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국이 유럽연합(EU)와 합의 없이 EU를 탈퇴하는 ‘노딜 브렉시트’가 현실화될 경우 군함을 출동시켜 EU 어선들의 영국 해역 진입을 막겠다고 선언했다. 이에 따라 EU와 미래에 어떤 관계로 지낼지 합의하지 못하고 헤어질 경우 실력 행사를 하겠다는 경고를 보낸 것이다. 양측이 파국으로 치달을 수 있다는 긴장감이 커지고 있다.

보리스 존슨(왼쪽) 영국 총리와 우슐라 폰데어라이엔 EU 집행위원회 의장.

가디언과 데일리메일, 선데이타임스 등 영국 주요 매체들은 노딜 브렉시트가 현실화할 경우 영국 해군이 다음 달 1일부터 80m 길이 초계함 4척을 동원해 외국 어선이 영국의 배타적경제수역(EEZ)에 접근하지 못하도록 막을 예정이라고 11일(현지 시각) 전했다.

주된 타깃은 프랑스 어선이지만, 벨기에·네덜란드 등의 어선들도 단속 대상이 된다. 어선을 상대로 가능하면 무력을 사용하지는 않는다는 입장이지만 선원을 체포하거나 어선을 나포할 가능성을 배제하지 않고 있다. 경우에 따라 물리적 충돌이 벌어질 수도 있는 것이다.

글로벌 투자은행과 도박 업체들은 최근 노딜이 벌어질 확률을 50~60% 선으로 보고 있다. 선데이타임스는 영국의 대형 수퍼마켓들이 노딜에 대비하라는 정부 지시를 받아 식료품을 중심으로 재고 확보에 들어갔다고 보도했다. 영국 보건부는 의약품·백신·의료기기 업체에 6주치 재고를 비축해두라고 했다.

EU와 영국은 어업권이 ‘바다 주권’을 상징한다는 점에서 물러서지 않고 있다. 영국은 그동안 ‘EU 공동 어업 정책’에 따라 영국 EEZ 내에서도 일정량의 어획 쿼터를 배분받았고, 프랑스·벨기에 등 EU 국가 어선들이 영국 EEZ에 들어가 각국 쿼터별로 조업할 수 있었다.

하지만 영국은 브렉시트 이후 어획 쿼터를 대폭 늘려주지 않으면 자국 EEZ 안에 EU 어선들이 아예 못 들어오도록 막겠다고 벼르고 있다. 이에 맞서 EU는 영국이 EEZ를 통제하면 영국이 수산물을 유럽 본토에 수출하지 못하도록 막겠다며 물러서지 않고 있다.

어업권 협상이 난항을 겪는 것에서 볼 수 있듯 양측은 결별 조건을 놓고 입장 차이를 좁히지 못하고 있다.

영국은 올해 1월 31일 법적으로는 EU에서 탈퇴했다. 하지만 무역·여행 등을 둘러싼 조건은 연말까지 예전 관계를 그대로 유지하는 전환 기간을 두고 그사이에 미래 관계를 정하는 협상을 하기로 했다. 11개월의 전환 기간이 끝나는 시점이 보름 남짓밖에 안 남았는데도 합의점을 못 찾고 있는 것. 이혼 도장을 찍어둔 상태에서 당분간 동거하면서 헤어질 조건을 정하기로 했지만 합의를 하지 못해 파국이 코앞에 와 있는 셈이다.

어업권 외에 상품 경쟁 조건, 법률 분쟁 해결 방법도 주요 협상 난제로 꼽힌다. 브렉시트 이후 영국은 환경을 비롯한 갖가지 규제 수위를 낮추고 기술 산업에 보조금을 지급할 계획이다. 따라서 영국산 물품은 제조 원가가 낮아져 EU산 물품보다 가격 경쟁력을 갖추게 된다. 단일 시장을 지키는 것이 중요한 EU는 영국에 보조금 지급 중지 등을 요구하고 있다. 양측 간 법률 분쟁이 붙을 경우 EU는 EU 사법재판소의 결정을 우선해야 한다고 주장하지만 영국은 받아들일 수 없다는 입장이다.

EU와 영국은 지난 9일 협상 마감 시한을 13일로 정했다. 하지만 막상 13일이 되자 보리스 존슨 영국 총리와 우르줄라 폰데어라이엔 EU 집행위원장은 전화 통화를 하고 공동 성명을 통해 “협상을 이어가기로 했다”고 밝혔다. 두 사람은 “데드라인이 지났지만 지금은 (노딜을 막기 위해) 한층 더 노력해야 한다”고 말했다. 시한을 얼마나 연장할지는 구체적으로 밝히지 않았다. BBC는 “대화를 계속하기로 한 이상 타결은 불가능하지 않다”고 했다. 이달 안에 협상이 마무리 안 되면 전환 기간을 연장해서 추가 협상을 하는 선택을 할 가능성도 거론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