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정호 SK텔레콤 사장, 부회장으로 승진하며 하이닉스도 지휘
최태원 회장 최측근이자 그룹 내 M&A 전문가로 '지주사 전환'
"중간 지주사 전환 후 SK그룹 ICT 계열사 총괄 경영할 듯"

SK그룹의 3일 사장단 인사에서 박정호 SK텔레콤 사장이 하이닉스 부회장으로 승진했다. 박 부회장이 SK텔레콤과 SK하이닉스의 경영을 총괄하는 체제가 구축된 것이다. 박 사장의 그룹 내 위상이 부회장으로 올라가며 향후 그룹 내 전 ICT 계열사의 경영을 책임지게 된다.

이번 인사로 SK텔레콤이 차세대 성장동력으로 추진하는 AI(인공지능) 반도체 사업에 추진력이 붙을 것으로 예상된다. SK텔레콤이 통신 서비스회사 영역을 뛰어넘어 AI 관련 사업을 총괄하는 빅테크 기업으로 진화하는 체질 개선이 본격화될 것이라는 관측이다.

3일 인사를 통해 사장에서 부회장으로 승진한 박정호 SK텔레콤 대표이사. 하이닉스 경영에도 참여하게 된다.

이와 함께 SK텔레콤이 SK그룹의 ICT 제조·서비스 사업을 총괄하는 중간 지주회사로 전환하는 작업에 속도가 붙을 것이라는 관측도 나온다. SK텔레콤이 구글, 페이스북 등 글로벌 빅테크 기업과 경쟁하는 ‘빅테크 지주사’로 전환하는 움직임이 본격화될 전망이다.

◇SK텔레콤, 중간지주사 전환 속도낼 듯… 숨은 변수는 ‘공정거래법 개정안’

3일 재계에 따르면, SK텔레콤(017670)을 이끄는 박정호 사장이 부회장으로 승진하면서, SK하이닉스 경영까지 총괄하게 됨에 따라 SK그룹의 IT중간 지주회사 구축 작업이 표면화될 것이라는 관측이 나오고 있다.

SK텔레콤을 통신사업회사와 투자·지주회사로 분할한 뒤, 투자·지주회사가 SK브로드밴드·SK하이닉스 등 SK그룹 ICT 계열사들을 아우르게 한다는 구상이다. SK텔레콤을 SK그룹 내 ICT 계열사를 총괄하는 중간 지주회사로 전환하는 그림이 펼쳐진다. 박 부회장에게 SK하이닉스 경영까지 총괄하게 한 것은 이같은 중간 지주회사 전환의 사전 정지 작업으로 보는 시각이 지배적이다.

현재 국회에 상정된 공정거래법 개정안도 SK텔레콤의 중간 지주회사 전환을 서두르게 하는 요인으로 지목된다. 이 법안에 따르면 신규 지주회사 전환 기업진단이나 지주회사에 편입되는 자회사는 지주사 의무지분율이 자회사 20%, 손자회사 40%에서 각각 30%, 50%로 올라가게 돼 부담이 커진다.

만약 중간 지주회사 전환이 신규 지주회사 설립에 준하는 행위로 규정된다면, SK텔레콤은 SK하이닉스의 지분율을 현재의 20.1%에서 30% 이상으로 올려야 한다. 2018년 3분기 이후 현금성 자산이 1조원 이하로 떨어진 SK텔레콤의 경영상황을 감안하면, SK하이닉스 지분 추가 확보는 쉽지 않은 과제다.

이 때문에 SK텔레콤의 중간 지주회사 전환이 법적 리스크 없이 추진되기 위해서는 개정 공정거래법이 시행되는 이르면 2022년 이전에 모든 전환 작업이 완료돼야 한다. 윤풍영 SK텔레콤 코퍼레이트센터장(CFO)은 "지난해 5월 실적발표 컨퍼런스콜을 통해 중간지주사 전환은 자회사 포트폴리오가 마무리될 때 추진한다"고 밝힌 바 있다.

