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벌써 배액배상만 2번 당했는데, 이렇게 된거 불장에 아무 물건이나 잡아서 ‘배배테크’나 할까요?"

올해 들어 서울과 김포에서 집을 사려다 두 번 다 계약 파기를 겪었다는 A씨는 "앞으로 8번만 더 채우면 아파트 한 채 돈이 나오겠다"고 자조했다. ‘배배테크’는 배액배상과 재테크를 합친 신조어다. 매도인이 계약을 파기하면 받은 계약금의 두 배를 매수인에게 배상해야 한다. 최근 부동산 시장이 급등세를 보이며 매도인이 돈을 물어주고서라도 계약을 파기하는 경우가 늘며 생긴 장면이다.

지난 24일 경기도 파주시 접경지역에서 바라본 운정신도시와 일산 신도시에 아파트들이 줄지어 서있는 모습.

30일 부동산업계에 따르면, 최근 부산과 울산, 파주, 일산 등 아파트값이 급격히 상승하는 지역에서 배액배상 사례가 속출하고 있다. 국토교통부 실거래가 공개시스템에 따르면, 부산 진구 ‘범천경남’ 전용면적 59.94㎡는 지난 20일 3억2500만원에 매매됐다. 앞서 10월 31일 동일 면적이 2억2500만원에 거래됐던 것과 비교하면 3주만에 1억원이 오른 셈이다.

부산 진구 범천동 A공인중개업소 관계자는 "그런 식으로 한번 신고가가 찍히면, 매도인들의 배액배상 요청이 물밀듯이 들어온다"면서 "팔 때보다 1억원이 올랐는데, 계약금 2000만~3000만원 날리는게 대수겠냐"고 말했다.

가덕도 신공항 호재를 입은 부산 강서구 명지신도시의 ‘더에듀팰리스부영’ 전용면적 135.8㎡는 지난 15일 한주 사이 약 2억5000만원이 올라 11억5000만원에 거래됐다. 인근 B 공인중개업소 관계자는 "명지신도시는 전반적으로 호가가 한달 전보다 1억~2억원씩은 올랐다"며 "상당수가 매도인이 배액배상을 하고 다시 내놓은 물건"이라고 했다.

이외에도 ‘배배테크’가 가능할 것으로 보이는 지역은 많다. 수도권에서는 일산과 파주가, 지방에서는 창원과 울산이 계약 파기가 빈번한 ‘불장’이다. 파주 ‘힐스테이트 운정’ 전용면적 113B㎡의 최근 실거래가는 지난 12일 7억2000만원이었는데, 현재는 호가가 최소 8억5000만원에서 9억5000만원까지 형성됐다. 직전 거래가가 9억6000만원(10월 28일)이었던 일산동구 백석동 요진와이시티 전용면적 118A㎡도 호가가 11억 내외로 올랐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부동산 커뮤니티에는 "일산·파주에 가서 계약금만 걸어두자"면서 "계약이 엎어지면 배배테크 성공이고, 그대로 잔금을 치르면 더 큰 시세 차익을 볼 수 있지 않느냐"는 등의 글도 올라온다.

현장에서는 이런 일이 일어나기 쉽지 않다고 본다. 파주 운정신도시 C공인중개업소 관계자는 "배액배상된 건들은 대부분 규제 발표 이전에 이뤄진 계약이었고, 지금은 대부분 호가가 상향 조정된 상태"라면서 "어차피 계약금 배액을 돌려받아도 주변 아파트값이 그보다 더 올라 살 수 있는 매물이 없다"고 말했다. 실제로 ‘배배테크’에 성공하기는 매우 어렵다는 설명이다.

실제로 배액배상을 받길 원하는 매수인은 드문 상황이다. 오히려 일부 매수인은 배액배상에 맞서 ‘강제 중도금’이라는 무기를 꺼내들기도 한다. 매수인이 중도금을 치른 시점부터는 일방적인 해약이 불가능하다는 점에 착안해, 약정한 날짜보다 이른 시기에 무작정 중도금을 매도인 계좌에 입금하는 것이다.

이들은 "2004년 대법원 판례를 보면, 시세 상승으로 계약금의 배액을 배상한 매도인과 중도금을 미리 넣은 매수인 가운데 매수인의 손을 들어줬다"며 강제로 중도금을 치르면 계약이 파기되지 않을 거라고 믿는다.

‘강제 중도금’에 대항해 매도인의 방어수단을 거론하고 있다. 이른바 ‘계좌 잠금’이다. 은행에 요청해 매매대금을 주고 받기로 한 계좌에 대한 입금을 막아버리는 것이다. 매도인 입장에서는 마음대로 중도금을 내는 매수인의 행위를 예방할 수 있는 장치다. 중도금 납입 일이 가까워진 시점에서 당장 배액배상금을 마련하기 어려울 경우에도 쓰이는 방법이다. 중도금을 받지 않았으니 언제라도 계약을 파기할 수 있다는 논리다.

그러나 강제 중도금과 계좌 잠금 모두 실제 효력은 낮은 것으로 확인된다. 한국공인중개사협회 관계자는 "‘강제 중도금’을 인정해준 해당 대법원 판례는 수많은 주택 매매 분쟁 중 하나일 뿐이고, 다른 판례는 대부분 당사자 간 협의가 없다면 중도금을 미리 넣었더라도 그 날짜가 지나기 전에는 효력을 인정하지 않는다"고 했다.

계좌 잠금의 경우에도 "매도인이 약속한 날짜가 되었는데도 중도금을 받지 않겠다고 버틸 경우 매수인이 법원에 중도금을 공탁하면, 그 날부터 중도금 효력이 발생한 것으로 본다"는 설명이다.

고종완 한국자산관리연구원장은 "매도인 입장에서 아파트값 상승 폭이 계약금 보다 훨씬 크다면 배액배상을 하는 것이 오히려 합리적 선택이라 비난할 수는 없다"면서 "배배테크부터 강제 중도금, 계좌잠금까지 이러한 신(新)풍속도는 현재의 부동산 시장이 얼마나 비정상적인지 보여주는 씁쓸한 단면"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