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택시장의 열기가 곳곳으로 퍼지면서 수도권 한 동짜리 아파트의 무순위 청약에까지 수요가 몰리는 상황이 됐다. 몇 개월씩 미분양으로 남던 중소 건설사의 아파트도 최근에는 무순위 청약 경쟁률이 수십대 일로 치솟았다.

27일 부동산업계에 따르면 서울이나 서울 인접 지역에 들어서는 대형 건설사 브랜드 아파트가 아니면 무순위 청약이라도 큰 인기를 끌지 못하던 분양시장 분위기가 최근 180도 달라졌다.

한국부동산원(옛 한국감정원) 청약홈에 따르면 지난 22일 당첨자를 발표한 경기도 안양시 ‘안양 광신프로그레스 리버뷰’의 무순위 청약 경쟁률은 전용면적에 따라 30대 1에서 61.4대 1로 집계됐다. 약 1870명이 신청했다. 안양동 190-6번지 일대 동성2차아파트를 재건축한 이 단지는 전용면적 51~84㎡형으로 구성된 39가구짜리 미니 아파트다.

무순위 청약은 일반분양을 진행한 후 남은 물량이나 당첨자가 계약을 포기한 가구를 추첨으로 분양하는 것이다. 청약통장 유무나 청약가점, 주택 소유 여부에 관계 없이 만 19세 이상이면 누구나 청약할 수 있다. 이 때문에 ‘(분양권을) 줍고 또 줍는다’는 뜻에서 ‘줍줍’으로도 불린다.

앞서 진행된 부천시 ‘부천 소사 현진에버빌’의 무순위 청약도 흥행했다. 소사본동 212-1번지 일대에 조성되는 이 아파트는 전용면적 59~102㎡형, 전체 108가구짜리 단지다. 약 2000명이 무순위 청약을 신청한 가운데, 전용면적이 가장 넓은 102형㎡의 경쟁률이 78.5대 1로 가장 높았다.

대형 건설사의 브랜드 아파트나 대단지가 아닌 소규모 아파트의 무순위 청약에 신청자가 수천명씩 몰리는 것은 이례적이다. 지난해 무순위 청약을 진행한 서울 동대문구 ‘답십리 엘림퍼스트’나 올해 8월 무순위 청약을 받은 평택시 ‘이안 평택 안중역 아파트’만 해도 일부 면적형은 미달이 됐었다.

그동안 무순위 청약에 수천, 수만명이 몰리는 것은 서울과 몇몇 투기과열지역의 이야기였다. 올 상반기 서울 성동구 ‘아크로 서울 포레스트’ 3가구 무순위 청약에는 26만4625명이 몰렸고, 마찬가지로 3가구가 나온 수원 ‘영통 자이’ 무순위 청약에는 10만1590명이 신청했다. 전국에서 투자 수요가 몰리는 세종시의 경우 최근 무순위 청약을 진행한 ‘세종 리더스포레 나릿재마을 2단지’ 1가구에 24만9000명이 뛰어들었다.

일반분양의 청약 경쟁률이 한 자리수로 떨어졌던 지역의 분양시장도 되살아나는 분위기다. 6·17 대책에 따라 조정대상지역으로 지정된 직후 평택에서 분양한 대단지 아파트인 ‘e편한세상 지제역’은 해당지역 거주자 1순위 청약이 미달된 것은 물론, 2순위 청약까지 받았다.

넉 달 만에 평택 분양시장의 분위기도 반전됐다. 이달 초 무순위 청약을 받은 평택시 ‘평택 동문 굿모닝힐 맘시티 2차’의 전용면적 84㎡형의 경쟁률은 75.5대 1에 달했다. 신촌지구 3블록에 지어지는 723가구짜리 단지다. 최근 김포, 파주까지 조정대상지역으로 지정되면서 그야말로 수도권 전 지역이 규제지역으로 묶이자, 중도금 대출 등을 받을 수 있는 분양 아파트의 가치가 뛴 것이다.

부동산 전문가들이 한 목소리로 지적하는 문제는 정부가 분양가를 억누르면서 주택 분양시장이 로또화(化)됐다는 것이다. 주택도시보증공사(HUG)의 분양보증을 받으려면 인근에 최근 분양한 단지보다 가격을 높게 산정하기 어렵다. 분양가가 주변 시세보다 최소 20~30% 싸다. 무순위 청약은 일반청약과 시차가 수개월 나는 경우도 많은데, 최근 수도권 집값이 꾸준히 오르면서 분양가와 주변 시세의 차이가 더 벌어진 경우도 많다.

청약통장 보유 여부만으로는 당첨될 가능성이 낮은 청약제도의 문제도 무순위 청약의 인기에 반영됐다. 청약홈 집계에 따르면 11월 말 기준으로 청약통장 가입자 수는 2700만명을 넘어섰다. 전체 가입자의 55%인 1495만명이 1순위 청약 자격을 갖췄다. 그러다 보니 웬만한 점수로는 일반 분양에서 당첨되기가 쉽지가 않다. 반면 무순위 청약은 추첨으로 당첨자를 가리기 때문에 연령, 가족 수 등 청약가점에서 밀리는 소위 ‘청포자(청약포기자)’들이 여기에 몰리는 것이다.

박합수 KB국민은행 수석부동산전문위원은 "서울 뿐만 아니라 경기도까지 아파트 공급 부족에 따른 전세난 등 주택 수급 불균형이 나타나면서 미분양 물량이 거의 소진됐다"면서 "실수요자들이 저렴한 가격으로 분양받을 수 있는 작은 아파트 단지나 나홀로 아파트의 무순위 청약까지 접근하고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