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종 코로나 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사태로 소비가 위축되면서 가계저축률이 지속해서 높아질 것이라는 연구가 나왔다. 높아진 가계저축률이 고착화되면 소비 부진이 길어지면서 수출·투자에 대한 우리나라 경제 의존도가 커지고, 자연히 경기변동성도 높아질 수 있다.

한국은행이 29일 발표한 2020년 10월호 조사통계월보 논고 ‘코로나19 위기에 따른 가계저축률 상승 고착화 가능성’에 따르면, 이번 코로나 위기로 소비가 위축되면서 가계의 저축 비율이 크게 상승할 전망이다.

지난 23일 오후 서울 중구 하나은행 본점 창구의 모습.

우리나라는 연도별로 가계저축률을 발표하기 때문에 상승세를 객관적으로 확인하기는 어렵지만, 분기·월별로 발표하는 주요국의 추세를 보면 우리나라의 상황도 전망할 수 있다는 설명이다. 미국의 개인저축률은 지난해 7.5%에서 올해 2분기 25.7%로 크게 뛰었고, 특히 4월에는 33%까지 치솟았다. 유로지역 가계저축률도 같은 기간 12.9%에서 24.6%로 상승했다.

올해 우리나라에도 이런 추세가 나타난다면 최근 5년간 평균 6.9%를 보인 가계순저축률도 한번에 급증할 수 있다는 전망이다. 최근 우리나라 가계순저축률은 ▲2015년 8.4% ▲2016년 7.5% ▲2017년 6.5% ▲2018년 6.1% ▲2019년 6% 등이었다. 역대 우리나라 가계순저축률 최고치는 1988년 23.9%였는데, 자본 축적이 원활해진 1990년대 이후로 한정해보면 1991년 23.4%가 최고 수준이었다. 다만 미국과 유로존의 경우 상대적으로 더 짙은 코로나 확산세를 보이고 있고, 이동제한조치 등 강도 높은 봉쇄 조치를 취했다는 점에서 우리나라의 상승폭은 이들의 11.7~18.2%포인트(P)보다는 작을 것으로 내다봤다.

통상 저축률이 상승하면 기업이 조달할 수 있는 자금이 늘어나 연구개발(R&D) 투자도 확대되면서 생산성이 높아지는 긍정적 효과가 있다. 하지만 불확실성 때문에 투자를 활발히 할 수 없는 상황이라면 저축률 상승은 소비위축과 경기부진으로 이어진다.

한은은 올해 가계저축률 상승의 경우 사회적 거리두기 강화, 감염 우려 등으로 여행·숙박·음식 등 대면 서비스 부문에서 소비가 위축된 영향이 크다고 봤다. 이때문에 향후 코로나가 진정되면 그동안 억눌렸던 소비가 한번에 되살아나면서 가계저축률 상승분이 어느정도 정상화될 것으로 예상했다.

한국은행 제공

만약 위기가 장기화한다면 높아진 가계저축률이 고착화될 가능성이 있다고 내다봤다. 가계 미래 예상소득이 감소하고, 신용위험이 높아져서 금융기관으로부터의 대출도 어려워진다면 사람들의 저축 성향이 높아질 수 있기 때문이다. 또 경기부진 장기화로 저소득층의 소득이 더 크게 감소한다면, 저축성향이 상대적으로 높은 고소득층의 소득이 전체 가계소득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확대되면서 전체 가계의 저축 성향이 상승할 수 있다.

한은은 높아진 가계저축률이 추세로 굳어진다면 각종 부작용을 낳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우선 소비 부진이 장기화하면서 수출·투자에 대한 우리 경제의 의존도가 높아질 수 있다. 소비에 비해 수출과 투자의 변동성이 크다는 점에서 이런 변화는 경기변동성을 확대시키는 요인으로 작용할 수 있다. 또 정부가 가계에 대한 지원을 추진한다고 해도 소비보다는 저축으로 이어질 가능성이 크기 때문에 내수부양 정책도 더이상 힘을 쓰지 못하게 될 가능성이 크다.

이용대 조사국 조사총괄팀 과장은 "보다 더 긴 시계로 본다면 저축이 투자를 위한 자금수요를 상회하는 가운데 그 수요 자체도 줄어들 수 있다"며 "저성장·저물가·저금리 현상이 ‘뉴노멀(New Normal·새로운 표준)’로 자리잡을 수 있다"고 했다.