폴크스바겐은 최근 자동차용 반도체 수급이 원활하지 않아 내년 1분기 중국과 북미, 유럽 자동차 생산을 감축하기로 했다고 밝혔다. 올해 초 전 세계적인 코로나 확산 이후 급감했던 글로벌 자동차 수요가 예상보다 빠르게 회복했지만, 반도체 공급이 이를 따라가지 못하면서 병목이 발생한 것이다. 폴크스바겐에 부품을 공급하는 글로벌 자동차 부품 제조업체 보쉬와 컨티넨탈 역시 반도체 공급이 부족하다고 언급하면서 이런 상황은 내년까지 이어질 수 있다고 했다.

글로벌 자동차 업계에 반도체 공급 대란 조짐이 나타나고 있다. 가장 먼저 타격을 받은 곳은 중국이다. 자동차용 반도체 수요의 90%를 수입에 의존하고 있는 중국 자동차 업체들은 독일 인피니온테크놀로지, 네덜란드 NXP반도체, 미국 마이크론테크놀러지, 일본 르네사스일렉트로닉스 등 해외 IT 업체에서 물량을 공급받는데, 이달 초부터 공급 부족에 따른 생산 차질을 겪고 있다.

독일 츠비카우에 있는 폴크스바겐 공장에서 한 직원이 ID.3를 조립하는 모습.

자동차 업체들이 생산 조정에 나서야 할 만큼 반도체 물량이 부족한 결정적인 이유는 코로나 확산이다. 올해 초, 코로나 사태 여파로 세계 자동차 수요가 감소하자 글로벌 반도체 업체들은 자동차용 제품 생산을 줄이는 대신 소비가 늘어난 가전제품용 제품 생산을 확대했다. 그런데 예상보다 자동차 수요가 빠르게 회복되면서 자동차용 반도체 공급 능력이 수요를 따라가지 못하게 됐다.

실제로 반도체 공급 부족에 가장 큰 타격을 받고 있는 중국의 경우, 올해 3월까지 자동차 판매량이 감소세를 보였지만, 4월부터는 8개월 연속 증가하면서 1~11월 누적 판매량은 2247만대를 기록했다. 코로나 사태가 터지기 이전인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3% 줄어드는 데 그쳤는데, 연간으로는 지난해와 같은 수준일 것으로 전망된다.

그런데 자동차용 반도체 공급 대란의 더 근본적인 원인은 전기차, 자율주행차 등 미래 모빌리티의 등장에 있다. 지난 20년 동안 자동차는 더 많은 소프트웨어에 따라 구동됨으로써 가장 큰 반도체 소비재 중 하나가 됐다. 엔진과 브레이크, 배기가스, 창문 열림 등을 제어하는 것뿐 아니라 첨단운전자지원시스템(ADAS), 차량용인포테인먼트(IVI), 자율주행 기술이 도입되면서 초고속 컴퓨팅 처리 능력은 자동차 산업의 필수 요건이 됐다.

중국 상하이에서 열린 한 전시회에서 자동차용 반도체 제품을 전시한 NXP반도체.

이에 따라 차량 내 탑재되는 자동차용 전자제어장치(ECU) 수가 늘었고, 자동차용 반도체 수요가 폭발적으로 늘었다. 최고급 사양의 자동차 한 대에는 ECU 100개가 탑재되는 것으로 알려졌다. 실제로 외신에 따르면 이번에 생산 조정을 발표한 폴크스바겐이 조달에 가장 어려움을 겪는 제품은 ECU용 반도체인 것으로 알려졌다.

이 때문에 업계에서는 제너럴모터스(GM)나 도요타 등 다른 자동차 업체들도 조만간 반도체 공급 부족 사태에 직면할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GM 측은 "글로벌 자동차 산업의 회복세가 이어지면서 반도체 수요도 증가하고 있다"며 "우리는 공급망과 긴밀히 협력해 적절한 공급을 보장하고 생산에 대한 영향을 완화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고 밝혔다.

닛산, 다임러, 현대차그룹 역시 생산을 안정적으로 유지하기 위해 노력 중이다. 현대차는 "모든 자동차 OEM(주문자상표부착방식)이 제품 생산에 필요한 일부 반도체의 잠재적인 공급 중단이라는 동일한 문제에 직면하고 있다는 사실을 인식하고 있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