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석헌 금융감독원장이 신종 코로나 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장기화로 경기 침체가 길어지는 ‘L자형’을 보일 경우, 금융지주를 포함해 일부 금융사의 자본 여력이 바닥날 수 있다며 ‘배당 자제’를 재차 강조했다. 또 최근 가계부채가 급격히 증가하고 있는 만큼 금융당국의 개입은 과도하다고 생각하지 않지만, 기업과 자영업자 등의 자본공급은 지속돼야 한다는 지적은 가계부채 관리 정책에 반영하겠다는 방침을 밝혔다.

윤 원장은 23일 오후 온라인으로 진행된 출입기자단 송년간담회에서 "코로나19 장기화 등으로 인해 내년 3월로 예정된 만기연장, 원리금 유예가 이연된다 해도 영원히 이연될 수 있는 것은 아니다"라며 "어느 시점 가서는 수순을 밟아야 하는 만큼, 미리 준비해야 한다"고 말했다.

윤석헌 금융감독원장이 23일 온라인으로 개최된 금감원 출입기자단 송년 간담회에서 질문에 답하고 있다.

금감원은 최근 각 금융사를 대상으로 스트레스 테스트를 실시했다. 윤 원장에 따르면, 단기간에 경기 회복이 가능한 ‘U자형’과 경기 침체가 장기화되는 ‘L자형’ 등 두 가지 시나리오를 대입했다. 윤 원장은 "두 시나리오에 적절한 수치를 넣은 결과, U자형의 경우 대부분의 금융권 회사들이 자본금 테스트를 통과했지만, L자형의 경우 일부 금융지주를 포함해 통과하지 못한 금융회사가 있다"며 "이런 부분에 대해 조금씩 경각심을 높이고 필요한 준비를 해나가야 한다"고 말했다.

윤 원장은 대비 방법으로 대손충당금 축적과 배당·자사주 매입 자제 등 두가지를 거론했다. 그는 "예상 손실에 대비해 대손충당금을 쌓았는데, 손실이 (예상보다) 커졌다면 자본금으로 그 차이를 메워야 한다"며 "그래서 자본 여력이 있어야 하고, 배당을 전과 같이 하긴 어렵다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배당 자제는 결국 기업의 미래를 위한 조치라는 주장도 내놨다. 윤 원장은 "주주 입장에서 주식의 가치는 주식과 배당을 합친 건데, 이 가치를 배당으로 받을 수도 있고, 주식 가치로 가지고 있을 수도 있는 것"이라며 "만약 기업이 배당으로 가치를 지급한다면 내년 코로나19 상태가 악화될 경우 자본금 여력을 사용할 수 없게 된다. 즉 배당은 코로나19 상황에선 금융사 기업가치의 하락 요인"이라고 말했다.

배당 자제 기준이 모호하다는 지적에 대해선 "금융사들과 조율 중인 만큼 아직 정확히 숫자를 제시하긴 어렵지만, 순이익의 15~25% 사이일 것이라고 들었고, 이 범위 내에서 조율이 이뤄질 것으로 본다"고 말했다.

가계부채 증가세를 억제하기 위해 최근 금융당국이 은행권에 관리 목표를 요구하는 등 개입이 과도하다는 지적에 대해선 "가계부채 수준이 높다는 데 비춰보면 현재까지 관리가 과도하다고 생각하지는 않는다"고 선을 그었다. 윤 원장에 따르면 한국 가계부채는 국내총생산(GDP) 대비 비율이 (주요국 중) 8~10위 정도로 높은 수준을 보이고 있다.

그는 "수년 전부터 가계부채가 높지 않냐는 우려가 많았던데다, 최근 BIS에서도 우리나라 민간부문 부채 위험 정도를 주의에서 경고로 상향하면서 긴장도가 높아졌다"며 "그간 (가계부채) 총량 관리를 나름 해오고 있었는데, 당분간 총량관리를 유지해야 하지 않을까 생각한다"고 말했다.

앞으로 가계부채 관리는 총부채원리금상환비율(DSR) 규제를 활용해 상환능력 위주로 전환한다는 방침을 밝혔다. 윤 원장은 "번 만큼을 토대로, 갚을 수 있는 범위 내에서 빌려쓰자는 것이고, 대부분 선진국에서 택하고 있는 방식"이라며 "다만 DSR 규제를 도입할 경우 또다른 부작용을 일으킬 수 있다는 지적도 잘 알고 있는 만큼, 조화롭게 고려해 관리 방향을 끌고나가야 한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외환파생상품 키코(KIKO) 보상과 관련해 윤 원장은 "DLF 사태 등으로 우리는 소비자가 은행에서 복잡한 금융상품을 잘 이해하지 못한 상태에서 사서 큰 피해를 볼 수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며 "(키코는) 10여년 전 기업들이 비슷한 문제를 겪은 것이고, 따지고 보면 기업도 은행 고객"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경우에 따라선 파생상품을 잘 아는 기업이 있을 수도 있다"면서도 "은행이 전문가로서 그런 (위험한) 상품을 팔았는데, 그 상품에 가입한 기업이 망했다. 개인적으로는 은행이 기업들에게 미안해해야 하는 것 아닌가 생각이 든다"고 말했다.

최근 우리은행을 비롯해 씨티은행, 신한은행이 보상을 결정한 데 대해 "고객과 분쟁을 매듭지으려 노력하시는 부분에 대해 금감원장으로서 고맙게 생각한다"며 "(씨티, 신한 등) 두 은행 이외 추가적 한 은행도 (보상안을) 말씀주신 상황이며, 긍정적 결과가 도출되기를 기대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