 반영한 백신을 직접 개발해 기술적으로 6주 이내에 (변이에 대응할) 새로운 백신을 제공할 수 있다"고 했다.

비슷한 이유로 백신 개발도 기존 백신보다 빠르게 이뤄졌다는 평가다. 지난 11일(현지시각) MIT 뉴스는 "기존 백신이 개발에 12~18개월이 걸리는 데 반해 화이자와 모더나 백신은 10개월만에 개발해 긴급사용 신청을 했다"고 설명했다.

mRNA를 가둔 나노 지질입자(왼쪽)가 몸속 단백질과 결합해(가운데) 바이러스 항원(오른쪽)을 만드는 과정.

mRNA 백신 개발은 1990년대부터 생쥐 실험을 통해 가능성이 확인됐지만, mRNA가 외부 환경에 의해 쉽게 변형돼 상용화가 어려웠다. 2000년대 들어서야 미국 펜실베이니아대 연구팀이 지질(지방질)로 된 나노입자를 캡슐처럼 만들어 mRNA를 보호하는 데 성공했다. 2018년 미국 식품의약국(FDA)은 유전질환 치료에 쓰이는 약물 성분인 siRNA라는 물질의 전달체로서 지질 나노입자 사용을 승인했다.

이 기술을 적용한 화이자와 모더나의 코로나19 백신은 사상 처음으로 상용화된 mRNA 백신이 됐다. 다만 기존 백신에 비해 여전히 외부 환경에 취약해 화이자 백신의 경우 섭씨 영하 70도, 모더나 백신의 경우 섭씨 영하 20도의 저온 환경에서 보관·유통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