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發 불황에 전략 잘 짜는 컨설턴트 대접
온라인 대응·체질개선으로 새 먹거리 발굴

유통 기업이 보스턴컨설팅그룹(BCG), 베인앤컴퍼니, 맥킨지 등 컨설턴트 출신을 대표·임원에 발탁하고 있다. 유통은 현장 경험이 많아야 일을 잘한다는 인식에 순혈주의가 강한 곳이다. 그러나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으로 실적이 부진하자 ‘전략가’ 컨설턴트를 요직에 앉히고 있다. 중장기 사업 계획을 짜고 새 먹거리를 발굴하기 위해서다.

왼쪽부터 강희석 이마트·쓱닷컴 대표, 강성현 롯데마트 대표.

13일 롯데는 최근 보스턴컨설팅그룹(BCG) 출신 강성현(50) 롯데마트 대표를 선임했다. 연세대 경영학과와 프랑스 HEC 그랑제꼴 경영학 대학원을 거친 그는 BCG에서 유통·소비재 프로젝트를 맡았다. 2009년 롯데미래전략연구소에 합류해 2012년 롭스 사업부 설립을 주도했다. 롭스 대표로 근무하며 매장을 96개까지 늘리는 등 H&B(헬스앤뷰티) 시장에서 사업을 성공적으로 안착시켰다는 평가를 받는다.

강 대표는 2018년 롯데네슬레코리아 대표로 자리를 옮겼다. 롯데네슬레는 2011년 적자 전환한 뒤 2018년 매출 2416억원, 영업손실 42억원을 기록하고 있었다. 강 대표는 네슬레를 프리미엄 브랜드로 바꾸고 마케팅에 빅데이터를 접목해 디지털 혁신과 비용 절감에 나섰고, 이듬해 롯데네슬레 영업이익은 35억원으로 흑자 전환했다. 재계에선 강 대표가 롭스와 롯데네슬레에서 능력을 인정받아 신동빈 롯데 회장의 신임을 얻었다는 이야기가 나온다. 강 대표는 롯데마트 체질 개선에 주력할 것으로 보인다.

롯데쇼핑 HQ(헤드쿼터) 기획전략본부장으로 영입된 정경운(48) 상무도 BCG 출신이다. HQ 기획전략본부는 롯데쇼핑의 백화점·마트·슈퍼·이커머스·롭스 5개 사업부의 전략을 총괄하는 곳으로, 이 자리에 외부 인사가 영입된 것은 창사 이후 처음이다. 서울대 경제학과와 서울대 국제협력대학원을 졸업한 그는 신영증권 기획실을 거쳐 2001년부터 BCG에서 기업 전략 컨설팅을 맡았다. 2017년 동아ST 경영기획실장·개발기획실장을 지냈다. 그는 이커머스(전자상거래) 전략 수립과 신사업 개발, 쇼핑 사업 구조 조정에 나설 계획이다.

롯데는 이번 인사에서 "젊고 혁신적인 CEO를 전진 배치해 위기를 정면 돌파하겠다"며 "철저한 성과주의로 혁신을 가속화하겠다"고 했다. 재계 관계자는 "벼랑 끝에 몰린 롯데가 외부 브레인을 수혈해 살아남겠다는 의지를 표명한 것"이라고 평했다.

이마트·쓱닷컴을 총괄하는 강희석(51) 대표는 베인앤컴퍼니 출신으로 지난해 이마트에 합류했다. 그는 이마트 점포 30%를 리뉴얼하고 신선식품을 강화하는 그로서리(grocery) 혁신을 이끌었다는 평을 받는다. 이마트의 올해 3분기 매출과 영업이익은 각각 5조9077억원, 1512억원으로 작년 같은 기간보다 16.7%, 30.1%씩 늘었다. 강 대표는 이마트와 쓱닷컴을 연계해 온라인으로 언제 어디서든 이마트 제품을 구매하게 만들 계획이다.

이를 위해 최근 동료였던 베인앤컴퍼니 출신 최영준(51) 쓱닷컴 CSO(최고전략책임자)를 영입했다. 서울대 경영학과를 나온 그는 티몬 CFO(최고재무책임자)로 일하며 올해 3월 사상 첫 월간 흑자 1억6000만원을 달성했다. 쓱닷컴의 올해 3분기까지 누적 매출과 영업손실은 약 2조8290억원, 365억원이다. 그는 강 대표를 보좌해 옴니채널 구축에 힘쓸 계획이다.

왼쪽부터 박솔잎 GS홈쇼핑 경영전략본부장, 김슬아 마켓컬리 대표.

최근 GS홈쇼핑에 영입된 박솔잎(49) GS홈쇼핑 경영전략본부장(전무)도 베인앤컴퍼니 출신이다. 서울대 제어계측공학 학·석사와 펜실베니아대 경영대학원 석사를 졸업했다. 1997년 삼성전자를 시작으로 2001년부터 베인앤컴퍼니에서 근무했다. 2004년 이베이코리아 세일즈프로모션 실장을 지내며 경매 사이트 취급받던 옥션을 오픈마켓으로 변신시킨 주역으로 꼽힌다. 2008년 GS홈쇼핑 라이프스타일 사업부문장과 2013년 삼성물산 패션 온라인 사업 담당 상무를 거쳤다. 그는 이커머스 전략 및 신사업 발굴 등을 맡아 GS홈쇼핑과 GS리테일의 합병 시너지 전략을 주도할 것으로 보인다.

‘새벽배송’을 연 장보기 앱 마켓컬리 창업자 김슬아(37) 대표도 베인앤컴퍼니 출신이다. 민사고를 졸업한 김 대표는 힐러리 클린턴 전 미국 국무장관이 나온 웰즐리대에서 정치학을 전공했다. 이후 골드만삭스 홍콩지사, 맥킨지 홍콩지사, 베인앤컴퍼니 컨설턴트로 근무했다. 2015년 마켓컬리를 창업해 오후 11시까지 온라인 주문하면 다음 날 오전 7시까지 배송해주는 샛별배송과 상품 입고부터 배송까지 모든 과정을 냉장 상태로 유지하는 풀 콜드 체인을 구축해 이커머스 혁신을 주도하고 있다. 2016넌 174억원 수준이었던 마켓컬리의 매출은 지난해 4289억원에 이어 올해 1조원을 넘길 것으로 예상된다.

김익성 동덕여대 교수는 "코로나19로 모든 것이 바뀌는 상황에서 유통 기업도 발 빠르게 체질을 개선하고 옴니채널 전략을 짜야 한다"며 "컨설턴트 출신은 현장감이 부족하다는 우려가 있지만 지금은 현장감보다 온라인 전략이 중요한 때"라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