겨울이 되면 레드 와인이 유난히 더 맛있다. 풍부한 향과 묵직한 질감이 쌀쌀한 날씨에 몸과 마음을 포근히 감싸주는 느낌이다. 이럴 때 레드 와인을 품종 별로 맛보며 더 깊이 이해해보는 것은 어떨까? 같은 품종이라도 생산지에 따라 맛과 향이 다르니 다양한 매력을 경험할 수 있는 좋은 기회가 아닐 수 없다.

와인을 만드는 대표적인 적포도 품종으로는 카베르네 소비뇽(Cabernet Sauvignon), 메를로(Merlot), 시라(Syrah)가 있다. 이번에는 그 첫 번째로 우리에게 가장 익숙한 카베르네 소비뇽에 대해 알아보자. 알고 마시면 더욱 맛있는 카베르네 소비뇽! 품종의 탄생, 특징, 어울리는 음식, 추천 와인까지 모든 것을 정리해 보았다.

프랑스 보르도에 위치한 메독의 포이약 마을에서 생산된 레드 와인 (사진: 김상미)

막내로 태어났지만 위대한 품종, 카베르네 소비뇽

카베르네 소비뇽은 17세기에 프랑스 남서부 보르도 지방에서 카베르네 프랑(Cabernet Franc)과 소비뇽 블랑(Sauvignon Blanc)의 우연한 교잡으로 탄생했다. 그래서 이름도 부모 이름에서 한 단어씩 따와 카베르네 소비뇽이 됐다. 8000년이 넘는 유구한 와인 역사 속에서 겨우 400살 남짓인 카베르네 소비뇽은 막내 중에서도 막내다. 하지만 이 품종은 보르도 지롱드(Gironde) 강 유역의 메독(Medoc) 지방에서 강인한 생명력으로 점점 입지를 굳혀갔다. 그뿐만 아니라 특유의 진한 풍미로 전 세계 와인 애호가의 입맛을 사로잡았고 메독 와인의 고급화를 이끌었다.

특유의 채소향, 나이 들수록 매력적인 풍미

카베르네 소비뇽은 체리와 블랙커런트 등 검은 베리류의 향이 진하고 타닌의 질감이 탄탄해 강건한 스타일을 좋아하는 우리 입맛에 잘 맞는 품종이다. 한 가지 호불호가 갈리는 점이 있다면 바로 특유의 채소향이다. 풋풋하고 매콤하게 느껴지는 이 향은 풋고추나 피망 같기도 하고 삼나무 같기도 하다. 이런 풍미는 서늘한 곳일수록 도드라지기 때문에 캘리포니아보다 메독에서 생산된 와인에서 더 많이 느껴진다. 칠레산에서는 이 풍미가 고춧가루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카베르네 소비뇽의 참맛은 10년 이상 병숙성을 했을 때 제대로 느낄 수 있다. 특히 프랑스산은 오랜 병숙성을 요하는데, 이는 카베르네 소비뇽의 강한 타닌과 신맛이 과일향과 충분히 어우러질 시간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10~15년 숙성된 메독 와인은 영 빈티지의 거친 느낌과 달리 질감이 실크처럼 매끄럽고 과일향이 달콤하다. 여기에 어우러진 가죽, 담배, 삼나무, 커피 등 다양한 향미는 복합미의 극치를 이룬다. 나파 밸리나 호주처럼 더운 기후에서 생산된 카베르네 소비뇽은 어릴 때 마셔도 충분히 부드럽지만 병숙성을 시키면 세련미를 더하며 한결 원숙해진 맛으로 변모한다.

고기 요리와 특히 잘 어울리는 카베르네 소비뇽 (사진: 김상미)

육즙이 풍부한 고기 요리에 제격

카베르네 소비뇽은 타닌이 많고 질감이 탄탄해 육즙이 많은 소고기나 양고기와 특히 잘 어울린다. 육즙의 지방이 입안에 고루 퍼지면 레드 와인의 타닌이 한층 더 부드럽게 느껴지고, 타닌의 떫은맛이 지방의 느끼한 맛을 개운하게 씻어주기 때문이다. 따라서 작게 썰어 요리한 꼬치구이보다 두툼한 스테이크가 육즙이 풍부해 카베르네 소비뇽과 더욱 잘 어울린다. 하지만 이 품종의 진정한 매력은 뭐니뭐니 해도 진하고 우아한 과일향이다. 이런 풍미를 제대로 느끼려면 고기에 양념을 많이 하지 않는 것이 좋다. 치즈 중에는 오래 숙성한 체다나 고다 치즈가 잘 맞고, 짭짤한 고르곤졸라 치즈에 호두나 아몬드 같은 견과류를 곁들이는 것도 좋은 방법이다.

생산 국가별 카베르네 소비뇽 와인 추천

카베르네 소비뇽의 맛은 과연 생산지 별로 얼마나 다를까? 프랑스, 이탈리아, 미국, 호주, 칠레, 아르헨티나산 카베르네 소비뇽을 나라 별로 한 가지씩 선정해 보았다. 해당 국가를 대표할 만한 와이너리가 만든 것 중에서 소비자가격 10만 원 이하를 기준으로 했다. 여기서 한 가지 유의할 점은 레이블에 카베르네 소비뇽이 적혀 있어도 100% 카베르네 소비뇽으로 만든 와인은 아니라는 것이다. 생산지 별로 기준은 다르지만 한 품종이 블렌딩의 70~90% 이상을 차지하면 그 품종만 레이블에 적을 수 있도록 허용하고 있다. 자세한 블렌딩 비율은 아래 와인 별 설명에 밝혀 두었다.

