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미국과 중국의 격한 갈등 속에 중국 기업들이 홍콩 자본시장으로 몰려갔다. 홍콩증권거래소는 미국 나스닥 거래소에 이어 세계 2위 규모 기업공개(IPO) 시장으로 올라섰다.

미국 증시에 상장된 중국 기업들이 미국의 규제 강화를 피해 홍콩 증시에서 2차 상장한 영향이 컸다. 조 바이든 차기 미 대통령 시대에도 반중(反中) 정책 기조가 계속될 것으로 예상되기 때문에 중국 기업의 홍콩행은 내년에도 이어질 것이란 전망이 나온다.

컨설팅 기업 딜로이트차이나는 16일 낸 보고서에서 올해 홍콩증권거래소에서 이뤄진 IPO와 2차 상장 총액이 512억 달러(약 56조3000억 원)로 집계됐다고 밝혔다.

이 중 98%가 중국 본토 기업의 IPO 또는 2차 상장이었다. 지난해 중국 본토 기업이 차지한 비율(74%)보다 큰 폭으로 높아졌다.

보고서에 따르면, 올들어 연말까지 홍콩 증시에 상장하는 기업은 145개다. 기업 수 기준, 중국 본토 기업 비율이 74%다

미국 나스닥에 상장된 중국 전자상거래 기업 징둥이 6월 18일 홍콩증권거래소에서 2차 상장을 했다.

앞서 10일 또 다른 컨설팅 기업 KPMG도 올해 기업들이 홍콩 증시 상장을 통해 조달한 자금이 2011년 이후 최대 규모라는 내용의 보고서를 냈다. 보고서에 따르면, 연말까지 140개 기업이 홍콩증권거래소에 상장해 500억 달러를 조달할 것으로 추산된다. 2019년 대비 24% 증가한 액수다.

KPMG는 올해 홍콩 증시에서 기업의 자금 조달 활동이 활발했던 원인 중 하나로 미국에 상장된 중국 기업의 ‘홈커밍(집으로 돌아옴)’을 꼽았다. 올해 홍콩증권거래소에서 조달된 자금의 약 34%가 중국 기업의 2차 상장을 통해서였다. 중국 전자상거래 기업 징둥과 게임 회사 넷이즈 등이 홍콩 증시에 2차 상장해 자금을 추가 조달했다.

홍콩은 상반기에만 해도 지난해부터 이어진 반중 시위와 홍콩 국가보안법 제정을 둘러싼 미·중 대립 여파로 자금 이탈에 시달렸다. 홍콩 금융시장에서 투자금을 굴리던 헤지펀드 등이 홍콩에서 자금을 대거 빼는 ‘홍콩 엑소더스(탈출)’가 일어난 것이다. 흔들리던 홍콩 자본시장을 일으켜 세운 것이 중국 기업들이다. 도널드 트럼프 미 행정부뿐 아니라 의회도 중국 기업을 배척하는 움직임을 보이면서, 중국 기업들이 홍콩으로 눈을 돌린 것이다.

내년에도 홍콩 증시에서는 중국 기업의 대형 IPO가 잇따를 것으로 예고됐다. 영상 공유 플랫폼 틱톡을 운영하는 중국 바이트댄스와 경쟁사 콰이서우 등이 내년 홍콩 증시 상장을 준비 중이다. ‘중국판 넷플릭스’로 불리는 영상 스트리밍 플랫폼 아이치이도 내년 홍콩에서 2차 상장을 할 것으로 전해졌다.

올해 전 세계에서 IPO 규모가 가장 컸던 증권거래소는 뉴욕 나스닥이다. 빈방 공유 플랫폼 에어비앤비를 포함해 175개 기업이 나스닥에 상장해 523억 달러를 조달한 것으로 집계됐다. 홍콩증권거래소는 중국 전자상거래 기업 알리바바 산하 핀테크 회사 앤트그룹의 홍콩·상하이 동시 상장이 지난달 돌연 중단되면서, 올해 세계 최대 IPO 시장 자리를 놓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