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르면 내년 상반기 택배 요금이 인상될 것으로 보인다. 택배기사 과로의 주요인 중 하나로 낮은 배송비가 지목되면서다. 김현미 국토교통부 장관은 지난 3일 국회 국토위 전체회의에서 "택배 노동자 과로사 방지 문제는 생활물류법(생활물류서비스산업발전법) 제정을 통해 제도를 개선하고, 사회적 합의를 통해 왜곡된 가격 구조를 개선하는 투트랙으로 해결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2000년 3500원이었던 택배 요금은 2018년 2229원까지 내려갔다가 지난해 2269원으로 소폭 인상됐다. 같은 기간 새우깡 한 봉지 가격이 500원에서 1300원, 스타벅스 아메리카노 톨(tall) 사이즈 한 잔 가격이 3000원에서 4100원으로 오른 것과 비교하면 기이한 흐름이다. 업체들은 과당경쟁으로 요금 인하가 불가피했다고 설명한다.

하지만 낮은 택배 요금으로 인해 기사들의 배송량이 늘고, 과로사가 잇따르자 택배 요금을 올려야 한다는 사회적 공감대가 커지고 있다. 총알·새벽 배송을 당연시하던 소비자들도 바뀌고 있다. 국민권익위원회 조사에 따르면 택배 종사자의 처우 개선을 위해서 택배 요금 인상을 감내할 수 있다고 응답한 국민은 74%에 달했다.

과연 택배 요금을 올리면 택배기사 과로 문제가 해결될까? 한 택배 종사자는 "택배 요금 현실화는 동의하지만, 택배기사 처우개선에 효과가 있을지는 의문"이라고 했다. 국내 택배 시장은 택배본사·대리점·택비기사로 이어지는 하도급 구조로 이뤄졌다. 택배사가 지역 대리점에 물량을 위탁하고, 대리점은 개인사업자인 기사에게 재위탁하는 형태다. 3자가 수익을 분배하다 보니, 1건당 택배기사에게 돌아오는 돈은 세금과 차량 유지비 등을 떼면 겨우 500원 선이다.

택배사가 떼돈을 버는 것도 아니다. CJ대한통운에 따르면 임차료와 터미널 운영비 등 고정 비용을 빼면 남는 돈은 1건당 70원 수준. 택배사가 택배 물량을 수주하는 대가로 화주(기업고객)에게 택배 요금 일부를 돌려주는 백마진 관행도 수익률 저하를 부추기고 있다. 업계에 따르면 택배 요금 2500원 중 판매자에게 가는 백마진은 700원대다. 초저가 상품을 박리다매로 파는 유통업체의 경우 상품을 팔고 남기는 돈보다 백마진으로 버는 돈이 더 많다는 소리가 나온다.

실제로 지난해 국내 1위 택배사인 CJ대한통운은 10조가 넘는 매출을 거뒀지만, 영업이익률은 2.9%에 그쳤다. 매출 2조원대인 한진택배와 롯데택배의 영업이익률도 각각 4.4%, 0.7% 수준이었다. 올해 3분기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으로 택배 물동량이 급증한 와중에도 CJ대한통운의 영업이익률은 3.3%에 머물렀다. 택배 부문의 경우 매출이 25.5% 성장했지만, 영업이익은 되레 1.3% 떨어졌다.

전문가들은 택배 요금 인상에 앞서 수익구조 개선과 불공정 관행을 바로잡는 것이 우선이라고 입을 모은다. 택배 요금 현실화보다 수수료의 정상화가 선행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구조 개선이 이뤄지지 않는 한 택배 요금 인상은 문제 해결은커녕 소비자 부담만 가중될 수 있다는 지적이다.

안타깝게도 지난달 정부가 발표한 ‘택배기사 과로방지 대책’에서는 수익구조 개선에 대한 고민을 찾을 수 없었다. 새벽 배송 금지, 주 5일제 도입 등 근로시간 단축 관련 내용이 우선적으로 ‘권고’됐을 뿐, 표준계약서 작성과 택배 요금 인상 등 실질적인 대책은 향후 구성될 사회적 협의체의 과제로 넘겼다. 이마저도 2017년 택배 대책으로 제시됐다가 노사협의 결렬 등으로 중단된 내용이 반복됐다. 당시 택배 대책 역시 택배기사 4명이 과로사로 숨진 것을 계기로 만들어졌으나, 협의만 하다 흐지부지 끝났다.

정부도 할 말은 있다. 택배법이 없어서 강제할 수가 없다는 것이다. 이를 이유로 정부와 여당은 생활물류법을 연내 제정하겠다는 의지를 강하게 보이고 있다. 과로방지법이라는 부제도 달았다. 하지만 법은 의도치 않은 결과를 초래하기도 한다. 최저임금제로 많은 실업자가 양산되고, 임대차보호 3법으로 전국에 전세대란이 일어났다. 신중하고도 근본적인 논의가 바탕이 되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