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년 고도(古都)’ 경주가 오랜 고도 제한에서 풀려나 신도심 개발에 나선다. 일부 지역에서는 투자수요가 몰리는 조짐도 보인다.

9일 부동산 업계에 따르면, 경주시는 지난 2일 성건·성동·노서동 일대 100만7560㎡와 구정동 일대 120만7000㎡의 고도 제한을 36m로 완화하는 도시관리계획안을 고시했다. 이 지역들은 ‘문화재보호법’에 따라 지난 1992년부터 건축물 최고 높이가 15~25m로 제한됐던 곳이다. 경주시는 최고 12층의 신축 아파트 등 신도심을 조성하는 개발 사업을 지원할 계획이다.

경주 도심지 고도 지구 현황.

그동안 경주에서는 고도 제한에 따라 북쪽 지역은 신축 아파트가 활발하게 개발되고, 남쪽 지역은 노후 주택 밀집지역으로 오랫동안 방치되는 북고남저(北高南低) 현상이 이어져 왔다. 고도 제한을 적용받지 않는 황성동에는 20층 이상의 아파트가 많지만, 최고 고도가 25m로 제한된 성건동은 6층 아파트가 최고층 아파트다.

북고서저 현상은 부동산 가격도 갈랐다. 국토교통부 실거래가 공개시스템에 따르면, 지난 2016년 준공된 황성동 ‘e편한세상 황성’ 전용면적 102㎡(18층)는 4억500만원에 거래됐다. 지난달 준공된 용강동 ‘두산위브트레지움’의 경우, 전용면적 85㎡(11층)가 최고 4억378만원에 매매되기도 했다.

반면 경주 성건동 ‘성건주공’ 전용면적 58㎡는 지난달 27일 8000만원에 거래됐다. 지어진 지 40년 된 이 아파트의 최고 층수는 4층이다. 2015년 준공된 성건동 ‘성건휴플레이스’는 최고 7층, 12세대에 불과한 미니 아파트로, 전용면적 61㎡가 1억3900만원에 마지막으로 거래됐다.

노서동 A공인중개업소 관계자는 "이 지역은 아파트라고 할만한게 없고 대부분이 오래된 단독주택이나 빌라"라며 "2016년 경주지진으로 피해를 입은 노후 건축물도 많은데, 고도 제한 탓에 경제성이 없어 재건축 추진도 안되고 있었다"고 말했다.

그러나 이들 지역의 고도 제한이 36m로 완화되면서 앞으로는 황성·용강동 등에 못지않은 신도심으로 개발될 가능성이 커졌다. 박순갑 경주시 도시개발국장은 "성건동은 교통 여건이 좋은 입지로 양질의 주택이 신축된다면 충분히 선호될 수 있는 곳"이라며 "개발은 민간 주도로 진행되겠지만, 그 계획을 인·허가 함에 있어 좋은 주거지역, 즉 신도심을 형성하는 것을 청사진으로 가져갈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박 국장은 "고도 제한에 따른 신도심 개발이 최근 경주시에 부족한 신축 아파트에 대한 공급도 늘릴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한다"며 "흉물이 되어버린 노후화된 공동주택을 정비하는 것은 천년 고도를 훼손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지키는 길"이라고 강조했다.

재개발·재건축 기대감에 경주시 성건동에는 벌써 투자수요가 일부 유입되는 조짐도 보인다. 국토교통부에 따르면, 지난 10월 성건동 주택 거래건수는 6건에 불과했지만, 11월에는 4배 이상인 28건에 달했다. 특히 1997년 준공된 성건동 ‘대신 유니하우스’는 고도 제한 완화가 발표된 지난달 20일에만 전용면적 21㎡ 매물이 7건이나 거래되기도 했다. 시세가 8500만원 안팎이던 ‘성건주공’도 최근 매물은 1억4800만원으로 호가가 올라왔다.

경주 용강동 B공인중개업소 관계자는 "고도제한 발표 이후 성건동에 대한 투자 문의가 수시로 들어오고 있지만, 매물이 거의 없는 상황"이라면서 "성건동 외에도 황성 주공1·2차 아파트 등 경주의 재건축 아파트는 전반적으로 가격이 계속 올라가고 거래도 늘고 있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권대중 명지대 부동산학과 교수는 "경주시와 같이 문화재가 산재한 지역은 문화유산 보존 차원에서 고도 제한을 받아왔다"면서 "이에 대한 반대 급부로 동일 시·군·구 내에서 문화재 훼손의 우려가 적은 지역에 대해서는 고도 제한 완화나 용적률 상향 등을 제공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