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정거래가 선행하는 반도체 현물가, 추세적 상승구간 진입
아이폰·갤럭시 인기에 모바일 칩부터 가격 상승 시작 전망
구매 미룬 서버 큰손들 인텔 CPU 출시 맞물려 투자 재개 조짐
공급 타이트한데 마이크론 정전사고까지… "내년 D램 가격 상승"

국내 증시 시가총액 1~2위인 삼성전자(005930), SK하이닉스(000660)의 주가가 나란히 4거래일 연속 신고가를 갈아치우며 새해 이른바 ‘반도체 수퍼사이클(장기 호황)’이 시작될 것이란 기대감이 커지고 있다. 반도체 가격이 1년 이상 상승세를 타는 수퍼사이클은 최근 현물가격의 추세적 상승 전환으로 더 힘을 얻고 있다. 현물가격은 기업 간 대량 거래에 쓰이는 고정거래가를 2~3개월 정도 선행한다.

8일 세계반도체무역통계기구(WSTS)가 최근 발표한 보고서를 보면, 내년 글로벌 반도체 시장 매출은 4694억달러(약 508조원)로 올해보다 8.4% 증가할 것으로 전망된다. 이 같은 수치는 지난 6월 예상한 증가율(6.2%)을 2.2%포인트 상향 조정한 것이다. WSTS는 이중에서도 D램, 낸드플래시 등 메모리반도체 시장 매출이 올해보다 13.3% 늘어난 1353억달러(약 146조4000억원)에 이를 것이라고 예상했다.

삼성전자 화성캠퍼스에 위치한 반도체 생산 라인 내 클린룸 전경.

전문가들이 이처럼 예상하는 이유는 수요 증가, 공급 부족이다. 김양팽 산업연구원 전문연구원은 "11월까지 반도체 수출 동향을 보면, 올해 전체 반도체 수출이 작년보다 좋을 것으로 예상된다"면서 "코로나19가 장기화하는 와중에도 생각보다 반도체 수요가 좋았던 것인 만큼 내년부터 5G(5세대 이동통신) 본격 보급에 따른 데이터 사용량 증가, 스마트폰 출하량 증가 등으로 인한 반도체 수요가 본격적으로 늘어날 것"으로 내다봤다.

이런 가운데 기업들이 설비투자를 올해 크게 늘리지 않았던 것도 수퍼사이클을 부채질할 전망이다. 삼성전자는 올해 반도체 부문 설비투자 규모를 28조9000억원 정도로 보고 있다. 지난해(22조6000억원)보다 28% 정도 늘었지만 내년 수요 증가를 대비하기엔 역부족일 것으로 전문가들은 보고 있다. SK하이닉스의 경우 2016년 이후 4년 만에 처음으로 연간 시설투자액이 10조원을 밑돌 전망이다.

삼성전자, SK하이닉스에 이어 D램 3위에 이름을 올리고 있는 미국 마이크론의 최근 정전사고는 이런 수급불균형에 기름을 부을 것으로 보인다. 메리츠증권은 마이크론의 대만 팹(공장)정전사고로 인한 D램 생산차질이 단기적인 공급 차질뿐 아니라 중장기적 업황 개선 촉매로 활용될 수 있다고 분석했다. D램 공급이 어렵다는 것을 마이크론 측이 어필함으로써 기업들이 예정보다 더 빠르게 반도체 구매를 재개하거나 재고확충에 나설 수 있다는 것이다.

이에 따른 가격 상승은 모바일 반도체부터 시작될 것이란 게 중론이다. 내년 1분기까지 애플의 아이폰12 판매 호조가 이어질 것으로 보이는데다 삼성 갤럭시S21의 1월 조기출시설, 화웨이 수혜를 보기 위한 중국 오포·비보·샤오미의 경쟁적 칩 구매 등이 예고돼 있기 때문이다.

올해 가장 수요가 부진했던 서버 반도체도 늦어도 내년 1분기 말, 2분기부터는 턴어라운드가 예상되고 있다. 10만대 이상의 서버(대형 컴퓨터)를 운영하는 하이퍼스케일(초대형) 데이터센터를 운영하고 있는 구글, 아마존웹서비스(AWS) 등으로부터 구매 문의가 본격적으로 늘기 시작했다는 게 업계 이야기다. 서버 CPU(중앙처리장치) 시장의 95%가량을 차지하고 있는 인텔의 신제품 출시도 예고돼 있어 이를 기다려 온 데이터센터 큰손들이 본격 투자를 시작하면 서버 D램 수요도 함께 올라갈 전망이다.

최도연 신한금융투자 연구원은 "D램 가격은 내년 줄곧 상승해 2022년 고점을 찍고, 낸드플래시는 내년 상반기 바닥을 찍고 상승할 것"으로 전망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