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융사는 금융인증서, 민간·공공기관은 빅테크 인증서 우세

공인인증서 시대가 21년만에 막을 내리고 여러 종류의 민간인증서가 도입된 가운데, 인증서 시장의 경쟁 구도가 금융결제원을 중심으로 한 은행권과 카카오페이·토스·네이버 등의 빅테크간 2파전으로 나뉘는 양상이다. 현재 금융 업무에선 금결원·은행권이 공동 개발한 금융인증서가 주도권을 쥐고 있고, 빅테크 인증서는 민간·공공기관 영역에서 활용도가 높다는 특징을 보인다.

18일 금융권에 따르면, 대표적인 민간인증서인 카카오페이와 토스 인증서를 도입한 국내 시중은행은 SC제일은행이 유일한 것으로 나타났다. 현재 SC제일은행의 로그인 화면을 보면 ▲공동인증서(옛 공인인증서) ▲금융인증서(금결원) ▲토스인증서 ▲카카오페이인증서 ▲뱅크사인(금결원) 등으로 다양한 방식이 마련돼 있다.

일러스트=정다운

하지만 SC제일은행을 제외한 나머지 은행의 로그인 화면에선 빅테크 인증서를 찾아볼 수 없다. 은행이 인증 사업자와 계약을 맺어야만 외부 인증서를 계좌 개설이나 상품 가입, 계약서·약관 전자 서명 등에 활용할 수 있는데, 업계에선 도입을 꺼리는 분위기다. 한 은행권 관계자는 "외부 인증서 결함으로 사고가 나면 은행이 책임을 져야 하는 위험이 있어 아직은 도입 결정을 유보하고 있다"며 "인증서 활용을 통해 빅테크 쪽으로 고객이 이탈하는 것을 우려하는 분위기도 있다"고 했다.

은행들은 금결원의 금융인증서를 내세우며 고객들을 유치하는 모양새다. 금융인증서는 금결원과 은행이 공동으로 개발했다. 현재 금결원 인증서를 사용할 수 있는 은행은 14곳이며, 연내 IBK기업은행·NH농협은행·중국공상·케이뱅크·산림조합중앙회 등에 도입을 완료할 예정이다. 시중 은행들은 금융인증서를 발급하면 상품을 증정하는 이벤트를 실시하면서 고객 유치에 힘쓰고 있다. 금결원 관계자는 "금융인증서가 도입된 지 일주일여가 흘렀는데 구체적인 수치를 공개할 수는 없지만, 발급자 수가 빠르게 늘고 있는 분위기"라고 했다.

은행을 제외한 증권사·보험사 등 여타 금융기관에서도 빅테크 인증서의 활용도는 아직 저조하다. 네이버인증서는 현재 흥국생명·KB증권·현대해상·교보라이프플래닛생명·한화손해보험·금결원·미래에셋·메리츠화재·DB손해보험·삼성화재 등 10곳, 토스인증서는 SC제일은행·수협·삼성화재·KB생명·하나손해보험·캐롯손해보험 등 6곳, 카카오페이인증서는 NH투자증권·KB증권·삼성화재·삼성생명·SC제일은행·BNK캐피탈·오렌지라이프생명보험·AXA손해보험·현대해상·수협 등과 제휴를 맺고 있다. 반면 금결원 금융인증서는 이미 도입 완료한 은행의 계열사를 중심으로 카드사·증권사·보험사 등 대부분의 비은행 금융사 도입을 내년 1월 중 마무리할 계획이다. 금융 업무를 자유롭게 이용하려면 현재로선 금결원 금융인증서를 쓰는 것이 유리한 상황이다.

빅테크가 선보인 인증서는 금융기관을 제외한 민간·공공기관 부문을 선점했다. 2000만건 발급을 기록하고 있는 카카오페이인증서는 사용 기관이 200곳 이상으로 가장 많다. 네이버인증서는 총 55곳과 제휴를 맺고 있다. 토스는 인증서 발급 건수가 2300만건으로 가장 많은데 사용처를 20여곳으로 늘리는 중이다.

금결원 인증서는 현재 홈택스 외에는 민간·공공기관에서 활용할 수 있는 곳이 없다. KB모바일인증서와 하나원큐인증 등 시중은행도 자체 인증서를 개발해 속속 내놓고 있지만, 대부분 자사 앱 내에서만 활용이 가능해 범용성이 떨어진다는 지적이 나온다.

분야에 따라 은행권과 빅테크 인증서의 활용도가 극명하게 갈리면서 소비자들은 오히려 더 혼란스럽다는 반응이다. 직장인 정모(28)씨는 "인증서는 많아졌다는데 도대체 어느 곳에서 쓸 수 있다는 건지 모르겠다"며 "편리해지기는커녕 더 복잡하고 혼란스러워서 기존에 쓰던 공인인증서(현 공동인증서)만 그대로 쓰고 있다"고 말했다.

인증 사업자들은 아직 도입 초기인 만큼 범용성을 높이기 위해 이용 가능한 기관을 더욱 늘려가겠다는 방침이다. 토스 관계자는 "토스는 특히 금융 앱인 만큼 금융사에 집중해 도입·제휴 기관을 늘려갈 예정"이라며 "공공기관과 금융기관 그 중에서도 최고 보안 수준의 은행에 집중하고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