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코노미조선]

제조업체에서 디지털 콘텐츠 기업으로 변신한 펜더

펜더 기타를 연주하는 영국 기타리스트 겸 가수 에릭 클랩턴.

"일렉트릭 기타는 은밀하고 천천히 죽어가고 있다."

미국 워싱턴포스트는 2017년 6월 이런 제목의 기사에서 일렉트릭 기타(이하 기타) 판매량 급감으로 관련 산업이 침체하고 있다고 보도했다. 불과 수십 년 전만 해도 에릭 클랩턴, 제프 벡, 지미 헨드릭스, 지미 페이지와 같이 공연장을 누비는 기타리스트는 사람들의 우상이었고, 모든 사람은 이들처럼 되고 싶어 했지만, 이제는 아무도 기타리스트와 기타에 관심을 두지 않는다는 내용의 기사였다. 실제로 그랬다. 아이들은 팝스타와 랩스타에 열광했고, 자유와 저항의 상징이었던 기타와 로큰롤의 시대는 저물고 있었다. 에릭 클랩턴마저 2017년 기자회견에서 "어쩌면 기타(의 시대)는 끝났을지도 모른다"라고 말했다.

기타 산업이 몰락의 길로 들어선 건 당연한 일이었다. 미국의 일렉트릭 기타 판매량은 지난 10년간 연간 150만 대에서 100만 대 수준으로 급감했다. 펜더와 함께 기타 시장의 양대 산맥을 구축했던 깁슨은 2018년 파산신청까지 갔다. 영국 가디언은 당시 이를 ‘기타의 종말’이라고 표현했다. 기타 시장이 지속할 것이라고 아무도 확신하지 못했다.

신종 코로나 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은 여기에 불을 지폈다. 지난 3월 코로나19의 대유행 이후 그나마 명맥을 유지했던 기타 명가 펜더의 경우 전 세계 판매점의 90%가 문을 닫았다. 온라인 판매자도 영업을 이어가지 못했다. 미국 캘리포니아 코로나와 멕시코 엔세나다 공장이 문을 닫았고 수백 명의 직원이 해고됐다. 앤디 무니 펜더 최고경영자(CEO)는 "심연의 가장자리를 넘나들었고, 회사는 제자리를 지키기 위한 모드로 들어갔다"고 말했다. 그와 약 2000명의 직원은 최대 50%의 임금을 삭감했다.

수렁에서 빠져나오지 못할 것 같았던 펜더의 운명은 뒤바뀌기 시작했다. 올해 펜더는 7억달러(약 7700억원)의 매출액을 기록할 것으로 전망되는데, 이는 전년(6억달러)보다 17% 증가한 수준이다. 무니는 "2021년도 기록적인 한 해가 될 것으로 예상한다"며 "코로나19 대유행이 어떻게 되든 상관이 없다"고 자신했다. 뉴욕타임스는 9월 ‘기타가 돌아왔다, 베이비(Guitars Are Back, Baby!)’라는 기사를 통해 기타 제조업체들의 이례적인 선전을 보도했다. 펜더에 무슨 일이 일어난 걸까.

◇부활의 비결 1│청년과 여성, 새로운 소비자 만든 ‘펜더 플레이’

펜더가 기사회생한 데에는 2017년 7월 처음 선보였던 온라인 비디오 플랫폼 ‘펜더 플레이’의 영향이 컸다. 펜더 플레이는 일종의 구독형 기타 레슨 서비스다. 한 달에 9.99달러(약 1만1000원)만 내면 세계 최고의 음악가들에게 기타와 베이스, 우쿨렐레 등의 악기를 배울 수 있다. 좋아하는 노래를 연주할 수 있을뿐더러 시간이나 공간에 구애 받지 않고 악기를 배울 수 있다는 장점 덕분에 소비자로부터 좋은 반응을 이끌어냈다.

펜더는 코로나19가 무섭게 확산했던 올해 3월 말에 펜더 플레이 신규 가입자 10만 명에게 기타·베이스·우쿨렐레 학습 동영상을 90일간 무료로 제공했다. 무니는 "순수하게 호의적인 행위였다"라고 표현했지만, 펜더는 첫 주에만 50만 명의 가입자를 유치했고, 6월까지 93만 명의 가입자를 확보했다.