◇ M&A 전문가로 ‘승승장구’…박정호 부회장, AI반도체로 사업 재편 추진

박정호 부회장의 승진은 SK텔레콤이 통신 서비스 회사의 경계를 뛰어넘겠다는 강력한 사업재편 의지를 보여준다는 평가도 나온다. 박 부회장이 SK하이닉스 경영까지 총괄하면서 SK텔레콤이 추진하는 AI(인공지능) 반도체 사업에 속도를 낼 수 있게 됐다.

SK텔레콤은 지난달 25일 일산 킨텍스에서 과학기술정보통신부 주최로 열린 ‘한국판 뉴딜, 대한민국 인공지능을 만나다’ 행사에서 자체 개발한 데이터센서용 AI반도체 ‘SAPEON X220’을 공개했다. SK텔레콤은 "이번 AI 반도체 출시를 통해 엔비디아, 인텔, 구글 등 글로벌 빅테크 기업 중심의 미래 반도체 시장에 출사표를 던졌다"라고 강조했다.

SK텔레콤이 하이닉스와 협력해 자체 개발한 데이터센터용 AI 반도체 'SAPEON(사피온) X220'.

SK텔레콤은 AI반도체 사업을 통해 반도체 칩 기반 하드웨어부터 AI 알고리즘, API 등 소프트웨어까지 AI 서비스를 제공하는 AI 빅테크 기업으로 진화하겠다는 전략을 갖고 있다. AI를 무기로 구글, 페이스북 등과 맞설 글로벌 빅테크 기업으로 부상하겠다는 ‘탈(脫) 통신’ 전략이다.

박정호 부회장은 이미 SK텔레콤 대표이사 취임 후 삼성 에스원에 이어 물리보안업계 2위인 ADT캡스를 인수하고, SK인포섹을 자회사로 편입하는 등 사업 영역을 넓혀왔다. 최근 ADT캡스와 SK인포섹 합병도 추진하며 융합보안기업으로 기업가치를 키워 IPO 한다는 계획을 제시했다. 또 2019년 SK브로드밴드 온라인 동영상서비스(OTT) ‘옥수수’와 지상파3사의 ‘푹(POOQ)’의 합병을 성공시켰고, 같은 해 SK브로드밴드와 티브로드의 합병도 추진해 성공했다.

SK텔레콤은 현재 모빌리티 사업 부문을 분사시키고 티맵모빌리티(가칭)를 올해 안으로 설립할 예정이다. 자회사 중 첫 번째 상장회사는 ‘원스토어’로 지난 9월 상장 주관사 선정을 마치고 내년 하반기쯤 IPO(기업공개)를 마친다는 목표를 세웠다.

SK텔레콤이 지난 26일 오전 10시 서울 을지로 본사 수펙스홀에서 열린 임시 주주총회에서 ‘모빌리티 사업부 분할계획서 승인의 건’을 통과시켰다 . 박정호 사장이 주주들에게 모빌리티 사업 추진 의미와 비전을 설명하고 있는 모습.

◇ ICT 사업재편·최태원 회장 장악력 강화 ‘동시포석’

박정호 부회장은 최태원 SK그룹 회장의 최측근이기 때문에, 이같은 사업 재편이 최 회장의 ICT 부문 장악력 강화로 이어진다는 관측도 있다. 박 부회장은 지난 1989년 ㈜선경에 입사한 뒤 SK텔레콤 뉴욕지사장, SK그룹 투자회사관리실 CR지원팀장(상무), SK커뮤니케이션즈 사업개발부문장, SK텔레콤 사업개발부문장(부사장), SK C&C 대표이사 사장 등을 거쳤다. 박 부회장은 SK그룹에서 하이닉스 인수를 주도했고, 2017년 SK하이닉스의 일본 도시바 인수전에서도 최 회장의 일본 출장에 동행하는 등 깊숙이 관여하며 그룹 내 인수합병(M&A) 전문가로 꼽힌다.

SK텔레콤과 경쟁 통신사의 체제 변화와도 대비된다. 당초 사장 대표이사 체제였던 SK텔레콤과 달리 KT(030200)LG유플러스(032640)는 구현모 대표, 황현식 대표 선임 전까지 각각 회장, 부회장 대표이사 체제였다. 하지만 두 회사 모두 현재 사장 대표이사 체제로 변하고, SK텔레콤 홀로 부회장 체제로 변화하며 위상을 강화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