카베르네 소비뇽 품종으로 만든 여러나라 와인들.(사진 김상미)

◇프랑스 - 샤토 라그랑쥬 (Chateau Lagrange)
프랑스 보르도의 메독 지방에 위치한 생 쥘리엥(Saint-Julien) 마을에서 생산된 와인이다. 전통적인 블렌딩 비율대로 카베르네 소비뇽 약 70%에 메를로와 프티 베르도를 섞어 만들었다. 2016년이나 2017년산처럼 영 빈티지에서는 신선한 베리향과 민트 같은 허브향이 살짝 느껴진다. 2017년산은 좀 더 묵히는 것이 좋고 2016년산은 아직 이르지만 그나마 시음 적기에 근접한 상태다. 지금 열고 싶다면 1~2시간 정도 디캔팅해서 마실 것을 추천한다. 풍부한 과일향과 함께 감초, 후추 등 향신료 향이 조화롭고 강건한 질감이 매력적이다. 카베르네 소비뇽의 종주국인 프랑스의 저력과 실력이 느껴지는 와인이다.

◇이탈리아 – 파르니토(Farnito)
이탈리아 토스카나의 실력파 와이너리 카르피네토(Carpineto)가 카베르네 소비뇽 100%로 만든 와인이다. 잘 익은 검은 체리, 검은 자두 향이 풍부하고 바닐라와 감초 등 향신료 향이 복합미를 더한다. 달콤한 과일향과 산뜻한 신맛의 균형미도 탁월하다. 매끈한 타닌이 입안을 부드럽게 채운다. 시음 온도는 20도 정도로 약간 시원한 상태가 적합하고 육류나 치즈를 곁들이면 풍미가 더욱 살아난다. 토스카나의 2015년과 2016년은 최고의 빈티지로 평가받고 있으므로 발견한다면 바로 구입할 것을 적극 추천한다.

◇미국 – 로버트 몬다비 나파 밸리 카베르네 소비뇽
나파 밸리를 대표하는 와이너리인 로버트 몬다비에서 만든 와인이다. 해마다 블렌딩 비율은 조금씩 다르지만 2017년산의 경우 카베르네 소비뇽 86%에 메를로, 프티 베르도, 카베르네 프랑을 섞어 만들었다. 나파 밸리 카베르네 소비뇽은 대체로 진하고 묵직하지만 몬다비 와인은 보디감이 적당하고 신맛이 경쾌하며 과일향이 신선해 정교한 느낌이다. 달콤한 과일향과 함께 커피, 다크초콜릿, 감초, 후추, 피망 등 다양한 향미가 아름다운 조화를 이루고 있다. 부드럽고 탄탄한 질감 또한 매력적이다. 마시기 30분 전에 디캔팅해서 즐기면 더욱 맛있게 즐길 수 있다.

◇호주 – 투 헨즈, 섹시 비스트 카베르네 소비뇽
사우스오스트레일리아 주 맥래런 베일(McLaren Vale)에서 카베르네 소비뇽 100%로 만든 와인이다. 온화한 지중해성 기후에서 자란 카베르네 소비뇽의 균형 잡힌 풍미가 물씬 피어오른다. 블랙커런트, 체리, 자두 등 잘 익은 베리향이 가득하고, 코코아, 정향, 민트 등이 향미를 더욱 다채롭게 장식하고 있다. 매끈한 타닌이 입안을 기분 좋게 채우고 적당한 신맛이 와인을 경쾌하게 만들어준다. 영 빈티지를 바로 마셔도 좋지만 7-8년 정도 병숙성을 시킨 뒤에 즐기면 더욱 조화로운 맛과 향을 느낄 수 있다.

◇칠레 – 몬테스 알파 블랙 라벨 카베르네 소비뇽
칠레를 대표하는 와이너리인 몬테스가 만든 와인이다. 카베르네 소비뇽 85%에 시라와 카르메네르를 블렌딩하고 16개월간 오크 숙성을 거친 뒤 출시했다. 블랙베리, 체리, 블루베리, 자두 등 과일향이 풍부하고 칠레 특유의 고춧가루 같은 향신료 향이 느껴진다. 타닌의 강건한 질감이 매력적이고, 길게 이어지는 여운이 고급스럽다. 30분 정도 디캔팅을 하면 향미가 더욱 풍성해진다. 다양한 고기 요리와 두루 잘 어울리고 햄과 치즈 등 간단한 스낵류와 즐겨도 좋다.

◇아르헨티나 – 살렌타인 카베르네 소비뇽
아르헨티나 카베르네 소비뇽은 군더더기 없이 깔끔하고 솔직한 맛이 일품이다. 살렌타인 카베르네 소비뇽은 아르헨티나의 대표 와인 산지인 멘도자(Mendoza) 지방 안에서도 최고급 산지로 인정받는 우코 밸리(Uco Valley)에서 생산된 와인이다. 해발 1000미터가 넘는 고지대에서 당도와 산도의 균형이 완벽한 포도로 만들어 과일향과 신맛의 균형이 뛰어나다. 카베르네 소비뇽 100%로 만들었으며 체리, 딸기, 자두 등 과일향이 달콤하고 은은한 바닐라 향이 부드러운 풍미를 선사한다. 질감이 부드러워 마시기 편하며 긴 여운이 우아함을 더한다. 바로 마셔도 좋고 30분 정도 디캔팅을 하면 더욱 풍성한 향미를 즐길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