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행권이 자본 여력 확대 효과를 내는 바젤Ⅲ 최종안을 앞당겨 승인받으면서 전체 대출 증가액 중 50% 이상을 기업대출로 채우겠다고 금융당국과 약속한 것으로 나타났다. 그러나 최근 신용대출 등 가계대출이 폭증하면서 기업대출 비중을 맞추기 어려워졌다. 은행권은 내부 규정까지 바꿔가면서 기업대출을 늘리기 위해 고군분투하고 있다.

8일 금융권에 따르면 지난 9월 말부터 바젤Ⅲ 최종안을 미리 시행중인 KB국민·신한·우리·NH농협은행은 이번 4분기 기업대출 증가액이 전체 대출 증가액에서 차지하는 비중을 50% 이상으로 맞춰야 한다. 은행별로는 신한은행과 KB국민은행, 우리은행의 기업대출 증가 목표치가 57%대, NH농협은행이 51%인 것으로 알려졌다.

은행권이 바젤Ⅲ 최종안 조기 승인 조건으로 전체 대출 증가액 중 기업대출 증가액 비중을 50% 이상 채우기로 금융당국과 약속했지만, 최근 가계대출 폭증으로 목표치를 맞추기 어려운 상황이다.

바젤Ⅲ는 주요 선진국(G10)의 중앙은행 및 은행 감독 당국 대표로 구성된 바젤위원회에서 정한 ‘은행자본규제’ 기준이다. 최종안은 중소기업 대출의 위험 가중치를 낮추고 기업대출의 부도로 인한 손실도 은행에 덜 반영하는 방안을 담고 있다. 당초 2022년부터 시행하기로 돼 있었지만 신종 코로나 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피해 중소기업 지원을 위해 일정을 앞당겼다. 바젤Ⅲ가 적용돼야 은행 자본 여력이 늘어나 대출 등 기업 자금 지원 규모를 늘릴 수 있기 때문이다.

금융당국은 은행권에 바젤Ⅲ 최종안의 조기 도입을 승인해주는 대신, 전체 대출 증가액 중 대기업·중소기업·개인사업자 등 기업대출 비중이 최소 50%를 넘어야 한다는 조건을 내걸었다. 시중은행 관계자는 "금융당국이 제시한 50%선을 기준으로 각 은행이 포트폴리오에 맞게 목표치를 설정했다"며 "3분기에 바젤Ⅲ 최종안이 도입된 이후 이번 달에 첫 보고가 예정돼 있다"고 말했다.

목표치를 설정하던 지난 5월까지만 해도 기업대출 비중을 50% 이상으로 맞추는 것은 큰 무리가 없었지만, 최근 들어 상황이 급변했다. 부동산 시장이 급변하고 주식 투자 열풍이 불면서 부동산 대출과 신용대출 등 가계대출이 큰 폭으로 늘어났기 때문이다. 한 시중은행 관계자는 "최근 부동산·신용 대출 규제가 강화되면서 10~11월 가계대출이 크게 늘었다"며 "가계대출과 기업대출 증가속도가 비슷했다면 금융당국에 약속한 비율을 충분히 맞출 수 있었지만, 지금은 쉽지 않은 상황"이라고 말했다.

실제 각 은행의 10~11월 기업대출 증가액을 살펴보면, KB국민은행의 경우 두달간 1조2356억원이 늘었다. 그러나 같은 기간 가계대출은 기업대출의 3배인 3조9187억원 증가하면서 기업대출 증가액은 전체 대출 증가액의 24%에 불과한 상황이다. 신한은행과 우리은행도 각각 기업대출이 1조7154억원, 2조9590억원 늘었지만 이 역시 전체 대출 증가액의 39% 수준이라 목표치에 한참 못미친다. NH농협은행이 그나마 2조535억원으로 40.9%를 채워 목표치 51%에 가장 근접했다.

기업대출 목표치를 맞추는 시한이 채 한달도 남지 않은 만큼, 각 은행권은 내부 규정까지 바꿔가며 기업대출을 늘릴 수 있는 방안을 찾고 있다. 한 시중은행은 기업대출 연장계약이 가능한 시점을 만기 도래 1개월 전에서 3개월 전으로 변경한 것으로 알려졌다. 시중은행 관계자는 "기업 마이너스 통장의 경우 전체 한도가 아닌 쓴 만큼 대출 잔액으로 잡히는데, 전체 한도를 대출 잔액에 포함하는 방안을 금융당국에 요청한 상황"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