놀라운 건 신규 가입자의 20%는 24세 미만이었고, 70%는 45세 미만이었다는 점이다. 청소년과 청년들이 더는 기타를 잡는 일이 어려울 것이라고 여겨졌지만, 아이러니하게도 코로나19가 이를 가능하게 한 것이다. 가입자의 45%가 여성으로, 코로나19 대유행 이전보다 15%포인트 급증했다는 점도 눈여겨볼 만했다.

무니는 "펜더 플레이는 완전히 새로운 소비자를 탄생시켰다"며 "이들의 대부분은 1946년 설립된 전설적인 기타 브랜드 펜더를 모르는 사람들이었다"고 말했다.

◇부활의 비결 2│유통 채널 확대하고 소비자 중심 마케팅 선보여

펜더가 단순한 기타 제조업체에서 벗어나기 위한 시도를 이전부터 하고 있었다는 점도 주목할 만하다. 2015년 무니가 CEO로 취임하고서 펜더는 자체 판매망을 벗어나 유통 채널을 확대했다. 미국 인디애나에 본사를 둔 악기 판매업체 스위트워터와 아마존, 월마트, 독일의 악기 판매 회사 토만 같은 곳에서 기타 판매를 시작했다. 코로나19 확산 이전에는 절반 정도였던 온라인 비중은 70%까지 증가했다.

무니는 "펜더에 입사했을 때 기타가 성장 산업이라는 데 많은 회의가 있었지만, 이제는 펜더가 성장하는 산업군에 있으며 사업을 유지할 수 있다고 믿는다"고 말했다.

퀵실버와 디즈니, 나이키 등에서 일했던 경험을 바탕으로 펜더의 마케팅 전략도 수정했다. 무니는 나이키에서 함께 일했던 에반 존스를 펜더의 사상 첫 최고마케팅책임자(CMO)로 고용했고, 존스는 곧바로 소비자 세분화 작업을 시작했다. 펜더가 그동안 세계 최고의 연주자들과 협력 관계를 맺어온 것에 비하면 소비자에 대한 정보가 턱없이 부족했기 때문이다.

존스는 "펜더는 거래 중심에서 소비자 기반 마케팅으로 전환했다"고 말했다. 자료 수집·분석에 투자해 소비자의 선호도를 읽고 효과적인 마케팅 조직을 만든 것이다. 이 조직은 10월에 펜더의 주력 제품인 ‘아메리칸 프로페셔널 Ⅱ’ 시리즈를 출시했는데, 연주자와 협업과 새로운 연주자 발굴 등을 통해 소비자로부터 좋은 반응을 얻고 있다.

◇부활의 비결 3│‘U’자형 판매 전략…초보와 고수 모두 잡았다

펜더의 선전에 운이 따른 면도 있다. 코로나19 확산에 따른 봉쇄 조치로 사람들이 집 밖으로 나가지 않으면서 기타를 연주하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3월 중순부터 10월 중순까지 500달러(약 55만원) 이하의 펜더 모델 판매는 전년 같은 기간보다 92% 증가했는데, 대부분 악기 초보자들이 온라인에서 구매한 어쿠스틱 기타였다. 여기에 ‘스트라토캐스터’와 ‘텔레캐스터’ ‘프레시전 베이스’ 등의 일렉트릭 기타는 물론 우쿨렐레, 앰프, 홈 레코딩 장비의 판매까지 급증했다.

새로운 소비층이 생겼지만, 펜더는 그동안 브랜드에 충성한 마니아들을 외면하지도 않았다. 펜더에 따르면 처음 기타를 집어 든 사람의 90%가 첫해에 기타 연주를 포기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하지만 나머지 10%는 평생에 걸쳐 기타를 5~7개 정도 추가로 사들이며, 여기에 1만달러(약 1100만원)를 쓰는 것으로 조사됐다. 펜더는 이들이 수년간 기타 시장을 뒷받침할 것이라고 판단했다. ‘아메리칸 프로페셔널 Ⅱ’ 출시도 이들을 노린 전략 중 하나다. 이 시리즈의 기타 가격은 1000달러(약 110만원) 이상이다.

무니는 "펜더가 기존 연주자의 이탈을 줄일 수 있다면 시장 규모를 확대하고 더 빠른 속도로 성장할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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